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Hydrogen Butterfly)는 수소연료전지 파워팩 개발사다. ‘버터플라이’라는 사명에서 알 수 있듯 드론, 항공용 연료전지시스템 추진체를 만든다.
2023년 6월에 창업한 스타트업을 찾은 건 대표이사의 이력 때문이다. 조일희 대표는 연세대에서 화학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지난 2000년 현대차에 입사해 근 19년을 엔지니어로 일했다.
입사 초기 UTC 퓨얼셀과 공동으로 연료전지차 개발에 참여했고, 현대차 최초로 상압형 연료전지 운전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또 가압형 연료전지 테스트벤치 제작, 전극막(MEA) 국산화를 위한 테스트장비, 표준 셀, 전기화학분석법 개발에 참여했다.
“현대차의 두 번째 양산차량인 넥쏘에 들어가는 4세대 연료전지시스템 개발에는 PM(Project Manager)으로 참여했어요. 프로젝트 기획부터 재무, 관리, 영업, 생산, 부품사 관리 등 다방면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죠.”
2018년 3월 현대차를 나와 중국의 3대 자동차회사 중 하나인 제일자동차(FAW)에 임원으로 들어가 부품회사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을 했다. 중국의 수소전기차 시장을 일선에서 경험한 그는 “규모 면에서 국내를 압도한다. 분리판 회사만 해도 스무 곳이 넘고 가격은 국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고 한다.
프로펠러 회전체에 연료전지시스템 적용
조일희 대표는 3년간 중국 생활을 마치고 국내로 복귀했다. 하이리움산업에서 수소연료전지 드론 개발을 총괄하면서 SK E&S에서 진행한 도시가스 배관 점검 실증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또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윤광준 교수가 대표로 있는 엑센스가 수행한 액화수소드론의 13시간 24분 연속비행 기네스 기록 수립에 기여했다.
조 대표는 28년 넘게 접한 연료전지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꿈을 펼치고 싶었고, 그 비전을 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에 담아냈다. 그는 연료전지를 도심항공모빌리티(UAM)에 접목하기로 하고 창업에 나섰다.

“연료전지라는 게 수소와 산소가 만나 전기와 물을 만들어내는 화학반응이죠. 기자들이 도요타의 아키오 회장을 만나 하이브리드보다 연료전지를 더 오래 개발했는데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키오 회장이 ‘이게 메카닉인 줄알았는데 해보니 케미칼이더라. 이걸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고 답했죠. 이 부분을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연료전지 기술은 난이도가 높다. 온도, 압력, 습도 등 여러 운전 조건에 큰 영향을 받는 화학반응을 기계적으로 제어해 최적의 성능을 끌어내면서 효율, 안정성, 내구성을 확보해야 한다. 큰 자본과 조직을 갖춘 현대차조차 스택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며 3세대 연료전지시스템 출시를 훗날로 미룬 걸 기억해야 한다.
“현재 2kW급 연료전지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요. 오픈 캐소드·클로스 캐소드 방식에 공랭식·수랭식을 적용한 다양한 형태의 연료전지 제품 특허를 보유하고 있죠. 하드웨어만큼 중요한게 소프트웨어예요. 연료전지 평가사이트 구축을 완료했고, 연료전지를 운전하고 제어하는 프로그램 기술을 확보하고 있죠.”

드론용 연료전지 파워팩을 출시한 곳은 많다. 영국의 인텔리전트에너지, 싱가포르의 스펙트로닉(Spectronik) 같은 회사가 여기에 든다. 국내 수소드론 회사인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도 빼놓을 수 없다.
“후발주자인 만큼 연료전지 파워팩의 무게나 성능, 가격 면에서 월등히 뛰어나야 경쟁력이 있죠. 타사 대비 30~50% 저렴한 가격에 내면서 무게까지 가벼우면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 초점을 두고 개발을 진행하고 있어요. 군사용 UAS(무인항공시스템) 애플리케이션 회사인 니나노컴퍼니, 항공방제용 드론이나 멀리콥터를 만드는 한국헬리콥터와는 구매계약도 체결한 상태입니다.”

