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발유 차량을 몰다 보니 셀프충전소를 자주 이용한다. 다쓰노(TATSUNO) 사의 주유기도 그때 처음 접했다. 손에 쥔 노즐이 유난히 작고 가벼워 좋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 제품이 바로 주유기에 쓰는 울트라 노즐입니다. 옆에 있는 타 회사 제품과는 크기부터 다르죠.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노즐로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국다쓰노를 찾은 길이다. 공장 안으로 발을 들이자 출고를 앞둔 주유기가 일렬로 죽 정렬해 있다. 수소충전기는 좀 더 안쪽에 있다. 눈에 익은 H70 디스펜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정식 모델명은 Hydrogen-NX다.

국내 최초로 ‘MC 포뮬러’ 방식 적용
H70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건 지난 2018년이다. 당시에는 ‘MS TATSUNO’라는 브랜드로 출시가 됐다. 부산의 가스 엔지니어링 업체인 엠에스이엔지와 다쓰노가 기술 제휴를 맺으면서 ‘엠에스 다쓰노’가 태어났다.
“한국다쓰노에서 부품을 공급하고, 엠에스이엔지에서 디스펜서를 제조해서 충전소에 공급하는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죠. 지금도 물론 엠에스이엔지에 다쓰노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요. 국내에 처음 들여온 네 기는 일본에서 들여온 완제품이죠. 국내 수소충전기 또한 다쓰노 기술을 기반으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어요.”
홍사두 이사가 노즐을 빼서 보여준다. 독일 회사 제품에 비하면 길이가 짧고 뭉툭한 편이다. 리셉터클(차량 충전구)에 노즐을 체결하자 안쪽에 숨어 있던 형광색 띠가 드러난다. 이 상태라야 충전이 가능하다. 처음 쓰는 사람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위쪽에 보면 노즐 낙하 방지용 서포트암(Support Arm)이 기본으로 달려 있어요. 바닥에 노즐이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제품이 손상될 우려가 있죠. 서포트암에 체결된 강선이 잡아주기 때문에 땅에 닿지 않아요.”
홍 이사가 손에서 노즐을 놓자 지면에서 30cm 정도 높이에서 딱 멈춘다. 수소충전 노즐은 상당히 고가라 한번 고장이 나면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런 간단한 조치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노즐의 아이싱 문제도 개선했다. 타 회사 노즐의 경우 수소충전 시 노즐이 주입구에 얼어붙는 결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소나 공기를 불어 넣는 방식을 쓰고 있다.
다쓰노는 노즐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한 드라이 에어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또 노즐을 박스에 걸면 에어를 공급해서 완전히 건조시키기 때문에 충전 시에도 결빙이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 질소발생기 같은 설비를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2023년도부터 한국다쓰노에서 직접 디스펜서를 제작해서 시중에 공급하고 있어요. 수소충전 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지는데, 품질 유지나 관리가 안 되는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죠.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다쓰노가 충전기 생산과 판매를 직접 하기로 했어요. 다쓰노 디스펜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기존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MC 포뮬러 방식을 국내 최초로 적용한 점이죠.”
수소연료전지 차량의 고압 충전을 위해서는 SAE J2601에서 정한 프로토콜을 따라야 한다. 고압의 수소기체가 차량 내 탱크로 빠르게 유입되면 온도가 급격히 오르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소탱크 내부 온도를 85℃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SAE J2601에서 정한 두 가지 표준 연료공급 프로토콜로 ‘룩업테이블(Lookup Table)’ 방식과 ‘MC 포뮬러(Formula)’ 방식이 있다. 국내산 충전기는 대부분 룩업테이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룩업테이블 방식은 차량의 탱크 내 초기 압력과 수소충전소 대기 온도, 수소기체의 사전 냉각 온도를 이용해 지정된 표에 기술한 ‘평균 압력 변화율(Average Pressure Ramp Rate)’을 기반으로 한다.
“테이블 방식은 충전이 계단식으로 진행이 돼요. 예를 들어 450바 중압 탱크로 충전이 완료되면 고압 탱크로 넘어가야 하는데, 고정 압력을 정해놓고 작동하기 때문에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충전을 멈추게 되죠. 그래서 충전시간이 길어지고, 수소충전량도 많지가 않아요. 이 점을 개선한 게 MC 방식입니다.”
