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회동수원지에서 흘러온 물이 굽이 도는 수영강 바로 옆이다. 99번, 179번 버스가 한 줄로 늘어선 삼화피티에스 회동차고지 옆에 수소충전소가 들어섰다.
하이스원에서 구축한 금사회동 수소충전소로 10월 중순에 한국가스안전공사(KGS) 완성검사를 받았다.
이 충전소는 시간당 300kg의 수소충전이 가능하다. 이정도 용량이면 코하이젠에서 지은 대형 수소충전소와 맞먹는다. 한데 부지는 830㎡(250평)에 불과하다. 그중 기계실은 60평으로, 이 좁은 곳에 덕산에테르씨티의 주황색 저장용기 36개가 빼꼭히 들어차 있다.

압축기 두 대로 시간당 300kg 수소충전
“250바 저압용기 36개로 1.5톤의 수소를 저장할수 있죠. 이렇게 구성한 충전소는 처음 보실 거예요. 아이오닉 압축기 두 대는 안쪽에 있습니다. 튜브트레일러가 들어오는 즉시 압축기를 돌려 이 용기에 저장을 하게 되죠.”
동화엔텍 CH기술팀의 김경민 팀장을 따라 한 줄로 쌓인 흰색 고압용기를 지난다. 기계실 안쪽에 낯익은 압축기가 보인다. 안쪽에 있는 B 압축기가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아이오닉 액체(Ionic Liquid)로 수소를 밀어 압축하는 방식이라 확실히 소음과 진동이 덜하다.
아이오닉은 상온에서 고체인 염이나 산화물을 가열·융해해서 액체 상태로 만든 유기물질을 이른다.
반도체 공정에 주로 사용되는데, 수소압축기에 쓰려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수소와 결합하거나 반응하지 않아야 하고, 압력에 따른 부피 변화가 없어야 한다.
이곳 충전소에는 450바 중압 용기가 없다. 동화엔텍의 헥스콤프(HexKomp) 아이오닉 압축기는 2단 병렬 구조로 디자인되어 중압에서 850바로 바로 압력을 올려 고압용기에 수소를 저장하게 된다.

김 팀장은 “구경이 작은 앞쪽 실린더가 850바 고압, 뒤쪽에 있는 좀 더 굵은 실린더가 450바 중압을 맡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튜브트레일러에 든 수소를 빼서 저장하느라 중압만 돌고 있어요. 건축 허가가 떨어져야 수소버스나 넥쏘에 충전하는 상업 운전이 가능하죠. 그전까지는 저장모드로 시운전만 할 수 있어요.”
고압용기에 850바로 수소를 저장하는 시운전도 무리 없이 완료했다고 한다. 그런데 압축기 모양이 지난 9월에 열린 H2 MEET 전시회에서 본 제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전시회 때 공개한 제품이 뒤에 나왔어요. 배관 위치 등을 조정해서 레이아웃을 심플하게 다듬었다고 할수 있죠. 압축기 위쪽에 단 PCHE 열교환기를 아래로 내려 세퍼레이터 위치를 조정하면서 높이를 좀 더 줄였어요. 기계적인 구조나 성능은 동일합니다.”

PCHE 열교환기를 세퍼레이터 자리에 달고, 앞뒤로 붙어 있던 세퍼레이터 2개를 열교환기 양옆으로 옮겨 달았다. 세퍼레이터(separator, 기액분리기)는 수소와 함께 넘어올지 모를 미량의 아이오닉 액체를 마지막 단에서 분리하는 일을 한다.
PCHE(Printed Circuit Heat Exchanger)는 ‘인쇄회로기판 열교환기’를 이른다. 유체가 흐르는 유로가 에칭된 얇은 철판을 여러 겹 겹쳐 고온·고압의 진공챔버 안에서 가열하면 하나의 금속 덩어리가 된다. 크기를 줄이면서 성능을 높인 차세대 열교환기다.

