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기업들은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수소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기업들은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환경부의 수소충전소 구축현황에 따르면 2024년 12월까지 구축된 수소충전소는 총 386기로, 300기를 기록했던 2023년 12월보다 86기 늘었다.

또한 국토교통부의 자동차등록통계에 따르면 수소차 등록대수는 2023년 12월 3만4,256대에서 2024년 12월 3만7,930대로 10.7% 증가했다.

이를 미뤄보면 국내 수소경제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녹록치 않다.

수소는 매우 다루기 힘든 물질이어서 대규모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안전 규정을 확립하고 고비용 기술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해서 보급 확대나 비용 절감을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승용차, 트럭, 버스, 드론, 지게차, 선박 등 다양한 수소모빌리티가 개발되고 있지만 수소승용차와 수소버스 외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 상황이 어수선해지면서 국내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는 데다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조치로 인해 수출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

아울러 수소분야 규제 완화 속도가 더디다. 실례로 산업부는 수소모빌리티 활성화를 위해 오는 5월부터 수소충전소 이격거리 규제와 수소충전소 충전대상 규제를 완화한다. 이를 위해 2024년 2월 입법예고했다. 그런데 통상 한 달 정도 소요되는 법제처 심사가 무려 9개월이나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규제 완화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수소경제가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수소사업 투자를 조절하고 있다.

소비처 확대 지연

이장우 대전시장(가운데) 등이 지난 2022년 11월 대전시청에서 열린 연료전지발전소 투자 및 업무협력 협약식에서 협약을 맺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전시청)
이장우 대전시장(가운데) 등이 지난 2022년 11월 대전시청에서 열린 연료전지발전소 투자 및 업무협력 협약식에서 협약을 맺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전시청)

지난 2024년 8월 대전시는 LS일렉트릭, SK가스, 기성동 주민위원회 등과 맺은 업무협약을 해지하며 연료전지 발전소 구축 사업을 철회했다. 대전시는 3,500억 원을 투입해 2027년까지 서구에 있는 평촌지구일반산업단지에 40MW급 연료전지 발전소를 구축할 계획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한국중부발전과 두산에너빌리티는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에서 추진 중이던 100MW급 연료전지 발전소 구축 사업을, 한국남부발전은 부산 사하구에서 추진 중이던 15MW급 연료전지 발전소 구축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이 사업들이 무산된 것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먼저 수소를 만들 때 사용되는 LNG 가격이 급등했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현재 연료전지용 천연가스 도매요금은 2월 1일 기준 17.1원/MJ이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0.3원/MJ 낮다. 그러나 2020년 12월(8.35원/MJ)과 비교하면 2배가량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수소발전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한 수소발전의무화제도가 복병이 되고 있다. 이 제도는 발전소 사업자가 수소로 만든 전기를 정부가 매년 일정 규모 이상 구매하는 제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개설했다.

문제는 낙찰을 받기 위해선 판매가를 낮춰야 한다. 사업자는 보유한 설비에서 생산된 전기의 1kWh당 고정비와 연료비를 산정한 후 판매가를 결정해 입찰한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되는 수소·암모니아 도입 단가가 워낙 비싸 정부가 제시한 전력 도입 단가를 맞추기가 어렵다.

실례로 경쟁입찰의 상한가격은 청정수소 발전량 기준 1kWh당 500원 안팎이다. 그런데 SK이노베이션 E&S는 2024년 CHPS 경쟁입찰에서 650원대를 제시하면서 평가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한국남부발전은 최저 입찰가인 460원 안팎을 제시하면서 유일하게 낙찰을 받았다.

이에 업계는 가격상한선을 조정하거나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상한선을 올리면 수요처의 전력요금 인상 우려 등 직접적인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가격상한선 조정에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연료전지 전력판매단가가 낮아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수소발전 입찰시장이 개설되기 전인 2023년 상반기 연료전지 전력판매단가는 250원/kW이었으나 입찰시장이 개설된 후인 하반기엔 226원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남부발전 신인천빛드림본부에 설치된 두산퓨얼셀의 발전용 PAFC 연료전지.
한국남부발전 신인천빛드림본부에 설치된 두산퓨얼셀의 발전용 PAFC 연료전지.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초기투자비용, 유지관리비용 등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에 연료전지 발전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소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다.

