중국·인도에 추월 당한다···정부 ‘마중물’ 역할 필요
수소 생태계 전용 정책·금융 지원 필요성 제기

민간이 수소산업 투자·수요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중국과 인도 등에 대응하지 않으면, 국내 수소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국회 수소경제포럼, 한국공학한림원, 한국수소연합은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에 집중했다. 9월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수소경제, 다시 일어나라’는 주제로 수소경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수소생산 ‘규모의 경제’ 키워야
토론회에서는 수소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한 업계와 학계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먼저 “규모의 경제를 키우는 게 필요하다”라는 제안이 나왔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청정수소 생태계 구축’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그 사이에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상대적으로 청정수소보다 가격이 저렴한 그레이·핑크·블루수소부터 활용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문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수소경제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굉장히 어려운 상태”라며 “청정수소만 활용한다고 하면 수소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10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지금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흑묘, 백묘 가릴 처지가 아니다. 정부가 청정수소 외에도 일반수소를 포함한 전체 수소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다른 나라가 국내보다 청정수소를 저렴하게 공급하면 한국의 청정수소 산업은 쓸려간다”라며 수소상용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 중국, 저렴한 재생에너지 단가를 무기로 그린수소 생산에 나선 인도를 그 사례로 들었다.
김 위원은 “우리나라 수소경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수소 단가를 낮추는 것으로, 경제학적으로 판단하면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은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략기획단장은 “수소환원제철,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주요 산업군과 기업의 막대한 수소 수요에 대응 가능한 구체적인 공급 방안이 없다”라며 CCU 기반 블루수소, 청록수소 등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등재와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철강업계도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청록·블루·그린수소 병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수소저탄소연구소는 정책 제안서에서 “제철소는 연속공정 특성상 단위 시간당 수백 톤 규모의 수소가 필요하며, 이는 현재 국내 수소 생산·공급 능력을 크게 초과하는 수준”이라며 “고체탄소를 함께 얻는 청록수소, 원전과 연계한 핑크·퍼플 수소를 병행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E&S도 제안서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적이고 대규모 생산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핑크·블루수소를 먼저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그린수소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발전 인프라·공급망 확충 위한 전용 정책금융 필요
수소 생태계의 한 축인 발전과 공급망을 확충하려면 정부 차원의 전용 정책금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수소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여전히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영준 SK이노베이션 E&S 부사장은 “2035년 NDC 계획을 수립하면서 2018년도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가장 더딘 부분이 수송 부문”이라며 고출력·장거리 주행이 필요한 전세·광역버스를 수소버스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차량 생산 능력과 대·폐차 물량까지 고려해 연간 3,000~4,000대 정도 수소버스로 교체하더라도 공급할 수소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전영준 부사장은 “2035년까지 연간 20만 톤 정도로 액화수소 생산 능력을 확대해야 하나, 자생력이 확보되지 않고 운영상 어려움도 있어 참여 사업자 수가 부족하다”라며 “예를 들어 수소생산 출하 실적 기반 보조금, 정부의 자본성 금융지원 설계 제도, 수소 생태계 전용 정책금융 수단 개발 등이 절실한 상태”라고 전했다.
PEM 연료전지와 수전해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이 ‘수소굴기’ 전략 아래 국가 주도로 연료전지·수전해 기술 개발에 집중하며 기술 격차를 줄여 나가는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승규 현대자동차그룹 전무는 PEM 연료전지·수전해는 주요 핵심 부품의 호환이 가능한 만큼, 동시에 상용화할 경우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했다. “수소모빌리티를 통해 축적한 PEM 기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한 만큼, 이제는 연료전지와 수전해 기술 분야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승규 전무는 “블룸버그는 글로벌 넷제로 목표를 2050년에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약 193GW 규모의 수전해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1GW 수준의 플랜트 제작 기준 약 5조 원이 들어가는데, 이를 193GW까지 키운다고 가정하면 그 시장은 965조 원 규모”라며 “이 시장은 우리에게 큰 기회”라고 전했다.
수소정책 컨트롤타워 필요성도
이번 토론회에서는 국가 수소산업 지원안의 체계적·효율적 관리를 위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관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단장은 “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가 각각 예산을 투입하면서 수소 지원사업이 연결돼 있지 않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문일 교수도 “수소가 에너지 운반체 역할을 하려면 다른 에너지군과 같이 어울려야 하고, 이를 총체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와 ‘정해진 미래’가 필요하다”라며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민간이 잘 주도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