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

2024년 12월 23일 오전 11시 10분경 충북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주 목행수소버스충전소’에서 수소버스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당시 충전설비를 점검하기 위해 충전소를 찾은 한 업체의 직원 A씨가 얼굴을 다쳐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운전기사 B씨와 버스정비사 C씨도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로 인한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다.

충주시 관계자는 “사고 전날 해당 버스 계기반에 고장등이 떠서 인근 서비스센터에 버스를 입고하기 위해 이날 수소충전을 진행했다. 충전이 완료되자 안전조치를 한 후 시동을 걸었는데 몇 초 지나지 않아 폭발이 일어났다”라며 “버스기사와 정비사는 차량에 타고 있어 크게 다치진 않았으나 충전설비를 점검하기 위해 차량 뒤쪽에 있던 A씨가 폭발의 충격으로 크게 다쳤다”고 했다.

업계에선 사고 원인으로 불량 수소 주입을 추정했다. 이는 지난 2023년 11월 충주에 있는 바이오수소융복합충전소와 목행수소버스충전소에서 불순물이 섞인 수소연료를 공급해 다수의 수소승용차와 수소버스가 시동 불량 등의 문제로 운행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수소버스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곳에서 넥쏘 택시가 충전을 기다리고 있다.
수소버스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곳에서 넥쏘 택시가 충전을 기다리고 있다.

수소를 수소전기차용 연료로 사용하려면 순도가 99.97% 이어야 한다. 그러나 수소전기차용 수소연료를 생산, 저장, 운송, 충전하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불순물은 수소전기차에 탑재된 연료전지의 촉매를 손상시켜 과열과 성능 저하를 일으킨다. 심지어 예상치 못한 화학반응으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수소연료 품질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고 당시 수소 순도에는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불량 수소 주입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다. 이는 한 데이터를 통해 증명됐다. 바로 해당 충전소에 설치된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가 사고 당시 측정했던 수소연료 품질 데이터였다.

8종 불순물 측정
동충주IC를 나와 10분 정도 달리니 수소충전소가 보인다. 바로 충주 목행수소버스충전소다. 차를 세운 후 먼저 수소버스가 폭발했던 곳으로 간다.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 정도 지나서인지 생각보다 깨끗하다.

그러던 중 누군가 다가온다. 해당 충전소에 설치된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를 개발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반도체디스플레이측정그룹(이하 표준연)의 이정순 책임과 박미연 연구원이다.

이들을 따라 충전소 기계실 안으로 들어간다. 수소저장용기와 벽 사이에 사람 허리 높이의 철제 상자가 보인다. 이 상자가 표준연이 개발한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다.

박미연 연구원은 “충전소 현장 특성상 방폭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해당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선 방폭 시스템이 적용돼야 한다”라며 “수소 누출이 감지되면 수소가스 농도를 낮출 수 있는 질소를 분사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분석을 중지해 주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방폭장치 안에 장비를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안전검사를 완료했다는 인증서가 장비 뒤편에 붙어 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안전검사를 완료했다는 인증서가 장비 뒤편에 붙어 있다.

지난 1월 14일 표준연은 수소생산기지, 수소충전소 등에서 다루는 수소연료 속 불순물의 성분과 농도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모니터링하는 장비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현재 수소연료 품질 관리는 분기마다 검사기관이 현장을 방문해 수소연료를 채취한 후 전용 설비에서 불순물을 측정·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평소에 불순물이 생겨도 그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데다 인지하더라도 원인과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일부 수소충전소나 수소생산기지는 실시간으로 불순물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외산 장비를 구축했다. 

그러나 외산 장비는 가격이 비싼 데다 1~2개 성분만 분석할 수 있고 유지관리도 쉽지 않아 원활한 품질 관리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소충전소, 수소생산기지 등 수소연료를 다루는 인프라가 꾸준히 확대되면서 수소연료 품질 분석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현장에서 쉽게 가용할 수 있는 국산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의 필요성이 커졌다.

분기마다 진행되는 수소연료 품질 검사를 위해 샘플을 채취하는 곳(빨간 안)에 실시간 검사장비 배관을 연결했다.
분기마다 진행되는 수소연료 품질 검사를 위해 샘플을 채취하는 곳(빨간 안)에 실시간 검사장비 배관을 연결했다.

표준연은 지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빅이슈 사업인 ‘수소충전소 신뢰성 있는 측정표준기술개발’을 통해 수소연료 표준확립 연구를 진행, 수소의 불순물을 분석할 수 있는 표준물질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 ‘수소충전소 및 배관망 안전 제고를 위한 필수 장비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에 착수, 이번에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를 개발한 것이다.

이정순 책임은 “이 장비는 측정값과 불확도(측정 결과에 존재하는 의심의 정도)를 함께 표기한다. 표준물질을 이용해서 구한 분석값과 불확도는 표준 소급성을 가지게 되며 이를 통해 분석값의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비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관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14개 불순물 중 수증기, 산소, 아르곤, 이산화탄소, 메탄, 일산화탄소, 질소, 황화수소 등 총 8개 불순물을 상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질소, 산소, 아르곤, 이산화탄소는 공기에 노출됐을 때, 일산화탄소, 황화수소, 메탄, 수증기는 수소연료를 생산·처리할 때 발생한다.

다만 6개 불순물은 측정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가성비 때문이다.

