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8개 액화수소충전소 구축 계약
계약금액만 676억 원···공시 뜨자 서킷브레이커 발동
내년 초 인천공항 액화수소충전소 개장
日 스미토모상사 통해 액화수소펌프 도입

범한퓨얼셀은 새해 벽두부터 한국가스기술공사와 맺은 인천공항(T2) 액화수소충전소 구축 계약을 깜짝 공시했다. 계약금액만 84억 원에 이른다.
액화수소충전소는 기술적으로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수소는 영하 253℃에서 액화가 된다. 조금만 잘못 취급해도 기화할 우려가 있어 특별한 설계와 설비, 단열 기술이 요구된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났다. 범한퓨얼셀은 지난 1일 SK플러그하이버스와 수소상용차 전용 액화수소충전소 8개 구축 계약을 발표했다. 총 계약금액은 676억 원으로 공시가 뜨자마자 주가가 급등했다. 그 열기를 식히느라 30분간 주식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2년 전부터 액화수소 사업 준비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아들에게 한 말이다. 이는 범한퓨얼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범한퓨얼셀은 지난 2019년 범한산업의 수소연료전지 사업부를 물적분할하면서 설립됐다. 잠수함과 건물에 들어가는 PEM 연료전지 제조, 수소충전소 구축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사업 비중을 보면 2022년 말 기준 연료전지 부문이 61.4%, 수소충전소 구축 부문이 38.6%였다. 2024년 3월에는 연료전지 공급, 수소충전소 구축 비중이 5대 5 정도로 잠시 균형을 이루기도 했다.

올해는 달랐다. 1분기 매출을 기준으로 연료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76.8%로 크게 늘었고, 수소충전소 구축사업은 3.2%에 불과했다. 이는 잠수함용 연료전지 매출 등이 반영되면서 충전소 사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충전소 시장이 액화수소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탓이다.
하지만 3분기는 다르다. 크게 뛴 주가가 이를 반영한다. 액화수소충전소 사업에 큰 계약을 따내면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다만 충전소 8개 중 최대 4개는 오는 9월 30일까지 ‘발주처가 페널티 없이 철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기는 했다.
이번 계약을 두고 범한퓨얼셀의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2년 전부터 액화수소충전소 사업을 준비해왔다. 모기업인 범한산업이 두산에서 인수한 범한메카텍에서 개발한 액화수소탱크가 마지막 인증 절차를 앞두고 있다. 향후 이 탱크를 현장에 적용할 경우 원가경쟁과 기술력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했다.
범한메카텍은 압력용기, 반응기, 열교환기 등 정유·석유화학 플랜트에 들어가는 설비와 부품을 생산한다. 핵심 설비의 공급 유무는 턴키(Turn-Key) 방식으로 수주를 받아 진행되는 충전소 사업에서 분명한 경쟁력으로 통한다.
스미토모상사 통해 액화수소펌프 도입
액화수소충전소의 핵심 설비 중 하나로 액화수소펌프를 첫손에 꼽는다. 범한퓨얼셀은 지난해 3월 일본의 스미토모상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액화수소펌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품은 인천공항 현장에 우선 적용된다.
범한퓨얼셀이 도입하기로 한 액화수소펌프는 90MPa급으로 미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에 있는 퍼스트엘리먼트 퓨얼(FirstElement Fuel)의 수소출하센터에서 내구성 테스트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제품은 도쿄 아리아케 버스차고지에 있는 이와타니 코스모(Iwatani COSMO) 액화수소충전소에 설치되어 올해 4월부터 정식 운영 중이다. 시간당 120kg 이상의 수소를 공급할 수 있으며, 펌프 한 기로 두 대의 차량을 동시 충전할 수 있다.

국내는 일본보다 앞서 수소버스 중심의 대용량 수소충전소 구축을 활발히 진행해왔다.
수소구입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운송비다. 기존 기체수소충전소에 액화수소탱크를 추가로 설치하면 수소구입비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부산의 초저온시스템 전문기업인 크리오스가 창원 대원수소충전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액화수소충전소용 저장탱크 및 수소공급시스템 기술개발’이 대표적이다.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로 3톤가량의 수소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다. 그에 반해 튜브트레일러는 회당 300kg 정도의 수소운송이 가능하다. 용량으로 보면 열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크리오스의 관계자는 “향후 수소구입비를 낮추기 위해 1.5톤급 또는 4톤급 액화수소탱크를 수소충전소에 설치해두고 액화수소를 받아 쓸 가능성이 높다. 이 방식을 기존 충전소에 적용하거나, 애초에 하이브리드 형태로 수소충전소를 구축할 경우 액화수소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범한퓨얼셀의 관계자도 이 말에 동의했다. 국내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수소를 액체 형태로 유통하고, 이를 현장에서 기화해서 충전에 활용하는 방식이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타니만 해도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산소, 질소, 천연가스 할 것 없이 기체의 운송량을 높이기 위해 액화해서 유통하는 단계를 밟아왔다. 범한퓨얼셀은 기체에서 액체수소로 넘어가는 추세 변화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해왔다.
수주 단가 면에서도 액화수소충전소가 기체충전소보다 최소 두세 배는 비싸다. 범한퓨얼셀은 기술력으로 차별화해서 고부가가치 시장에 선제적으로 뛰어들었고, 가장 큰 물량을 ‘수주’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