동화엔텍은 수소충전용 디스펜서에 들어가는 PCHE 프리쿨러를 만들고 있다. 2019년에 수소충전기용 예냉기를 처음 출시하면서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제품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디스펜서에 들어가는 PCHE는 프리쿨러, 즉수소충전 시 영하 40℃로 기체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해요. 수소충전기에 들어가는 프리쿨러는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죠. 그에 반해 압축기에 들어가는 PCHE는 애프터쿨러라고 해서 압축할 때 나는 열을 식히는 역할을 해요. 전단에 쓰느냐, 후단에 쓰느냐의 차이일 뿐 작동원리는 같습니다.”
‘플로팅 스크레이퍼’ 적용해 소비전력 낮춰
하이스원 금사회동 수소충전소에는 3기의 디스펜서가 들어간다. 한국다쓰노에서 최초로 공급하는 제품으로 일본의 본사 직원이 현장을 찾아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다. 다쓰노의 코리올리 유량계를 적용하고 있으며, 분당 5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제품이다.
실시간으로 계측한 기체수소의 사전 냉각 온도를 변수로 사용하는 ‘MC 포뮬러’ 충전방식을 채택, J2601 충전 프로토콜에 따라 정확한 양의 수소를 빠르게 충전한다. 물론 여기에도 동화엔텍의 PCHE 열교환기가 들어간다.
부지가 워낙 좁아 사무동을 작게 지었다. 가장자리에 선을 맞춰 세모 형태로 건물을 올렸다. 네다섯 명이 들어가면 내부가 꽉 찰 정도로 공간이 좁다. 버스 차고지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간다.

동화엔텍 CH기술팀의 정재호 전문위원은 150kg급 헥스콤프 아이오닉 압축기의 장점을 ‘경제성’에서 찾는다.
“시간당 300kg 이상의 수소를 충전하는 대용량 수소충전소의 경우 압축기를 6대 정도 넣어서 다단으로 운용해요. 그러자면 일단 부지가 넓어야 하고, 6대의 압축기를 돌리는 데 드는 전기료, 유지보수 비용 등을 고민할 수밖에 없죠. 헥스콤프는 가로세로 크기가 3m에 불과합니다. 한 기로 중압, 고압에 모두 대응할 수 있죠.”
당연히 전기료도 적게 든다. 정 위원은 아이오닉 압축기의 작동원리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유압으로 피스톤을 움직일 뿐, 정작 수소를 밀어서 압축하는 건 아이오닉 액체다. 액체로 수소를 밀어 올리는 방식이라 마찰계수가 낮다.
“세로로 된 2개의 원통형 실린더 안에서 실제로 수소 압축이 이뤄져요. 내부에서 플로팅 스크레이퍼(Floating Scraper)가 상하로 오르내리며 수소를 압축하고 아이오닉 액체를 긁어내리는 역할을 하죠. 기본적으로 스크레이퍼가 분리막 기능을 하기 때문에 수소와 아이오닉이 섞이는 일을 일차적으로 막아줍니다. 아이오닉 액체가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하려고 후단에 세퍼레이터를 추가로 하나씩 달았죠.”

독일의 린데도 아이오닉 5단 압축기를 적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소와 아이오닉 액이 섞인 상태로 압축이 된다. 그래서 후단의 세퍼레이터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린데의 압축기 용량은 56kg/h에 불과해 대용량 충전소에는 적합하지 않다. 헥스콤프는 그보다 세 배 정도 용량이 크다.
“오른쪽 실린더 상단으로 수소를 밀어 올려 압축할때 왼쪽 실린더로 들어오는 수소의 흡입 압력을 활용해요. 반대로 왼쪽 실린더의 수소를 압축할 땐 오른쪽 실린더 상단의 흡입력에 도움을 받죠. 반대쪽 흡입력이 실린더의 피스톤을 밀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기가 적게 들어요.”
소비전력은 대당 250kW, 두 대를 합쳐 500kW다.
수소충전소 전체 소비전력량이 700kW 수준이라 밀폐형 칠러(Chiller, 냉각기)를 써서 열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법적으로 압축기, 디스펜서 등을 포함한 전체 소비전력량이 1,000kW 이상이면 전기안전관리자를 필수로 고용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대용량 수소충전소 같은 경우 개방형 쿨링타워를 도입해 소비전력을 1,000kW 아래로 낮추고 있다. 다만 개방형이라 여름이나 겨울철 외부 온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외부의 오염물질이 유입되면 배관에 스케일이 쌓이는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블로바이 가스(Blow-by Gas)가 없는 것도 아이오닉 압축기의 큰 장점입니다. 블로바이는 건식 환경에서 작동하는 기존 압축기의 피스톤과 실린더 사이에서 가스가 새는 현상을 말하죠. 기존 다이어프램이나 왕복동 압축기는 작동 버튼을 누르면 수소기체를 일단 날리고 시작해요. 수소를 구매한 양과 판매한 양에 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헥스콤프는 기본적으로 아이오닉 액이 수소를 막은 상태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소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요.”
국산 기술 적용해 유지보수에 유리
하이스원 수소충전소의 핵심은 헥스콤프 압축기로 봐도 무방하다. 하이스원은 300평이 채 안 되는 도심의 협소 부지에 설치할 최고 효율의 압축기를 찾아다녔고, 지난해 8월 동화엔텍을 만나 사업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확신을 얻었다.
김경민 팀장은 “150kg급 아이오닉 압축기에 대한 개념설계를 작년 7월에 마무리했다. 그즈음 하이스원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이 빠르게 추진됐다”고 한다.
“작년 8월에 곧바로 상세설계에 들어갔는데, 초기 개발품이다 보니 설계변경 과정을 여러 번 거쳤어요. 압축기 제작은 올해 초에 시작해서 지난 7월 31일에 이곳 현장에 들여왔죠. 충전소 구축을 4월 27일에 시작했어요. 완성검사 통과까지 채 6개월이 안걸렸으니 무척 빠른 일정이죠.”

