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버스가 개발 중인 수소동력항공기.(사진=에어버스)
에어버스가 개발 중인 수소동력항공기.(사진=에어버스)

유럽 다국적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가 수소항공기 개발 계획을 전면 연기하는 한편 수소항공기 개발 선두주자였던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이 폐업하는 등 수소항공기 미래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에어버스는 지난 2020년 9월 2035년에 세계 최초로 수소항공기를 상용화하겠다며 4종의 수소항공기와 관련 인프라를 개발하는 개념인 ‘ZEROe’를 발표했다. 

4종의 수소항공기는 최대 200명의 승객을 태우고 2,000해리(약 3,704km) 이상을 운항할 수 있는 터보팬 항공기와 블렌디드 윙바디 항공기, 최대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1,000해리(약 1,852km) 이상을 운항할 수 있는 2발 터보프롭 항공기와 6발 터보프롭 항공기다. 각 항공기엔 기존 가스터빈 엔진을 개조한 수소터빈 엔진과 액화수소저장탱크가 탑재된다.

그 일환으로 에어버스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에 ZEROe 개발 센터(ZEDC)를 세웠다. 이곳에선 액체수소를 저장하는 극저온탱크, 수소추진기술 등 수소항공기에 적용할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   

또 에어버스는 2024년 1월부터 노르웨이 국영 공항 운영사 아비노르(Avinor), 스웨덴 국영 공항 운영사 스웨다비아(Swedavia) 등과 2개국 50개 이상의 공항을 대상으로 수소항공기 운영에 적합한 공항을 탐색하고 수소항공기 개념과 운영, 공급, 인프라, 연료보급 필요성 등을 확립하는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울러 에어버스는 2024년 5월 자회사인 에어버스 업넥스트가 개발한 2MW급 초전도 전기 추진 시스템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액체수소의 특성인 극저온을 활용해 연료전지에서 추진 시스템으로 전송되는 전압을 낮춰 연료절감 효과를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수소항공기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던 에어버스가 개발 계획을 전면 연기했다.

에어버스는 지난 2월 8일 성명을 통해 “수소는 항공에 혁신적인 에너지원이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러나 인프라, 생산, 유통, 규제를 포함한 수소생태계를 개발하는 것이 협력과 투자가 있어야 하는 엄청난 과제라는 것을 인식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ZEROe에 할당된 예산을 25% 삭감하고 A380 항공기를 활용한 연료전지 추진 시스템 테스트 계획을 중단했다. 그러나 수소항공기 상용화 시점을 얼마나 연기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노조가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기존 목표인 2035년보다 5~10년 정도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어버스는 도심형 배터리전기헬리콥터 개발 계획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기술 발전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결정에 수소항공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시 커졌다.

지난해 8월 수소연료전지 기반 항공기 전원공급장치(H2-GPU) 실증이 진행된 암스테르담 스키폴국제공항.(사진=스키폴국제공항)
지난해 8월 수소연료전지 기반 항공기 전원공급장치(H2-GPU) 실증이 진행된 암스테르담 스키폴국제공항.(사진=스키폴국제공항)

여전히 안갯속
글로벌 항공사들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 도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SAF만으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는 만큼 수소항공기 도입이 불가피하나 걸림돌이 많아 상용화가 언제 이뤄질지 가늠할 수 없다.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업체인 보잉(Boeing)의 토드 시트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해 7월에 열린 ‘영국 판버러 국제에어쇼’에서 기자들에게 “수소의 가연성이 전통적인 제트연료의 가연성을 크게 초과한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또 글로벌 전략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는 지난 2022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 항공기로 수소항공기를 개발하면 항속거리는 최대 2,500km로 제한될 수 있다”며 “항공기와 수소저장기술을 재설계해야만 좌석수를 줄이지 않고도 항속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즉 연료전지, 저장용기 등 핵심 장치들의 무게로 인해 효율이 떨어져 많은 승객을 태우거나 장거리를 운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수익과 직결된다. 이에 항공사들은 수소항공기 개발업체에 ‘비싼 거 써도 되니 가볍게만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무엇보다 공항에 있는 기존 항공유 인프라를 수소연료 인프라로 전환하기 위해선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소연료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하기가 어렵다. 아울러 수소항공기와 수소연료 인프라에 대한 안전 프로토콜을 개발해야 하고 프로토콜에 따라 안전사고 예방조치를 할 때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부담된다.

EU 항공안전기관 관계자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인승 이하 항공기에 대한 규칙이 성능에 기반을 두고 있어 수소 추진 관련 규정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대형항공기의 경우 규정이 더 엄격해 현재 형태로는 모든 측면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이 시연비행에 사용한 수소전기항공기.(사진=Universal Hydrogen)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이 시연비행에 사용한 수소전기항공기.(사진=Universal Hydrogen)

노력은 하지만
그런데도 여러 업체는 수소항공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7월 SK가 투자한 미국의 배터리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제조업체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은 ‘수소전기VTOL’ 시연비행에 성공했다.

또 중국에선 무인 수소전기VTOL 시험비행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 항공기는 1톤의 액체수소로 중국 북서부 산시성 바오지시 일대에서 비행했다. 시험비행을 진행한 업체들은 평균 시속 240km로 최대 1,000km를 항속할 수 있는 무인 수소전기VTOL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수소항공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짙어졌다. 수소항공기 개발 선두주자였던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이 폐업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에 설립된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은 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수소항공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에어버스, 도요타, 아메리칸항공 등으로부터 1억 달러(약 1,360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2023년 3월 40인승 항공기를 개조한 수소항공기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시험비행 성공으로 수소항공기 상용화 가능성이 커지는 듯 했으나 기술적 난관, 높은 비용, 인프라 부족, 규제 등으로 인해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은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자금을 모두 소진함에 따라 지난해 6월 문을 닫았다.

일각에선 수소항공기 개발업체 중 일부가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처럼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2년 내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는 수소항공기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

유럽 항공 산업은 지난 2월 6일 항공분야 탈탄소화 로드맵인 ‘Destination 2050’의 새로운 버전을 공개했다. 산업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할 때 수소항공기의 기여도는 6%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1년에 발표한 이전 버전에서 예상했던 20%의 4분의 1 수준이다.

산업은 “기술적 한계로 수소항공기 출시 시점이 2035년 이후로 연기됨에 따라 시장 점유율이 기존 예상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출시가 더욱 늦어진다면 기여도는 더욱 낮아질 것이며 현재 진행 중인 R&D 투자에 대한 수익은 21세기 후반이 되어야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조비 에비에이션이 시연비행에 사용한 수소전기VTOL. (사진=Joby Aviation)
조비 에비에이션이 시연비행에 사용한 수소전기VTOL. (사진=Joby Av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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