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26일 ‘2025년 제5회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를 열고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라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개발 사업을 시행하기로 확정했다.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개발 사업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철광석과 수소를 활용해 수소환원철과 쇳물을 생산하는 30만 톤급 공정 실증 과제 및 중소·중견기업이 보유한 기존 전기로에 수소환원철을 활용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총사업비는 국비 3,088억 원을 포함해 8,146억 원이다.
이 사업은 정부가 지난 2021년에 발표한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수소환원제철 개발·도입 추진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수소환원제철 개발·도입 추진계획은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1단계는 2030년까지 민간 합동 한국형 분광 수소유동환원공정을 개발하고 100만 톤급 시험플랜트를 구축해 제품생산을 실증한다. 2단계는 2040년까지 상용화 수준인 300만 톤급 스케일업 기술을 확보하고, 3단계는 2050년까지 기존 탄소계 설비(고로 12기)를 수소환원설비(13기)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철강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1억120만 톤에서 2050년 460만 톤으로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수소환원제철의 도입 목적은 분명하나 관건은 청정수소를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다.
기후솔루션이 지난 6월에 발표한 ‘수소환원제철 국내 정착을 위한 핵심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는 데 2050년까지 연간 약 405만 톤의 그린수소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현행 정부 계획에 따라 50~80% 이상 수입해 공급하면 공급 불안정성과 고비용 구조에 직면해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
또 스웨덴 스톡홀롬 경제대학은 같은 달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장에서 수소를 생산하고 전기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친환경 철강 생산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나 수소를 외부에서 구매한다면 급격한 가치 손실을 피하고자 15%를 더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 이로 인해 수소구매가격이 톤당 100유로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에서 수소를 모두 생산하면 연간 전력 수요가 현재 약 3.4TWh에서 약 10.9TWh로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전력 수요 급증은 전기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생산 비용이 높아진다. 특히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이 2024년 10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으로 만든 철강의 가격은 톤당 390달러이지만 전기로로 만든 철강은 415달러, 천연가스로 만든 철강은 455달러, 직접환원철과 수소로 만든 철강은 80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전기가격, 친환경 에너지 생산, 수소 인프라 구축, 저탄소 철강의 재정적 타당성 등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위한 지원책을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수소공급망, 재생에너지 등 인프라 구축 속도가 느린 데다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등 재정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일부 철강업체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에 제동을 걸고 있다.
급제동 걸린 계획
유럽 최대 철강생산업체인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은 최근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아르셀로미탈은 독일에 있는 브레멘 제철소와 아이젠휘텐슈타트 제철소를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는 제철소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웠다. 독일 연방정부는 13억 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아르셀로미탈이 해당 계획을 철회한 것은 독일의 에너지 비용이 너무 비싼 데다 에너지믹스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 수소환원제철의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값싼 러시아산 가스를 빠르게 소진한 것과 중국의 과잉 공급 여파로 수익이 감소한 것도 크다.

티센크루프의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도 위태롭다.
티센크루프는 30억 유로를 투입해 독일 뒤스부르크 제철소를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는 제철소로 전환해 연간 200만 톤의 저탄소강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250만 톤의 직접환원철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셀로미탈이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을 철회하고 철강인력을 40% 감축할 만큼 티센크루프의 사정이 나빠졌다. 이에 티센크루프도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을 포기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티센크루프는 강행하기로 했다.
티센크루프는 지난 6월 20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뒤스부르크에 최초의 직접환원철 공장을 완공한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건에서 전환이 성공하려면 기본 조건을 조정해야 한다. 특히 수소 네트워크와 경쟁력 있는 에너지 가격 확보와 관련해 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일 연방정부는 수년간의 침체된 성장과 광범위한 산업화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불필요한 절차를 삭감하고 인프라에 자금을 투자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일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스웨덴의 친환경 철강 개발업체인 스테그라(Stegra, 구 H2그린스틸)는 스웨덴 정부의 보조금 지급 거부와 인프라 구축 지연으로 인해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테그라는 스웨덴 북부에 있는 보덴에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구축하기로 하고 스웨덴 정부에 1억5,200만 유로의 보조금을 신청했다.