이 책임은 “14개 불순물에 대한 국제 표준이 확립돼 있지 않은 데다 6개 불순물을 분석할 수 있는 장비가 따로 필요하다”라며 “측정대상인 8개 불순물은 공기누출, 탄소화합물, 수분 등으로 인한 가장 흔한 불순물이다. 특히 일산화탄소와 황화수소는 연료전지 수명과 성능에 치명적인 성분이므로 이를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불순물을 측정하는 기준은 ISO/TC 197을 따른다. ISO/TC 197은 생산, 수송, 저장, 유통, 보급 등 수소분야에 필요한 모든 기술과 안전을 검증하고 관리하는 국제기준이다.

방폭 시스템 안에 있는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 패널 오른쪽에 있는 숫자는 수소연료 수분불순물 수치.
방폭 시스템 안에 있는 수소연료 품질 실시간 모니터링 장비. 패널 오른쪽에 있는 숫자는 수소연료 수분불순물 수치.

ISO/TC 197을 관리하는 기술위원회는 수소 품질에 대한 지침과 수소충전소 형태별로 주요 불순물이 상이하므로 수소 중에 포함되는 최소한의 불순물만 정리하고 있다. 또 충전소 사업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해 최소한의 불순물을 선정하고 있다. 

특히 차량용 수소연료 내 불순물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기준은 ISO 14687(수소연료 품질에 관한 표준), ISO 21087(수소 품질 관리를 위한 분석법 검증에 관한 표준), ISO 19880(수소충전소 내 수소 품질 보증 및 관리에 관한 표준)에 따른다.

불순물 농도값은 연료전지 안에서 보이는 특성에 따라 잔류 허용치가 결정된다.

먼저 연료전지 안에서 반응성이 없는 불순물들(CH₄, He, N₂, Ar)의 최대 허용치는 100~300µmol/mol이다. 이들은 연료전지 수명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수소를 희석해 연료전지가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

농도가 높아질수록 연료전지 수명에 영향을 주는 불순물들(H₂O, O₂, CO₂, 메탄올 이외의 탄화수소)의 최대 허용치는 2~5µmol/mol이다. 예를 들어 많은 양의 O₂가 연료전지 양극에 유입되면 의도치 않은 산소환원반응이 발생한다. 이는 백금을 제외한 전극 구성품들을 산화시켜 전극 수명을 단축시킨다.

연료전지 안에서 가장 반응성이 높은 불순물들(황화합물, 할로겐 화합물, CO, 포름알데하이드, 포름산, 암모니아)의 최대 허용치는 0.004~0.2µmol/mol이다. 이들은 적은 양으로도 연료전지를 영구적으로 손상시키거나 복구가 어려운 손상을 준다.

장비는 수소저장용기와 우선순위 컨트롤 패널 사이에 설치됐다. 이는 용기에 저장된 수소가 디스펜서로 가기 전 품질을 측정하기 위함이다. 장비는 내부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각 불순물 신호를 검출해 이를 교정한 값으로 환산해 농도값을 표출한다.

수소연료 속 불순물의 농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높으면 해당 장비는 관리시스템을 통해 경고 신호를 보내고 데이터를 기록(LOG)한다. 관리자는 즉시 충전을 중단한 후 불순물 제거, 설비 점검 등을 진행해 불량 수소 주입을 막는다.

장비가 실시간으로 분석한 불순물 농도값이 표시되고 있다
장비가 실시간으로 분석한 불순물 농도값이 표시되고 있다

장비 보급 촉진 지원 필요
표준연은 앞서 평택과 완주에 있는 두 곳의 온사이트 충전소에서 실증을 진행한 후 작년 11월 해당 충전소에 장비를 설치했다. 박미연 연구원은 “여기가 3번째이자 마지막 실증 장소다. 실증은 2월 말까지 진행하고 과제는 오는 6월에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표준연은 현재 한 기업과 기술이전을 협의하고 있다. 협의가 완료되면 과제가 끝나는 대로 기술이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설치를 완료하고 해당 장비를 가동하던 2024년 12월 23일에 충주 수소버스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표준연은 사고 당시 기록된 불순물 측정 데이터를 분석, 수소연료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정순 책임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평소와 다름없이 수소연료가 깨끗했다”라고 말했다.

수소버스 폭발사고 때 수소연료 불순물 측정 데이터 자료.(그림=한국표준과학연구원)
수소버스 폭발사고 때 수소연료 불순물 측정 데이터 자료.(그림=한국표준과학연구원)

표준연은 이러한 의견을 충전소 관계자에 전달했다. 이를 통해 사고 원인을 차량 결함에 의한 것으로 좁힐 수 있었다.

여기에 사고 발생 전날 버스 계기반에 F로 시작하는 고장 코드가 발견돼 버스회사가 보유한 스캔 장비로 스캔한 결과 현대차 AS센터로 입고하라는 안내가 있었다는 증언이 더해져 불량 수소 주입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기정사실로 됐다.

이같이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는 폭발 위험성이 있는 가연성 기체 물질인 만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 즉각 조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표준연이 이번에 개발한 수소연료 품질 검사장비가 수소연료를 다루는 충전소, 수소생산기지 등에 빠르게 보급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수소저장용기(왼쪽)와 우선순위 컨트롤 패널 사이에 설치된 수소연료 품질 검사 장비.
수소저장용기(왼쪽)와 우선순위 컨트롤 패널 사이에 설치된 수소연료 품질 검사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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