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3D 프린팅 장비가 고출력 레이저로 금속판 표면에 유로를 형성하고 있다.
금속 3D 프린팅 장비가 고출력 레이저로 금속판 표면에 유로를 형성하고 있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엔 ‘원자력성과확산관’이라는 창업지원동이 있다.

원자력성과확산관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개발 성과를 활용해 중소·벤처기업의 창업을 지원하는 곳으로, 지난 2013년에 개관했다.

지난 6월 25일 이 원자력성과확산관에 새로운 연구소기업이 설립됐다. 이 기업의 이름은 ‘더센텍’이다.

더센텍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개발한 금속 3D 프린팅·코팅 기술과 열, 부식, 방사선에 강한 고강도 하이브리드 합금 소재를 활용해 국방, 항공, 우주, 원자력 등 극한환경산업용 부품·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 연구원 창업기업으로 출발해 3년 만에 연구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업체가 최근 수소업계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금속 3D 프린팅·코팅 기술과 고강도 하이브리드 합금 소재로 연료전지 핵심 부품인 금속분리판을 제조하는 공정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잠수함 연료전지 개발 참여

김일현 더센텍 선임연구원을 따라 원자력성과확산관 4층에 있는 더센텍 사무실로 들어간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 유로가 새겨진 여러 금속제품이 보인다.

김경호 대표이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가져온 케이스를 열고 한 금속제품을 꺼낸다. 이 금속제품은 금속 3D 프린팅·코팅 기술로 만든 연료전지 금속분리판 시제품이다.

김경호 대표이사는 “연구원에서 원자로에 들어가는 사고저항성 핵연료 피복관을 국산화하고자 금속 3D 프린팅·코팅 기술과 부식, 고열, 방사선 등에 강한 금속복합소재를 개발했다. 이를 활용하면 연료전지 금속분리판 제조도 가능할 것으로 봤다”고 설명한다.

유로가 형성된 시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는 김경호 대표이사.
유로가 형성된 시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는 김경호 대표이사.

핵연료 피복관은 원자력 발전소의 우라늄 핵연료를 감싸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면서 핵분열 연쇄반응으로 발생하는 열을 냉각수에 전달하는 부품이다.

이 부품은 고온고압의 원자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부식저항성, 고온변형저항성이 강하고 중성자 흡수성이 낮으면서도 우라늄 핵연료가 효과적으로 연소하도록 성능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핵연료 피복관을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금속 3D 프린팅·코팅 기술과 고강도 하이브리드 합금 소재를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더센텍을 포함해 여러 연구소기업이 설립됐다.

김경호 대표이사는 “분리판 시제품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예비 시험을 진행한 후 범한퓨얼셀로부터 원판을 받아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하니 기존 분리판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한다.

더센텍에 따르면 전류밀도에 따른 최대 전압을 측정한 결과, 백금 분리판과 동등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전류밀도가 200mA/㎠ 일 때 더센텍의 분리판은 1차에서 0.855V, 2차에서 0.875V의 전압을 보였다. 이는 기존 백금 분리판(0.868V)과 비슷했다.

범한퓨얼셀과 더센텍은 연료전지 스택에 적용하기 위한 공정 조건 최적화를 추진하고 장기 성능 안전성을 검증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신규 잠수함과 무인잠수정에 탑재될 연료전지에 들어갈 분리판을 함께 개발할 계획이다.

범한퓨얼셀은 지난해부터 방위사업청 국책과제인 ‘수출형 잠수함용 연료전지 모듈 개조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잠수함 공기불요추진체계(AIP) 구성품인 연료전지 모듈의 용량을 기존 120kW에서 60kW로 소형화하고 분리판의 금 코팅 함량과 막전극접합체의 귀금속 촉매 함량을 최소화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센텍은 분리판 코팅 방식 개선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경호 대표이사는 “잠수함뿐만 아니라 트램, UAM, 버스 등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의 분리판도 성능에 맞춰 제작할 수 있다. 특히 분리판 코팅 소재로 백금보다 저렴한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제조단가를 낮출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높은 생산성을 갖춘 최적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라며 “최근 한 연료전지 업체에서 우리의 기술을 자세히 알고 싶다며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복잡한 분리판 제조 빠르게

5축 금속 3D 프린팅 장비.
5축 금속 3D 프린팅 장비.

더센텍의 기술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한 연구동으로 향한다.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김일현 선임연구원이 한 장비에 있는 모니터 앞에 앉는다. 마우스로 여러 번 클릭하니 장비가 레이저를 쏘며 금속판에 유로를 새긴다.

이 장비는 고에너지 적층 방식으로 금속분리판 표면을 처리하는 장비다.

고에너지 적층 방식은 금속 3D 프린팅 기술 중 하나로, 분리판 표면에 고출력 레이저빔을 쏘면 멜팅풀(melting-pool, 열로 녹아 생긴 용융된 금속 영역)이 생긴다. 멜팅풀에 노즐로 금속분말을 분산하면 표면층과 분말이 같이 녹아 혼합된다. 이후 레이저가 지나가면 멜팅풀은 급속하게 응고되어 새로운 금속층을 형성한다. 이런 방식으로 한 층씩 쌓아가면서 3D 형상을 구현한다.

이를 통해 금형 없이 기존 기계 가공이나 프레스성형처럼 소재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형상을 정밀하게 구현해 분리판을 제작할 수 있다. 특히 직접 개발한 금속분말을 바로 적용할 수 있어 분리판 제조뿐만 아니라 새로운 분리판을 개발할 때도 유용하다.