유럽연합은 보조급 지급을 승인했으나 스웨덴 환경보호청은 스테그라가 2045년 수소환원제철 생산을 달성할 때까지 매년 약 5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면 스테그라는 사업비의 98%를 민간투자로 충당해야 하나 스웨덴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투자를 받기도 힘들어졌다.
또 스웨덴 지방자치단체협회에 따르면 지방정부가 계획된 프로젝트를 위해 향후 10년 동안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 구축 사업에 약 90억 유로를 투자해야 한다. 협회는 연방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경제 상황을 미뤄볼 때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철강제조업체인 클리블랜드-클리프스(Cleveland-Cliffs)는 미국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 있는 제철소를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는 제철소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철소 인근에 수소생산 허브가 없어 사업 일정에 맞춰 수소를 조달하기가 불가능하다. 클리블랜드-클리프스의 루렌코 곤살베스 CEO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소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런데 적어도 필요한 시점까지 수소를 보유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어 바이든 행정부 때 확정된 보조금 5억 달러가 지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직접환원철 공정 및 전기용광로 구축 비용이 16억 달러, 용광로 재가열 비용이 최대 4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현지 언론들은 클리블랜드-클리프스의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값싼 청정수소 확보가 관건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생산기술인 하이렉스(HyREX)를 개발하고 있다. 하이렉스는 포스코가 독자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지난 2007년에 상용화한 파이넥스 유동환원로를 바탕으로 한다.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에 넣지 않고 유동환원로와 용융로라는 설비를 통해 쇳물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환원제로 수소 25%, 일산화탄소 75%를 사용한다. 여기서 수소를 100%까지 끌어올리면 수소환원제철이 되는 것이다.
하이렉스 개발은 랩스케일(LAB-scale)의 기술개발과 실증설비 기본 설계가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기존 파이넥스 유동환원로 중 75%를 차지하는 일산화탄소를 수소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수소만으로 직접환원철을 생산하면 화석연료 대비 용융이 어려워 새로운 전기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상용화는 어려운 실정이다.
무엇보다 하이렉스에 사용되는 수소를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박해웅 포스코홀딩스 수소저탄소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2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2회 한국자원공학회 하계특별심포지엄’에서 “연간 3,000만 톤의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하기 위해선 약 370만 톤의 수소가 필요하다. 이는 2050년 국가 수소소비량인 2,700만 톤의 13%에 해당한다. 여기에 수소환원제철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전력을 수소전소발전과 암모니아혼소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130만 톤이 추가돼 총 500만 톤의 수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안정적인 수소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또는 원전으로 수전해 설비를 가동해 청정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방안, 수입한 청정암모니아를 크래킹해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방안 등 여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수소공급망을 구축하더라도 수소가격이 저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업계에선 수소가격이 톤당 1,000원 수준이어야 포스코의 하이렉스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 일환으로 포스코는 최근 산업부에 월성1호기 운영권 확보와 민간 활용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에 따르면 수소환원제철 생산에 연간 수십TWh의 전력이 필요한 데다 청정수소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비용과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손병수 포스코홀딩스 상무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수소환원제철과 탄소저감을 위한 원전 활용 정책토론회’에서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원은 원전이 유일하다. PPA를 통해 원전 전력을 직접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함에 따라 월성1호기 활용 방안을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세진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국장은 “산업부 내 여러 부처와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 원전 기반 PP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민간 주도 전력 조달 시대를 대비해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며 “청정수소 인증제에 따라 1kg의 원전수소를 생산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kg 이하면 청정수소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렴하게 청정수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보조금, 세제 혜택 등 재정 지원과 수소공급망, 청정전력 공급망 등 인프라 구축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후솔루션의 김다슬 연구원은 ‘수소환원제철 국내 정착을 위한 핵심 과제’ 보고서에서 “정부가 에너지 자립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해외 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개발은 점점 심화되는 이상기후와 예측 불가한 국제정치 속에서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저해하는 대안”이라며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상용화돼도 설비를 가동할 연료가 없다면 정부가 약속한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과 국가 경쟁력 제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장은 최근에 쓴 기고문에서 “혁신적 탄소감축 기술에 대한 지원범위와 대기업·다배출 온실가스 감축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공공조달제도 등을 활용해 수요 불확실성을 해소하며, 정부 주도로 대규모 청정수소 공급망과 대용량 무탄소에너지 기반 시설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