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6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드론의 우위를 과시하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무인항공기와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의 개발을 촉진해 상용화를 앞당기고 미래항공모빌리티 생산망 구축을 골자로 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교통부는 내년 2월 1일까지 무인항공기의 비가시권 비행을 가능케 하는 최종 규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오는 12월 3일까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 비가시권 비행 실행에 대한 추가 규제 장벽과 도전과제를 설명하고 향후 규칙 제정이나 입법 조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무인항공기가 국제 민간 항공 협약의 요구사항 없이 운항할 수 있도록 모색하고, 기업이 연방항공청 무인항공기 시험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내년 2월 1일까지 민간 무인항공기를 국가 항공 체계에 통합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한다.
이와 함께 연방항공청의 무인항공기 상용화 지원 프로그램인 비욘드 프로그램(BEYOND Program)에 따라 ‘eVTOL 통합 파일럿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오는 12월 3일까지 5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지역을 선정한다.
5개 프로젝트는 △미국산 eVTOL 항공기·기술 사용 △경제 및 지리적 운영과 제안된 공공-민간 파트너십 모델 △첨단 항공 모빌리티, 의료 대응, 화물 운송 및 농촌 접근과 같은 계획된 운영 등이 포함돼야 하며, 첫 번째 프로젝트가 시행된 날로부터 3년간 운영된다. 이와 관련해 연방항공청은 가용 권한을 동원해 안전하고 시기적절한 프로젝트 운영을 지원한다.
상무부는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와 협력해 미국에서 제작된 민간 무인항공기를 해외 파트너에게 신속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수출 통제 규정을 검토하고 개정해야 한다.
상무부는 또 미국산 민간 무인항공기 수출을 우선순위로 지정해야 하며 시장 접근성 확대, 외국 무역 장벽 감소, 국제적 상호 운용성 촉진을 위한 기관 간 이니셔티브를 조정할 의무가 있다.
국방부, 수출입은행, 국방금융위원회, 국방수출국은 직접 대출과 대출 보증, 지분 투자와 공동 자금 조달, 정치적 위험 보험 및 신용 보증, 타당성 조사 및 보조금 메커니즘 등을 마련해 미국산 민간 무인항공기 수출을 우선시하고 지원해야 한다.
상용화 속도 내는 업계
미 행정부의 드론·eVTOL 행정명령에 업계는 eVTOL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VTOL 선두 주자인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 이하 조비)은 지난 7월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마리나에 있는 본사 부지를 확장해 eVTOL 연간 생산 능력을 최대 24대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미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연간 최대 500대의 eVTOL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8월 초엔 미국의 헬리콥터 기반 항공모빌리티 서비스업체인 블레이드 에어모빌리티(Blade Air Mobility)와 블레이드의 도심항공모빌리티 여객 사업 부문을 1억2,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블레이드는 헬리콥터와 수상비행기로 항공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조비는 기존 헬리콥터와 수상비행기를 eVTOL로 전환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일본의 ANA홀딩스와 일본 내 에어택시 상용화를 위한 파트너십을 대폭 확대했다. 양사는 공동벤처를 설립하고 eVTOL 100대를 일본 전역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쿄에서 서비스를 개시, 수년간 단계적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한다.
아처 에비에이션(Archer Aviation, 이하 아처)은 미 행정부의 드론·eVTOL 행정명령이 발표되자마자 보통주 8,500만 주를 공모해 8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로써 보유금액은 20억 달러로 확대됐다.
아처는 넉넉한 자금을 바탕으로 최근 미 eVTOL 개발업체인 오버에어(Overair)의 특허 포트폴리오와 핵심 인력, 미 방위복합소재 제조업체의 주요 복합소재 제조 자산과 시설을 인수했다. 이는 군용 eVTOL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UAE의 개인 항공 서비스업체, 인도네시아의 방위산업체 등 여러 업체와 eVTOL 서비스 구축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특히 2028년 LA올림픽 공식 에어택시와 미국 국가대표팀 공식 에어택시를 독점 공급하는 계약을 올림픽 운영위원회와 체결하기도 했다.
브라질 항공기 제조사인 엠브라에르 계열사인 이브 에어모빌리티(Eve AirMobility, 이하 이브)는 미 행정부의 드론·eVTOL 행정명령 발표 이후 여러 업체와 eVTOL 공급계약을 맺었다.
먼저 브라질의 항공모빌리티 서비스업체인 레보(Revo)와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브는 이 계약에 따라 2027년 4분기부터 레보에 eVTOL을 공급한다. 레보는 현재 운영 중인 400대의 헬리콥터를 eVTOL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브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항공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퓨처 플라이트 글로벌 (Future Flight Global)엔 54대의 eVTOL을, 코스타리카를 중심으로 중앙아메리카에서 항공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글로벌비아(Globalvia)엔 50대의 eVTOL를 공급할 예정이다.

제품 상용화 속도와 함께 인프라 구축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미래항공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AAM) 시장조사업체인 ‘글로벌 AAM/UAM 마켓 맵’이 지난 7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계획됐거나 진행 중인 AAM 인프라 프로그램은 총 92개다.
이 중 24개가 플로리다에서 추진되고 있다. 플로리다는 대도시가 인접한 데다 기온이 따뜻하고 지면이 낮아 AAM 사업을 추진하기에 적합하다.