수소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대규모 수소 소비처를 확보해야 한다. 연료전지 발전소는 대표적인 대규모 수소 소비처다. 예를 들어 50MW급 연료전지 발전소는 시간당 약 3톤의 수소를 소비한다. 참고로 수소시내버스의 1회 평균 충전량은 12.6kg이다. 즉 연료전지 발전소가 많아지면 수소 소비량이 증가해 수소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또한 연료전지, 개질기, 저장탱크, 배관 등 연료전지 발전소에 들어가는 장치를 공급하는 업체들의 수익이 늘지 않는다. 수익이 늘지 않으면 기업들은 기술개발 등에 투자하는 일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생산처 확대 지연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4년 10월에 발간한 ‘글로벌 수소 리뷰 2024’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수소 생산량은9,700만 톤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이 중 저탄소 수소가 전체 수소 생산량의 1% 수준인 100만 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탄소 수소 생산량이 1%에 불과한 것은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IEA가 전세계에서 발표된 프로젝트들을 분석한 결과 2030년 연간 저탄소 수소 생산량은 4,9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때 글로벌 수전해 용량은 520GW까지 확대돼 저탄소 수소 생산량의 3분의 2가 수전해를 통해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3년 말까지 설치된 수전해는 1.4GW로 전년대비 2배가량 늘었으나 IEA가 2021년에 예상했던 용량의 6분의 1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수전해 프로젝트 중 최종투자결정(FID)을 통과했거나 건설 중인 프로젝트가 4%에 불과하다. 이 중 2023년에 FID를 통과한 프로젝트는 약 6.5GW로 전년동기 대비 12% 줄었다.

심지어 기술적 성숙도, 비용, 규제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때문에 여러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이같이 청정수소 생산 인프라 확대 속도가 더디다.

실례로 제주특별자치도는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에서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수전해 시스템 4종(AEC, PEM, SOEC, AEM)을 설치하고 생산된 그린수소는 함께 구축될 충전소를 통해 청소차, 버스 등에 공급한다.

정부 예산 삭감으로 규모가 줄어든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이 진행될 제주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
정부 예산 삭감으로 규모가 줄어든 그린수소 생산 실증사업이 진행될 제주 동복·북촌풍력발전단지.

그런데 지난해 사업 규모가 12.5MW에서 10.9MW로 축소됐다. 이는 정부가 2024년 R&D 예산을 당초 103억4,200만 원에서 28억3,000만 원(27.4%)이나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5MW급 PEM 전해조를 개발해 실증에 참여하기로 했던 SK플러그하이버스가 포기 의사를 밝혔다. 과제비에 맞춰 이미 개발을 완료한 1MW급 전해조 몇 개를 붙여서 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SK플러그하이버스가 빠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공개 입찰을 진행했고, 두산에너빌리티가 참여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퓨얼셀 아메리카의 자회사인 하이엑시엄(HyAxiom)에서 개발 중인 PEM 수전해를 현장에 넣는다.

또한 호주 최대 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인 CQ-H2는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CQ-H2는 퀸즐랜드주 동쪽에 있는 글래드스턴에 풍력과 태양광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한 후 이를 액체수소와 암모니아로 만들어 인근 산업단지에 공급하거나 일본,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는 2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1단계는 720MW의 수전해를 설치해 2029년부터 하루 2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것이며, 2단계는 2030년 초반까지 수전해 용량을 약 3GW로 늘리고 하루 그린수소 생산량을 800톤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컨소시엄은 현재 진행 중인 FEED연구가 완료되면 올해 안으로 1단계에 대한 FID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월 4일 퀸즐랜드 주정부가 재정 지원을 전격 철회한 것이다.