삼화피티에스는 내구연한을 앞둔 CNG버스를 수소버스로 전환하고 싶어한다. 그러자면 하루 200대 이상 충전이 가능한 대용량 수소충전소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 충전방식으로는 좁은 부지에 충전소를 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이스원에서 수소충전소 설계·구축을 총괄하고 있는 송길성 책임매니저는 “기존 충전소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이를 해소해서 녹여낸 결과물이 금사회동 충전소”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환경부 수소충전소 공모사업으로 보조금을 받아서 진행한 하이스원의 첫 번째 충전소라 할 수 있죠. 동화엔텍에서 만든 시간당 7.5kg급 아이오닉 압축기가 충북 음성에 있는 KGS 수소제품시험평가센터에 들어가 있어요. 작년 말부터 운영 중인데 잘 돌고 있는지 제가 수시로 확인을 했습니다. 아이오닉 압축기의 성능이나 내구성이 정말 중요하니까요. 완성검사를 앞두고 현장에서 2주 동안 시운전을 했는데,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동화엔텍은 서둘러 샴페인을 터뜨릴 생각이 없다. 헥스콤프가 들어간 첫 번째 수소충전소인 만큼 돌다리를 두드려가며 차분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동화엔텍의 정재호 전문위원은 압축기를 ‘수소충전소의 심장’에 비유한다.
“큰 고장 없이 적은 전기료로 많은 양의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수소차 보급을 크게 늘려갈 수 있죠. 도심의 협소 부지에 넣을 수 있는 최고 효율의 압축기를 원하는 시장의 요구를 너무 잘 압니다. 동화엔텍이 지난해 동화하이텍을 설립해서 아이오닉 압축기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여기에 있죠.”
헥스콤프는 온전히 국산 기술을 적용해 유지보수 측면에 유리하다. 피스톤 압축에 기계식 캠밸브를 활용해 유압 구동부의 맥동 충격을 해소하면서 진동과 소음을 크게 줄였다. 또 아이오닉 액체도 국내에서 공급받는다.
점도가 있는 습식 환경에서 구동하기 때문에 저항이 거의 없고, 마찰에 대한 저항이 줄다 보니 전력 소모도 적다. 큰돈이 드는 씰(Seal) 교체 횟수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아이오닉 액체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발열을 낮추기 때문에 시스템의 전체 효율은 더 올라간다.

수소충전 분야에 한국은 한 발 늦게 뛰어들었다. 수소전기차 보급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수소충전소 구축 시장이 살아 있는 것도 정부의 지원 덕분이다. 여기에 업계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변화와 성장을 모색해왔다.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혼자 조용히 기계실로 발을 들인다. 카카오택시가 도착하려면 5분 남짓 시간이 남았다. 늘 곁에서 지켜본 아이가 어느 날 훌쩍 커버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딱 그런 기분으로 천장의 H빔에 달린 초음파 감지기를 응시한다.
저장용기로 가득한 주황색 담장 너머에서 압축기가 저 혼자 돌고 있다. 그 소리를 가르며 경적이 울린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이제 바뀔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만 같아 돌아서는 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