수소연료전지 드론의 강점은 비행시간에 있다. 기체수소 대신 액체수소를 적용하면 비행시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연료전지에 공기 대신 산소를 공급하면 출력이 크게 올라가는데, 이미 잠수함처럼 공기가 없는 곳에서 사용하는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 공기불요추진) 시스템으로 개발되고 있어요. 출력이 높아지면 셀을 적게 쌓을 수 있고, 스택의 크기와 무게를 줄일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산소탱크를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무게를 더하는 적절한 설계를 통해 최적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를 기반으로 공기를 공급했을 때 유리한 비행거리, 항공기 크기에 따라 어떤 시스템이 유리한지를 파악해서 고객의 요구와 용도에 맞는 연료전지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H2B(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의 비전은 ‘항공용 회전체 연료전지시스템’ 개발에 있어요. 프로펠러가 달린 로터에 연료전지 스택을 장착하면 원심력으로 스택의 물을 없앨 수 있죠. 또 회전에 의한 공기 흐름으로 냉각이 가능하기 때문에 냉각시스템을 없애는 등 주변장치를 줄여 경량화를 달성할 수있어요. 이렇게 가면 장치와 시스템의 구조가 간단해집니다.”

이 아이디어는 프로펠러로 추진력을 얻는 일반 항공기뿐 아니라 멀티콥터 방식의 eVTOL(전기 수직이착륙 항공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프로펠러를 돌리는 회전체에 물레방아의 날개 형태로 스택을 고정해 가스(수소,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공기 대신 산소를 넣으면 스택의 출력이 올라간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로에이비아(ZeroAvia), 벨 헬리콥터(Bell Helicopter)는 이 부분에 대한 특허도 가지고 있죠. 이들 회사와 차별화된 기술로 해외 특허를 현재 진행 중에 있어요. 고고도, 중고도 무인기용 ‘semi AIP 파워팩’에 해당하는 연료전지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죠.”
AIP 시스템은 물속에서 2주 넘게 작전을 수행하는 잠수함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용, 민수 선박, 군용 무인잠수정을 위한 연료전지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해군의 차세대 잠수함용 연료전지 모듈도 개발 중이다.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땐 고출력이 필요해요. 이때는 산소를 쓰고 순항 시에는 공기를 공급하는 식으로 제어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부분을 연료전지와 연계해서 어떻게 푸느냐가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죠.”
조 대표는 구체적인 구동 방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산소 적용해 스택 크기 줄여
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는 성남의 지식센터에 연구실을 마련했다. 연구실에 연료전지 생산장비와 평가사이트를 구축하고 드론용 2~10kW 시스템의 테스트를 진행해왔다.
‘스택 테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연료전지를 평가하고,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제어기술을 개발하고 각 부품의 개선점을 검증하기 위해 부품 평가를 진행한다. 모니터에 뜬 프로그램에는 셀의 전압, 온도, 압력 변화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먼저 숏스택을 만들어 평가를 진행한 다음 풀스택으로 넘어가게 되죠. 2kW 스택을 개발하기 위해 부품을 제작했고 처음엔 셀 3개로 평가를 진행했어요. 예상보다 성능이 높게 나와서 15셀만 쌓기로 했죠. 시중에 나와 있는 드론용 2kW급 스택과 비교해보면 우리 제품이 얼마나 작고 가벼운지 알 수 있습니다.”

