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입품 관세 부과 및 친환경차 보조금 불확실성 확대
사업비 증가 및 가격경쟁력 약화로 투자 심리 위축
포테스큐, 우드사이드, 에어프로덕츠 등 기업들, 사업 전면 취소
美 화석연료 산업 우대 정책으로 블루수소 시장 활성화 가능성

포테스큐가 호주에 구축한 수전해 제조공장. 포테스큐는 이곳에서 생산된 전해조를 기반으로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사진=포테스큐)
포테스큐가 호주에 구축한 수전해 제조공장. 포테스큐는 이곳에서 생산된 전해조를 기반으로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사진=포테스큐)

다국적 자동차 제조업체 스텔란티스가 지난 8월 16일 수소전기차 개발 및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수익이 급감하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수소차는 개발 비용과 양산을 위한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 차량판매가격이 전기차보다 높다. 이런 이유로 수요를 끌어내기 위한 상당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 EU 등 주요국의 지원책이 수소차보단 수소의 생산·인프라 구축에 집중돼 있는 데다 연간 세계 수소전기차 판매량이 2만 대가 되지 않을 만큼 작다.

이런 상황에서 미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와 부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데다 수소차 구매 보조금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의 친환경차 시장을 공략하기가 어려워졌다.

스텔란티스는 올여름부터 프랑스와 폴란드에서 수소전기밴을 양산, 유럽과 미국에 수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스텔란티스는 올 상반기에 23억 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북미 지역 차량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5% 급감한 것이 컸다.

그 결과 관세로 인한 손실이 약 3억 유로에 달했다. 관세 영향은 더욱 커져 연간 최대 10억~15억 유로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스텔란티스는 기술개발, 신차 출시, 차량 생산 등 수소전기차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모든 수소기술 연구개발 활동을 다른 프로젝트로 전환할 계획이다.

또 미쉐린, 포르비아와 함께 공동출자한 연료전지 전문업체 심비오의 지분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굵직한 사업들 잇따라 취소

스텔란티스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이 미국의 관세정책 여파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미국에서 추진하던 수소 프로젝트를 취소하고 있다.

관세정책 여파로 인해 수익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전해조 등 청정수소 생산에 필요한 수입부품의 가격이 관세로 인해 상승하자 사업비용이 치솟았다. 사업비용이 치솟으면 향후에 생산될 수소의 판매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나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로 인해 청정수소 세액공제 제도인 ‘섹션 45V(Section 45V)’가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수요처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가격경쟁력마저 낮아지면 프로젝트를 추진할 이유가 사라진다.

여기에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관세가 크게 변동하는 만큼 사업 추진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사업비용이 당초 계획보다 증가하고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자금 조달은 더 어려워진다.

호주의 광산업체인 포테스큐(Fortescue)는 지난 7월 말에 열린 투자자 컨퍼런스콜에서 미 애리조나에서 추진 중이던 액화수소 생산기지 구축사업을 전면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은 5억5,000만 달러를 투입해 80MW 규모의 수전해 시스템과 액화수소 생산시설을 구축해 연간 1만1,000톤 이상의 액화수소를 생산하는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테스큐는 지난해 5월 부지를 매입하고 조성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미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로 불확실성이 커졌다. 특히 2025 회계연도 상반기(2024년 7~12월) 순이익이 철광석 가격 하락, 자본지출 증가 등으로 인해 전년동기대비 54%나 감소했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포테스큐를 포함한 호주의 주요 철광석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기도 했다.

결국 포테스큐는 애리조나 액화수소 생산기지 구축사업을 더는 실행할 수 없다고 보고 전면 취소했다.

이와 함께 호주 퀸즐랜드에서 추진 중이던 PEM50 프로젝트도 포기했다.

PEM50 프로젝트는 호주 퀸즐랜드 글래드스톤에 1억5,000만 달러를 투입해 50MW 규모의 PEM 수전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간 최대 8,0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포테스큐는 30MW의 수전해를 설치해 올해부터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1단계 사업을 추진해왔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23년 11월 이사회의 최종투자결정 승인과 호주 연방정부의 보조금 지원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손실이 커지자 해당 사업에 대한 투자가 손실로 전환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전면 취소했다.

우드사이드 에너지가 최근에 취소한 미 오클라호마 액화수소 생산공장 예상도.(사진=우드사이드 에너지)
우드사이드 에너지가 최근에 취소한 미 오클라호마 액화수소 생산공장 예상도.(사진=우드사이드 에너지)

호주의 석유·가스 회사인 우드사이드 에너지도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추진하던 액화수소 생산공장 구축사업인 ‘H2OK’를 지난 7월에 취소했다.

H2OK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아드모어 지역에 수전해 시스템으로 만든 그린수소로 하루 최대 60톤의 액화수소를 만드는 공장을 구축하고 인근 수요처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공급망 문제, 관세 등의 영향으로 사업비용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하고 섹션 45V 정책이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자 사업을 전면 취소했다.

