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의사결정기구인 당사국총회(COP)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당사국들은 교토의정서에서 6대 온실가스를 정의했다. 6대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이다.
육불화황(SF₆)은 불소와 황의 화합물로, 화학적 안정성이 높고 절연성이 우수해 전기를 차단하고 연결하는 개폐기, 반도체 제조 공정(삭각, 세정, 절연 등), 어뢰 엔진 연료 등에 쓰인다.
문제는 배출량이 1%도 안 되지만 6대 온실가스 중 온실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2022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대비 2.3% 감소한 7억2,429만 톤이다. 이 중 육불화황 배출량은 0.5%인 362만 톤으로, 2021년보다 0.3%p 감소했다.
그런데 육불화황은 열적 안정성이 매우 뛰어나 완전 분해를 위해서는 1,000℃ 이상의 고온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한 번 배출되면 무려 3,200년이나 대기에 남는다. 이는 이산화탄소(200년)보다 3,000년을 더 남는 것이다.
그 결과 육불화황의 지구온난화지수는 이산화탄소의 2만3,900배에 달한다. 지구온난화지수는 임의의 화학물질 1kg이 지구의 대류권으로 방출됐을 때 일정한 기간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산화탄소를 기준물질로 해 환산한 수치다. 즉 육불화황 1kg은 이산화탄소 1kg의 2만3,900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울러 육불화황이 부분 방전이나 고온으로 인해 분해될 경우 HF(불화수소), SO3(삼산화황), SO2(이산화황) 등 유해가스를 생성한다.
한국, 미국, EU, 일본 등은 육불화황을 줄이기 위해 대체재나 분해기술을 개발하고 배출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실례로 EU는 지난 2014년부터 F-가스의 총량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F-가스는 육불화황,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등 불소를 함유한 온실가스를 통칭하는 용어다.
이런 추세에 대응하고자 한국전력, 한국서부발전 등 국내 발전사들은 고전압 개폐기 등 육불화황을 사용하는 전력설비를 친환경 전력설비로 교체하려 한다. 기존 설비를 친환경 설비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불화황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고자 육불화황 분해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2020년부터 육불화황 분해기술 연구개발에 착수, 지난 2022년 9월 대전에 있는 전력연구원 본원에 ‘LPG 활용 육불화황 분해 및 무해화 실증 설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2톤의 육불화황을 분해하는 실증을 완료하고 설비 신뢰성과 안정성을 검증했다.
한국전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부발전과 온실가스 배출이 전혀 없는 ‘수소 활용 육불화황 분해 및 무해화 시스템’ 개발에 착수,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수소를 활용해 육불화황을 분해하는 ‘수소 활용 육불화황 분해 및 무해화 센터’를 구축했다.
1.1kg 수소로 25kg 육불화황 분해
당정역 인근엔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의왕시험동이 있다. 그 옆으로 샛길이 있다. 샛길을 따라 올라가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수십 개의 SOFC가 열을 뿜어내며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곳은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10MW급 의왕 연료전지 발전소다. 서부발전과 국가철도공단은 철도 유휴부지 활용 연료전지 발전사업의 일환으로 수도권 지역 노후변전소 개량사업에 따라 철거 예정이었던 군포변전소를 의왕 연료전지 발전소로 전환했다.
의왕 연료전지 발전소 옆 유휴부지에 ‘수소 활용 육불화황 분해 및 무해화 센터’가 들어섰다.
센터는 수소를 연소 열원으로 사용해 육불화황을 열분해하고 중화반응으로 무해화해 육불화황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곳이다. 지난 2023년 3월 ‘수소 활용 육불화황 분해기술 개발 및 실증 공동연구과제’에 착수한 지 2년 만이다.
서부발전 수소사업실의 최병규 실장과 류오기 차장,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의 안지호 선임연구원을 따라 센터 관리동을 나와 맞은 편에 있는 2층 건물로 간다.
건물 앞에 있는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니 원통형 장비가 보인다.
이 장비는 1,000℃ 온도로 육불화황을 분해하는 분해반응기다. 분해반응기는 버너로 수소를 태워 화염 온도를 최대 2,000℃까지 올린다. 그러면 반응기 내부 온도가 1,000℃까지 올라간다. 이를 통해 육불화황을 열분해한다.