컨소시엄은 주정부에 10억 호주달러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을 철회한 배경은 비용 상승으로 인해 경제성이 없는 데다 주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에 진행된 퀸즐랜드주 선거에서 자유국민당(LNP)이 승리하면서 현재의 내각을 구성했다. 내각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 비율을 유지하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더는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데이비드 자넷츠키 퀸즐랜드주 재무·에너지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이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전력’을 제공하려는 주정부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가 호주 연방정부의 그린수소사업 지원 프로그램인 ‘수소 헤드스타트 프로그램’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호주 연방정부는 아직도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현지에선 오는 5월에 열리는 연방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할 경우 해당 프로그램이 완전히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폐지 위기에 놓인 호주 최대 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 CQ-H2의 예상도.(사진=CQ-H2)
폐지 위기에 놓인 호주 최대 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 CQ-H2의 예상도.(사진=CQ-H2)

투자 속도 조절
지난 2022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2 H2 인베스터 데이’에서 수소펀드 출범을 선포했다.

수소펀드는 민간 기업들이 수소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 자발적으로 조성을 추진했고 5,000억 원 규모를 목표로 결성해 10년간 운용 후 청산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수소 생산·유통·저장 인프라를 구축하고 핵심 수소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2022년 말까지 투자자를 모집하고 자금을 매칭해 2023년 초부터 수소분야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도 수소펀드 조성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업계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투자 속도를 조절하느라 기업들이 펀드 참여를 미루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례로 롯데케미칼은 지난 2022년 5월 2030년까지 수소사업에 6조 원을 투자해 연간 수소 생산량 120만 톤, 매출 5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소사업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데다 석유화학사업 부진으로 수익이 감소하자 투자금액과 매출액을 각각 3조 원으로, 연간 수소 생산량을 60만 톤으로 대폭 축소했다.

SK이노베이션 E&S는 미국의 플러그파워와 추진 중인 연료전지·수전해 기가팩토리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들은 인천 청라 첨단산업단지에 약 1조 원을 투입해 연료전지와 전해조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 E&S가 수소사업 추진 속도를 조절하면서 부지조차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수소드론 전문 자회사인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에 건물용 연료전지 전문 자회사 두산퓨얼셀파워의 사업을 양수했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DMI의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또 두산에너빌리티가 투자해 창원에 구축한 액화수소플랜트는 2024년 1월에 준공했음에도 운영사인 하이창원에 설비를 인계하는 작업이 의견 차이로 인해 아직도 완료되지 않아 상업 가동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수소펀드가 실제로 운용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2022년 서울 DDP에서 열린 ‘2022 H2 인베스터 데이’에서 수소펀드 출범 선포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서울 DDP에서 열린 ‘2022 H2 인베스터 데이’에서 수소펀드 출범 선포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실적인 정책으로 투자 유도
지난 2022년 11월 정부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를 통해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및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이라는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소경제 정책방향인 3대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3대 성장 전략은 규모·범위의 성장, 인프라·제도의 성장, 산업·기술의 성장을 주축으로 한다.

‘규모·범위의 성장’은 발전·수송 분야에서 대규모 수소 수요를 창출하고, 글로벌 수소 공급망을 구축해 청정수소생태계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또 수소, 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실현하고, 수소버스·트럭 등 대형 모빌리티 보급을 확산시키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대규모 생산기지를구축하는 것이다.

‘인프라·제도의 성장’은 청정수소 활용 촉진을 위한 유통 인프라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세계 최대 수준의 액화수소플랜트를 구축하고, 액화수소충전소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암모니아, 액화수소 인수기지를 건설하고, 수소 전용 배관망을 구축하며 수소발전입찰시장 개설, 수소 사업법 제정, 청정수소인증제 도입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산업·기술의 성장’은 세계 1등 수소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을 혁신할 계획이다. 활용뿐만 아니라 생산, 유통 전주기의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7대 전략분야를 육성하며 기술력 있는 수소기업을 발굴해 지원을 강화한다. 또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과감하게 개혁하고 수출상품화를 통해 해외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됨에 따라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및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이라는 정부의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소전기차 및 수소충전소 보급 확대 정책 유지, 청정수소 발전사업 참여기업 재정 지원, 뚜렷한 방향 설정으로 불확실성 해소 등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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