대신 지난해 6월 OCI로부터 인수한 저탄소 암모니아 프로젝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프로젝트는 텍사스주에 연간 110만 톤의 블루암모니아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이르면 올 하반기에 상업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투자비 늘고 세액공제 혜택은 줄어

미국의 산업용 가스 및 화학물질 제조기업인 에어프로덕츠는 지난 2월 미국 뉴욕주에서 추진 중이던 그린액화수소 생산공장 구축사업을 전면 취소했다.

이 사업은 뉴욕주 매세나에 약 5억 달러를 투자해 인근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으로 하루 35톤의 그린액화수소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우는 것이다.

에어프로덕츠는 내년 말에 상업생산을 시작하기로 하고 지난해 10월 부지 매입과 직원 고용이 완료되자마자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의 조치로 청정수소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경제성이 낮아진 데다 관세정책 영향으로 전해조 등 주요부품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투자비용이 예상보다 증가하자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이유로 에어프로덕츠는 애리조나 그린액화수소 생산공장 구축사업과 캘리포니아 수소생산공장 및 파이프라인 구축사업도 전면 취소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는 미국에서 추진 중인 여러 수소 프로젝트를 재검토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사업들을 취소할 예정이다. 이는 미국의 관세정책 여파로 인한 수익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티센크루프 누세라의 염소-알칼리 수전해 시스템.(사진=티센크루프 누세라)
티센크루프 누세라의 염소-알칼리 수전해 시스템.(사진=티센크루프 누세라)

티센크루프의 2분기 매출은 86억 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5.5% 감소했다. 자동차, 기계공학, 건설 산업의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하락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2024/2025 회계연도 연간 매출 전망은 기존 0~3% 감소에서 5~7% 감소로, 이자 및 세금 차감 전 이익은 기존 전망치보다 낮은 6억~10억 유로 사이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티센크루프의 옌스 슐테(Jens Schulte)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 기업들이 초과 생산량을 저렴하게 유럽에 공급하려 할 것”이라며 “이는 시장 가격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고객사들이 관망하거나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티센크루프는 실적 안정화를 위해 철강사업부문 인력을 40% 감축하고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계획과 티센크루프 누세라가 추진 중인 여러 수소 프로젝트를 재검토하고 있다.

영국의 에너지기업인 BP는 지난 6월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추진 중이던 블루수소 생산기지 구축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이 사업은 인디애나주 내 정유공장에서 천연가스와 CCS로 생산한 블루수소를 일리노이주, 미시간주 등 미국 중서부 산업 지역에 공급하는 것으로, 미 에너지부가 추진하는 중서부 청정수소 허브사업의 핵심인 만큼 10억 달러의 연방정부 지원금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천연가스 가격의 변동성 증가와 CCS 기술의 높은 비용으로 인해 경제성이 불투명해지고 연방정부의 지원이 불확실해지면서 투자 리스크가 커졌다. 인근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CCS 저장소를 구축할 부지를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수익이 악화하자 BP는 친환경 에너지 투자 계획을 일부 축소하고 석유·가스 사업에 다시 집중하기로 하면서 인디애나주 블루수소 생산기지 구축사업을 중단한 것이다.

BP는 인디애나주 블루수소 생산기지 구축사업뿐만 아니라 영국 하이그린 티사이드 프로젝트, 호주 재생에너지 허브 등 초기 단계에 있던 18개의 수소 프로젝트를 취소 또는 보류했다.

화석연료 중심 정책에 블루수소 촉진?

여러 청정수소 프로젝트가 취소됨에 따라 미국의 청정수소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화석연료 산업을 우대하는 만큼 미국의 청정수소 시장이 천연가스를 활용하는 블루수소를 중심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부터 텍사스주에 구축 중인 LNG 수출시설 예상도.(사진=Texas LNG)
지난해부터 텍사스주에 구축 중인 LNG 수출시설 예상도.(사진=Texas LNG)

지난 2월 트럼프 행정부는 LNG 수출 승인 정상화, 전략 비축유 확보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에너지 인프라 프로젝트 인허가 간소화 등이 포함된 ‘미국 에너지 지배력 9대 원칙’을 발표하고 화석연료 생산 확대, 규제 완화, 에너지 가격 안정 등을 통해 미국의 에너지 주도권을 강화할 ‘국가 에너지 지배력 위원회’를 백악관에 설치했다.

지난 7월엔 미국환경보호청이 온실가스 배출이 인류 건강을 위협한다는 ‘위해성 판단’을 폐기해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각종 환경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에 메탄 누출량 계산 방식 완화, 프로젝트별 특정 데이터 입력 허용, 인프라 구축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천연가스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CCUS가 화석연료 생산을 증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실례로 지난 7월 미 행정부는 핵심 세제 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을 공포하면서 CCUS 세액공제 제도인 45Q을 개정했다.

45Q 개정안의 핵심은 ‘이산화탄소-강화 원유 회수(EOR)’에 대한 세액공제 단가가 기존 톤당 60달러에서 85달러로 상향된 것이다. EOR은 탄소를 유전에 주입해 석유회수율을 높이는 기술로, 화석연료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을 확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정책 기조로 인해 천연가스와 CCUS 공급 안정성이 높아지고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나면 블루수소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BP가 대규모 블루수소 프로젝트를 포기할 만큼 여전히 제약이 많아 블루수소 시장이 활성화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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