플로리다를 포함한 14개 주에선 3년 안에 2개 이상의 eVTOL 이착륙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으며, 15개 주에선 AAM 전략 수립이 시작됐거나 최소 1개 이상의 이착륙장 부지가 선정됐다.
연방항공청은 내년에 승객용 eVTOL 상업 서비스를 인증할 계획이다. 현재 가장 앞서고 있는 지역은 뉴욕시다. 지난 4월 뉴욕시 경제개발공사가 첫 eVTOL 허브인 ‘다운타운 스카이포트’를 공개한 데다 블레이드와 유나이티드 항공은 eVTOL 운항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 적극 대응 나서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 정부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기획재정부 신성장전략추진기획단은 지난 6월 19일 국토부, 산업부, 국방부, 우주항공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UAM(도심항공교통), 드론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국내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진단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이날 간담회에선 참석 기업들은 △핵심 기체 및 부품 기술 자립화를 위한 투자 확대 △유연한 규제 환경조성 △전문인력 양성 △실증화 지원 등을 건의하고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26일 UAM을 기반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에 국비와 기술적·제도적 지원을 제공해 UAM 실증 기반을 조성하고 UAM 상용화를 촉진하는 ‘UAM 지역시범사업’의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당초 지난 4월 공모를 통해 신청한 지자체 중 2곳을 선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만 추진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 각 지역의 특성과 사업계획을 반영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토부 측은 “평가 과정에서 UAM 상용화를 촉진하기 위해선 전국에서 실증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에 각 지자체의 사업계획서를 평가하고 사업내용에 따라 지원하기로 했다”라며 “다만 현재 사업예산이 한정적인 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한 지자체엔 예산을 지원하고 나머지 지자체엔 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기술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예산지원형, R&D·실증 연계형, 전문컨설팅 지원형 등 총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UAM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를 지원할 예정이다.
예산지원형은 실현 가능한 사업계획을 제출한 지역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원 대상 지역은 제주도, 대구·경북 연합, 전남·경남 연합 등 총 3곳이다.
제주도는 제주공항, 중문, 성산포항을 잇는 관광노선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 확보한 예산으로 제주공항, 중문ICC, 성산포항에 버티포트를 설치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 연합은 김천구미역, 왜관IC,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각각 버티포트를 설치해 산불감시, 고속도로 모니터링, 치안관리 등 공공분야에 UAM을 활용할 계획이다.
전남·경남은 나로우주센터, 순천만국가정원, 남해스포츠파크 등 남해안 주요 관광지를 UAM으로 연결해 광역관광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버티포트 등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예산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시범운용구역 지정 등 제도적 지원은 국토부가 담당한다.
R&D 및 실증을 통해 인프라 구축이 가능한 지자체엔 R&D·실증 연계형 지원 방식에 따라 시설구축, 기체시험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유형의 지원을 받는 지역은 울산과 서울·경기·인천 연합이다.
울산은 고속철도 울산역과 동해선 태화강역을 연결하는 교통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또 서울·경기·인천 연합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수도권 내 주요 도심과 연결하는 공항 셔틀 노선을 기획하고 있다.
UAM 도입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는 지자체엔 물리적·제도적 선제조건을 해결하고 사업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전문컨설팅을 제공할 예정이다. 지원 대상은 부산과 충북이다.
부산은 북항과 해운대를 연결하는 교통 및 관광 통합형 사업을, 충북은 산불 등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헬기를 UAM으로 대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공모에 참여하지 않은 지자체엔 자체적인 검토와 컨설팅을 확대해 거점을 중심으로 UAM 사업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전북, 강원, 충남이 지원대상이다.
전북은 익산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 사업을, 강원은 강릉역을 중심으로 하는 미래형 복합환승센터 구축 사업을, 충남은 도내 주요도시를 거점으로 UAM을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토부는 UAM 사업을 실증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 2021년부터 UAM 안전성·사업성을 검증하는 민관합동 실증사업인 ‘K-UAM 그랜드 챌린지’를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토부가 주최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하며 10개 컨소시엄(43개 기업)이 참여해 UAM 상용화를 위한 단계적 실증을 진행하는 것이다.
1단계 실증은 기체 안전성과 운용사의 안전성,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응 절차 등을 점검하는 것으로, 10개 컨소시엄 중 원팀(현대차, 대한항공, 인천공항, KT), 퓨처팀(카카오, GS건설, LG유플러스, 아처), 드림팀(SK텔레콤, 한국공항공사, 한화시스템), 롯데팀(건설, 이노베이트, 렌탈) 등 총 4개 컨소시엄만이 1단계 실증을 완료했다.
1단계 실증을 완료한 4개 컨소시엄은 2단계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2단계 실증은 아라뱃길 등 도심지역에서 실제 운용에 가까운 시험비행을 진행,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UAM의 핵심인 eVTOL의 시험비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2단계 실증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실증에 사용되는 기체가 eVTOL가 아닌 헬리콥터다. 생산 지연으로 eVTOL가 내년에 도입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1단계 실증을 통과한 컨소시엄 중 eVTOL로 실증을 진행한 곳은 드림팀 한 곳에 불과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eVTOL으로 실증을 진행하면 좋겠으나 개발 지연으로 인해 도입이 늦어짐에 따라 헬리콥터를 대역기로 활용해 2단계 실증을 수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업계는 eVTOL 시험비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2030년에 UAM을 상용화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