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 기반 철도차량 상용화에 성큼 다가섰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이 ‘온보드 일체형 액화수소 공급시스템’을 개발하며 철도 교통의 수소 전환을 현실로 끌어올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크기와 무게를 줄여 실제 열차 탑재가 가능해졌고, 기존보다 주행거리를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액화수소 열차 개발은 초기 단계
수소열차는 이미 해외에서 상업 운행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 알스톰의 ‘코라디아 아이린트(CORADIA iLint)’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정규 노선에 투입됐다. 최고속도 시속 140km, 주행거리 600~800km를 기록했으며, 2022년에는 연료 보급 없이 1,175km를 달려 디젤 열차와 맞먹는 성능을 입증했다. 알스톰은 이 열차가 매년 이산화탄소 4,000톤과 디젤 약 42만 갤런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JR동일본도 2022년 ‘FV-E991형’ 수소 하이브리드 열차를 공개하고 도쿄 인근 노선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배터리와 연료전지를 결합한 구조로, 1회 충전 시 약 140km를 달릴 수 있다.
영국의하이드로플렉스(HydroFLEX), 이탈리아발카모니카 프로젝트, 미국 캘리포니아의 ZEMU(Zero-Emission Multiple Unit)도 모두 압축수소 기반이다. 각국이 상용화 실험에 나서고 있지만, 저장 효율과 장거리 운행에서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이다.
미국 최초의 2량 수소연료 여객열차 ZEMU.(영상=goSBCTA)
즉, 현재까지 해외 수소열차는 모두 압축수소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고압 저장 탓에 부피가 크고 장치가 무거워 대용량 운송수단에는 제약이 있었다.
반면 액화수소는 섭씨 영하 253도의 극저온 상태에서 저장돼 기체 대비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든다. 같은 공간에 훨씬 많은 연료를 담을 수 있고, 대기압 조건에서도 저장이 가능해 안전성 측면에서도 장점이 크다.
문제는 극저온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연료를 공급하려면 기화·압력 조절·온도 관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철도연의 성과와 한국의 기회
이번 연구로 철도연은 액화수소 열차 상용화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기화·압력·온도 제어 기능을 하나로 묶은 ‘컴팩트 제어 장치’를 개발해 부피는 10%, 무게는 5% 줄였고, 총 380킬로와트(kW) 용량의 연료전지를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저장탱크에는 강철보다 다섯 배 강한 케블라 섬유를 적용해 극저온에서도 단열 성능을 확보했으며, 기화 과정에는 전기 가열과 외부 공기열을 동시에 활용하는 이중 열원 방식을 적용했다. 별도의 펌프나 압축기 없이도 약 17기압을 유지할 수 있어 상용화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철도연은 2021년부터 액화수소 기관차 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다. 목표는 최고속도 시속 150km, 1회 충전 주행거리 1,000km다.
이번 성과는 이 과정에서 실제 열차 탑재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다. 업계에서는 “서울에서 부산을 두 차례 왕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는 인증 시험이 진행 중이며, 2026년까지 성능 검증을 마치고 수소트램 실증에 나설 예정이다.
산업적 파급효과와 남은 과제
국내 철도망은 여전히 디젤기관차 의존도가 높다. 화물 열차와 지방 노선 상당수가 디젤에 의존해온 만큼, 액화수소 공급시스템이 상용화되면 기존 차량을 수소 기반으로 전환해 철도 부문의 탄소중립을 앞당길 수 있다.
(영상=한국철도기술연구원)
국제 경쟁 구도 속에서도 한국의 위치가 부각된다. 유럽은 압축수소 열차 상용화를 통해 먼저 앞서갔지만, 액화수소 철도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한국이 이번 성과를 기반으로 실증과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 타이틀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연구 결과를 넘어 글로벌 수소모빌리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진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액화수소 저장·운송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고, 충전소 확충과 안전 규제, 국제 표준화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경제성 확보도 중요한 숙제다. 액화수소 생산 비용과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높아, 상용화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과 비용 절감 기술이 병행돼야 한다.
이번 연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기본사업으로 수행됐으며, 민간 기업 패리티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철도연은 2026년까지 성능 검증을 마치고 수소트램 실증으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