테이블 한쪽에 2kW급 스택이 놓여 있다. 언뜻 봐도 크기가 3분의 1에 불과하다. 조 대표는 “그동안 공기 대신 산소를 넣어 테스트를 진행했다”라며 “이후 공기를 이용한 성능시험도 마쳤다. 동일한 스택으로 산소와 공기를 이용한 평가를 진행했고, 산소와 공기의 성능 차이는 2배 정도로 나왔다. 관련 데이터를 모두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수소연료전지는 물관리, 열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생성되는 물을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성능, 효율, 안정성, 내구 등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항공용 회전체 연료전지시스템은 원심력으로 스택의 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물관리의 걱정을 덜면서 시스템을 가볍게 설계할 수 있다.
“분리판 설계 개선을 통해 연료전지의 성능을 높이고 재료비를 절감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죠. 하드웨어 측면의 기술개발은 경량화, 저가화, 고출력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여기에 연료전지 운전·제어라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접목하게 되죠.”
조 대표는 공랭식을 선호한다. 수랭식으로 열을 식히려면 그만큼 부품이 늘어나 무거워지고 제어할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공랭식으로 출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5kW급 이상은 수랭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다.
“5kW급 스택을 단위 모듈로 해서 고출력으로 진행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이차전지의 배터리 모듈과 배터리 팩 개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죠. 고고도에서는 공기가 차가워 공랭식으로도 냉각이 잘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반응가스 공급부를 갖춘 회전체, 스택 개발을 완료하고 실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풀어가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는 프라이머 사제 파트너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투자를 받아 스타트업의 길을 걸었다. 특히 지난해 7월 초격차 10대 분야 창업기업을 대상으로 3년간 최대 15억 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딥테크 팁스(Tips)’에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상복도 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스타트업 815 IR 왕중왕전’에서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상을 받았다. 또 올해 1월에는 미국 최고 권위의 발명상인 ‘2025 에디슨 어워즈’에서 운송 부문 내 예선을 통과하고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했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확장 가능한 청정운송 에너지’ 부문에서 수상 확정 소식을 받은 것. 메달의 색은 4월로 예정된 시상식에서 결정된다.
“경기혁신센터의 직접 투자 지원, 팁스 선정이 큰 힘이 되고 있죠. 기술개발 기간은 2027년 상반기까지 잡혀 있어요. 그때까지 회전체 연료전지시스템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죠. 에디슨 상은 오픈 캐소드 형태의 2kW급 연료전지시스템으로 받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해외 수상 경력은 투자자들과 구매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도움이 된다. 세계적으로 미래항공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AAM) 개발에 관심이 높다. 현대차만 해도 자회사인 슈퍼널을 통해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시제기 개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를 항공기에 직접 적용한 사례는 많지 않다.
조비(Joby Aviation)가 작년 7월에 40kg의 액화수소와 연료전지시스템을 장착한 eVTOL로 523마일(약 840km) 비행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독일 H2FLY의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됐다. 또 제로에이비아는 고온 PEM 연료전지 기술을 보유한 하이포인트(HyPoint)를 인수해 터보프롭 항공기의 전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항공용 연료전지 파워팩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거나 혁신 기술을 제시한 기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연료전지시스템의 출력을 높이면서 내구성을 잡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스택, 회전체 기술 확보는 숙제
에비에이션(Eviation) 사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9인승 전기추진 비행기 ‘앨리스’의 비행거리는 463km에 불과하다. 8톤이 넘는 기체 무게 중 배터리만 3.5톤에 달한다.
조 대표는 “이를 H2B의 연료전지 파워팩으로 바꾸면 같은 무게로 항속거리를 6,000km까지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까지 날아가는 셈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회전체 연료전지시스템 기술이 확보돼야 하고, 액화수소·액화산소를 적용한 연료공급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갈 길은 멀지만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수소산업의 밸류체인이 성장하면서 인프라를 갖춰갈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방산용 드론 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어요. 미국의 AI 드론 개발사인 안두릴(Anduril Industries)이 여기에 들죠. 드론 전동화 기술에 연료전지의 접목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고 봅니다.”
안두릴의 기업 가치는 40조 원에 달한다. 안두릴은 미 국방부의 6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 중 무인 시제기 개발업체에 선정됐고, 최근에는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공격용 드론 공급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도 미 국방의 최우선 과제로 유인 전투기를 드론으로 바꿔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회전체 연료전지시스템의 아이디어는 기술개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수소선박과 마찬가지로 규제를 뚫기 위한 제도 개선, 인증의 험난한 파고를 넘어야 한다. 국내보다는 미국 등 해외에서 먼저 일이 풀릴 가능성도 있다.
“기술개발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만족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되죠. 늘 그런 난관을 헤쳐왔다고 할 수 있어요.”
이는 현대차가 2013년에 세계 최초로 출시한 투싼ix 수소전기차, 2018년에 수소차 전용 모델로 출시한 넥쏘 개발에 참여하면서 얻은 경험이자 교훈이다.

조 대표의 책상 옆에 걸린 족자가 눈에 든다. ‘붓을 세워 곧고 바르게 쓴다’는 뜻을 담은 중봉직필(中鋒直筆)이라는 글귀가 세로로 담겨 있다. 날짜를 보니 작년 가을에 썼다. 중심을 잡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다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하이드로젠버터플라이에는 현대차에서 35년을 근무하면서 스택 조립장치 개발, 양산라인 설치에 참여한 이성근 CTO(최고기술관리자)가 참여하고 있다. 또 컴투스홀딩스에서 CFO를 역임한 천영삼 CFO(최고재무책임자)가 합류했다.
“올해는 2~10kW급 연료전지시스템으로 드론 실증에 나서 매출을 일으키고, 2027년에는 회전체 연료전지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죠. 드론, 무인기, UAM, 항공기 순으로 시장은 분명히 살아 있어요. 선박 쪽에도 큰 시장이 형성돼 있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한 혁신 제품이 나오면 시장도 반응할 겁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현실에서 태풍 같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패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날개를 바삐 움직이다 보면 바뀐 기류를 타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