여기에 고출력 레이저로 분리판 표면을 녹이는 기법을 활용하면 유로형성 작업도 가능해 유로형성부터 표면코팅까지 분리판 제조 공정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김일현 선임연구원은 “고에너지 적층 방식은 구조적 설계와 소재 조합에 따라 다양한 성능 요구사항을 맞출 수 있는 매우 유연한 제조 방식이다. 전도성이 높은 합금조성을 선택하거나 코팅기술을 병행하면 기존 금속가공 방식과 유사하거나 우수한 전도성을 확보하면서 저전압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조밀한 유로 및 구조 형성과 내부 냉각 채널 설계가 가능해 추가적인 기공 제거 공정 없이 높은 기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옆에 또 다른 장비가 있다. 이 장비의 특징은 지지대를 5축으로 움직이며 분리판을 제조한다. 5축은 직교측(X, Y, Z) 3개와 회전축(a, b) 2개로 이뤄진 좌표축을 일컫는다. 5축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소재를 쌓아 올리거나 표면을 깎을 수 있어 더 정교하고 복잡한 형상의 분리판을 제작할 수 있다.

다른 연구동으로 이동해 연구실에 들어서자 하얀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장비가 보인다. 아크이온플레이팅 장비다.

아크이온플레이팅 장비.
아크이온플레이팅 장비.

아크이온플레이팅 기술은 증발원인 금속을 기상화한 후 플라즈마를 이용해 금속을 양전위로 이온화시키면 이온화된 금속이온이 음전위로 인가된 기판으로 가속돼 박막이 형성되는 코팅기술이다. 높은 에너지 입자가 기판 표면에 충돌되기 때문에 기존의 물리 증착법보다 접착력이 향상되며 치밀한 막이 형성되는 이점이 있다.

김일현 선임연구원은 “이 장비는 분리판의 모든 면을 빠르게 코팅할 수 있어 고에너지 적층 방식의 금속 3D 프린팅 장비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센텍은 모빌리티용 연료전지 분리판과 발전용 연료전지 분리판의 두께가 다른 만큼 0.5mm 이상인 분리판은 금속 3D 레이저 프린팅으로, 0.5mm 이하인 분리판은 아크이온플레이팅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더센텍은 3D 프린팅 기반 분리판 제조 공정 기술뿐만 아니라 백금 등 귀금속 대신 분리판 코팅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했다. 바로 크롬알루미늄 합금이다.

크롬알루미늄 합금은 알루미늄에 크롬을 첨가해 만든 합금으로, 내식성과 내열성이 우수하다. 특히 고온에서 산화 및 부식에 대한 저항성이 뛰어나다. 금속분리판과 같은 박형구조물에서 고강도, 내구성, 내식성을 요구할 때 적합한 소재다.

알루미늄은 고온에서 자가 산화반응을 통해 치밀한 산화막(Al₂O₃)을 형성하며 내부 금속의 부식을 억제하는 보호층 역할을 한다. 크롬은 내식성과 기계적 안정성을 동시에 향상시키며, 산화 분위기에서도 장기적인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존 연료전지시스템에서는 고가의 귀금속(금, 백금 등)을 사용해 분리판 표면을 보호하거나 전도성을 확보했지만 크롬알루미늄 합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유사한 수준의 내식성과 구조적 강도를 제공한다.

크롬알루미늄 합금을 활용하면 연료전지의 경제성을 확보하고 상용화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일환으로 더센텍은 아크이온플레이팅 기술로 크롬알루미늄 합금을 코팅해 금으로 코팅한 것과 성능이 유사하고 가격경쟁력이 우수하다는 점을 인정받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크롬알루미늄 합금 소재.
크롬알루미늄 합금 소재.

수전해 등 적용 분야 확대

더센텍은 자동차 및 군드론 연료전지용 내부식성 금속분리판과 원전의 내방사선 가속도계 센서를 상용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향후 국방 분야 내열 고강도 부품 장비 보수·제작, 원전 터빈 블레이드 재생·보수 등의 사업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복수의 부품을 조립해 구현하던 기능을 3D 프린팅으로 일체형 구조로 통합할 수 있어 설계 유연성, 부품 경량화, 제조비용 절감 등의 이점이 있다. 또 다양한 금속 소재를 적용해 부품별 요구성능(열전도, 전기전도, 내식성 등)을 맞춤형으로 설계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더센텍은 수전해용 부품을 제조하는 공정을 개발할 계획이다.

금속분리판, 전극 백플레이트, 유로채널 등 수전해에 들어가는 부품의 구조와 기능이 연료전지와 같다. 다만 연료전지보다 내식성과 강도가 우수한 소재가 필요하다. 특히 금속분리판의 경우 복잡한 유로 구조와 미세피처 구현이 필수적이다.

더센텍은 적층제조 기술과 3D 프린팅 기술이 수전해용 부품에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김경호 대표이사는 “자동차용 연료전지 분리판이나 고정형 연료전지 분리판의 시범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시제품 단계에서 성능 검증과 공정 안정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후 연료전지 업체들과 협업해 실증데이터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상용화 및 양산체제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술적용 범위를 넓혀 연료전지 외에도 수전해, 산업용 열교환기, 항공우주부품 등 다양한 고기능 금속부품에 대한 적층제조 솔루션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수소경제를 포함한 차세대 에너지산업의 핵심 부품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