MC 포뮬러 방식은 수소기체의 사전 냉각 온도와 차량 내 탱크의 물리적 파라미터를 이용해 목표 압력과 압력 변화율을 계산한다. 환경 정보를 실시간으로 반영해서 충전하기 때문에 가스의 온도 범위가 넓다.
테이블 방식이 영하 33℃에서 영하 40℃ 사이에서 작동한다면, MC 방식은 영하 17.5℃에서 영하 40℃ 사이에서 작동한다. “온도의 변화 폭이 훨씬 넓기 때문에 충전을 멈추는 일이 거의 없고, 충전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는 것이다.
분당 최대 5.4kg의 수소충전 지원
사무실로 이동해 김종혁 대표이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다쓰노 디스펜서의 장점을 묻자 그 또한 MC 포뮬러 방식을 맨 먼저 거론한다.
“하이스원이 구축한 부산의 금사회동 수소충전소에 한국다쓰노 제품 세 기가 들어가 있어요. 버스 차고지 바로 옆에 있는데, 시간당 300kg 이상의 수소충전이 가능하죠. 하이스원 담당자들이 일선에서 대용량 수소충전소 사업을 오래 한 전문가들이라 장비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MC 포뮬러 방식의 장점에 대한 이해도가 높죠.”

김종혁 대표가 하이스원에서 받은 ‘동시·연속 충전 실적’ 자료를 보여준다. 수소버스 3대를 동시에 충전한 충전 패턴이 그래프로 담겨 있다.
약 10분 동안 A충전기는 7.89kg, B충전기는 10.02kg, C충전기는 13.78kg의 수소를 동시에 충전했다. 디스펜서 한 기당 평균 수소충전량은 분당 3.3kg으로 나왔고, 최대 토출유량은 400~440kg/h를 기록했다.
다쓰노 노즐은 SAE J2601에 규정된 NF(Normal Flow, 정상 유속)와 MF(Middle Flow, 중간 유속) 충전을 모두 지원한다. NF는 초당 최대 60g의 수소충전을 지원하고, MF는 초당 최대 90g의 수소충전을 지원한다.
“다쓰노 노즐은 MF, 그러니까 분당 최대 5.4kg의 수소충전을 지원합니다. 현장에서 동시충전으로 한 기당 1분에 3kg을 넘는 수소를 충전한 걸로 나왔죠. 회동 차고지에서 운행하는 수소시내버스가 하루에 15kg에서 20kg 정도의 수소를 충전해요. 10분 안에 충전이 완료되기 때문에 기사님들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하더군요.”
디스펜서 안에는 계량정밀도 ±0.5% 수준의 코리올리스 질량유량계가 들어간다. 다쓰노는 계량기 전문업체로 이 분야에 강점이 있다.

“지난 6월에 금사회동 충전소에서 분동과 전자저울을 이용한 계량 시험을 진행했어요. 국내에서 ‘수소충전기 계량 정밀측정장비’ 차량(1톤 트럭)을 개발해서 현장에 투입했죠. 별도로 KGS(한국가스안전공사) 인증도 받았습니다. 분동의 무게를 기준으로 수소 질량을 반복해서 측정하게 되는데, 평균 질량 차이가 1.08%로 나왔어요. 국제기준(OIML) 허용 오차인 5%에 비하면 상당히 정밀한 수준이라 할 수 있죠.”
수소는 700바가 넘는 고압으로 충전되기 때문에 계량이 어렵다. 미국이나 일본도 ±10% 선에서 관리를 할 뿐 수소계량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한다.
“충전기에 카운팅된 숫자와 실제 수소충전량이 다르면 향후 고객의 신뢰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주유기만 해도 2년에 한 번 의무 검사란 걸 받죠. 앞으로 수소충전기도 법정 검사를 받게 될 겁니다. 자체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죠.”

수소충전소 구축 숫자를 보면 한국이 확실히 일본보다 앞선다.