안지호 선임연구원은 “분해반응기에 적용된 버너는 버너전문업체와 함께 개발한 수소버너다. 이 수소버너로 반응기 내부 온도를 육불화황을 분해할 수 있는 1,000℃로 올린다”며 “또 규정에 따라 용기 표면 온도가 80℃를 넘지 않도록 반응기를 두껍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버너에 주입되는 수소량은 시간당 1.1kg이며 이를 통해 시간당 25kg, 연간 최대 60톤의 육불화황을 열분해한다. 이들은 관리동 건너편에 있는 가스저장소에서 배관을 통해 공급된다.
육불화황은 분해반응기에서 SOx(황산화물), HF(불화수소), H2O(물)로 분해된다. 분해가스는 1층에 있는 급속냉각기로 이동한다.
급속냉각기는 1,000℃에 달하는 분해가스를 70℃ 이하로 급속 냉각시키는 장치다. 분해가스를 냉각시키는 것은 분해된 SF6가 재결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냉각은 급속냉각기 하부에 있는 순환수조 내 중화수를 급속냉각장치로 뿌리는 방식으로 한다.
스크러버 내부엔 순환수와 공기의 접촉 면적을 넓혀 중화 효율을 높이는 충진재가 있다. 이 충진재는 분해가스와 순환수가 넓은 면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분해가스가 걸러진다.
안지호 선임연구원은 “분해가스가 걸러지더라도 물에 잘 녹는 HF가 비산처럼 날아갈 수 있다. 이것은 전기집진기(전하로 공기나 가스 내 입자상 물질을 제거하는 장치)로 물방울들을 다시 흡수해서 걸러내고 건조한 공기만 밖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즉 중화 처리로 만들어진 물방울들이 수증기로 날아가지 않도록 여러 번 걸러내는 것이다.
아울러 중화과정에서 생성되는 염(KF, K2 SO4)을 전기전도도, 수소이온농도 변화로 직접 감지·제어해 설비 막힘과 비효율을 방지한다.

이를 통해 99% 이상의 육불화황이 분해돼 무해화가스로 대기로 배출된다. 무해화가스의 농도는 대기환경보전법 기준에 따라 HF는 2ppm 이하, SO2는 30ppm 이하다.
1층 무해화시설을 둘러본 후 가스저장소로 이동한다.
가스저장소는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한 곳은 육불화황 저장용기를, 한 곳은 수소저장용기를 보관한다.
육불화황 저장용기 보관소의 크기는 수소저장용기 보관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작다. 육불화황은 수소처럼 트레일러로 운송하는 것보다 여러 개의 실린더로 운송하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에 보관소가 클 필요가 없다.
육불화황 공급은 철도공단이 담당한다. 현재 철도공단의 육불화황 보유량은 약 383톤으로, 한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철도공단도 한전과 같이 육불화황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전력설비를 도입할 예정이다.
류오기 차장은 “철도공단은 직접 연구엔 참여하지 않는 대신 센터 부지와 폐육불화황을 제공하기로 했다”며 “해당 센터는 철도공단의 폐육불화황을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며 다른 곳은 사업화가 이뤄지면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수소저장용기 보관소는 수소 사용량을 고려해 튜브트레일러 1기를 세워놓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다만 현재는 수소 사용량이 적어 고순도 수소를 실린더 형태로 공급받고 있다.
류오기 차장은 “‘센터 옆에 있는 연료전지 발전소에서 수소를 공급받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수소의 순도가 낮아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현재는 연구단계이다. 센터 운영을 통해 최적 운전 조건을 찾고 사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화 단계로 넘아가면 다양한 수소공급 경로를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전과 서부발전은 분해기술을 전력분야와 철도분야에서 사용되는 육불화황을 중심으로 적용하고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위한 방법론 등록을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영과 감축 성과 확보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엔 오만에 감축사업을 위한 기술이전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바 있다. 이를 시작으로 해외감축사업을 확대하고 국제공동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최병규 실장은 “해당 기술은 단순한 폐기물 처리기술이 아닌 탄소중립 시대를 이끄는 혁신적인 친환경 기술이다. 서부발전과 한전은 육불화황 분해 및 무해화를 통해 기술개발-실증-사업화를 실현하고 국제 온실가스 감축사업 및 기후기술 수출 기반을 확보하고자 한다”며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육불화황 감축을 넘어 수소 활용처 확대와 무탄소 사회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