올해 7월 기준 다쓰노 디스펜서는 일본에 112기(누적)가 공급됐다. 일본에서 다쓰노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48%에 이른다. 7월 말 기준 국내에 설치된 충전기가 430기(누적)임을 감안하면 한국 시장의 규모가 일본의 두 배인 셈이다.
수소전기차 보급 확대로 한국 시장의 성장세를 높게 보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디스펜서 물량으로 1년에 30기 정도가 새로 잡힌다고 해도 충전기 업체가 너무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합니다. 충전소를 구축하는 EPC 사에서 선택을 해주지 않으면 사실상 채택이 어려워요. 턴키로 받아서 시공하는 EPC 사가 가격제 입찰로 가면 여러모로 불리하죠.”
김종혁 대표는 “좋은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라며 “성능과 기술력, 전문성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성능검사 겸한 내압기밀시험장비 운영
디스펜서 공급은 EPC 사를 통해 이뤄진다. 국내 디스펜서는 룩업테이블 방식을 적용한 제품이 대부분으로 충전 성능에서 기술적인 차별성이 크지 않다. EPC 사들이 자체 브랜드를 단 디스펜서를 우후죽순으로 시장에 출시했고, 액화수소충전소에 일본 도키코(Tokico System Solutions) 사의 충전기 제품이 들어오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다쓰노 디스펜서의 입찰가는 기존 업체보다 20~30% 정도 비싸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MC 포뮬러 방식을 적용한 제품이 현장에서 돌고 있고, 제품의 성능이나 유지관리 측면에서 이점을 체험한 운영사나 EPC 사의 평가가 나오면서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금사회동 충전소의 경우 제이엔케이글로벌에서 시공을 했는데, 평가가 매우 좋습니다. 이런 업체들과 후속 사업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죠. 가격에 맞는 퀄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차별화된 점을 알리는 데 집중하다 보면 결국엔 시장에서 그 진가를 알아본다는 믿음이 있어요.”
한국다쓰노는 공장 안에 충전기 성능검사를 겸한 내압기밀시험장비를 갖추고 있다. 수소와 물성이 비슷하면서도 안전한 헬륨을 써서 제품 출하 전에 검사를 진행한다.
기술연구소의 김태우 차장이 시험장치에 전원을 넣고 작동법을 알려준다. 시험장치의 탱크에 연결된 리셉터클에 노즐을 체결한 후 충전기 내 각종 밸브의 작동상태를 점검하고 내압, 기밀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김태우 차장은 “헬륨을 탱크에 충전해서 그 양을 측정하고 카운팅된 숫자를 확인해서 작동 여부를 완벽하게 체크한 다음 제품을 출하한다”라며 “단가 경쟁을 위해 부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신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쪽으로 중심을 잡고 제품을 생산한다”고 한다.
충전기 하단에는 이물질을 걸러주는 금속필터가 있다. 탱크나 배관 등에서 떨어져 나온 이물질을 마지막 단에서 거르는 용도로, 필터 안에 들어가는 엘리먼트로 일본 후지킨 사의 2마이크론 제품을 쓰고 있다.
“수소 순도가 높아서 이물질이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 업체(후지킨)에서 교육을 받아보면 이 부분에 불순물이 많이 걸리고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줄 필요가 있죠. 타사에서 20마이크론, 좋으면 5마이크론 제품을 쓴다고 들었는데, 이런 부분에도 분명한 차별점이 있습니다.”
만년필 하면 몽블랑이 떠오르듯, 주유기·수소충전기 하면 다쓰노 제품이 맨 먼저 떠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다쓰노는 1970년 3월에 설립됐다. 국내에서 최초로 주유기를 생산했고, 국내 수소충전기의 출발점 역시 다쓰노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헤리티지, 즉 브랜드의 역사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오랜 경쟁에서 살아남은 ‘필살기’를 갈고닦은 결과물로 소비자를 설득하는 법을 안다.
일본의 장인정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이를 열정으로 승화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MC 포뮬러 방식에 대한 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와 일본 양국이 서로 경쟁하고 도전하면서 수소충전 인프라의 수준을 높여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