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코파워 직원들이 안성공장에 있는 2MW SOFC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박상우 기자)
미코파워 직원들이 안성공장에 있는 2MW SOFC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박상우 기자)

지난 2020년 7월 정부는 천안, 홍성 등 충남 9개 시·군 일원을 ‘충남 수소에너지전환 규제자유특구(이하 충남 특구)’로 지정했다.

충남 특구는 수소에너지를 활용한 발전, 충전, 이동수단 실증 및 사업화를 통한 수소경제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가정·건물용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스템 △수소충전시스템 △수소드론 장거리 비행 등 3개 세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가정용·건물용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스템 실증은 도심 분산형 에너지 공급과 친환경 전력·열 생산을 위한 것으로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개선하는 데 취지를 뒀다.

이 사업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이하 SOFC) 복합배기 시스템 실증 △계통전환용 연료전지 시스템 실증 △직접수소 공급형 연료전지 시스템 실증 등 총 3가지 과제로 구성됐다.

이 중 계통전환용 연료전지 시스템 실증은 연료전지가 계통전원과 연계된 상태에서 정상 운전하다가 정전 시 곧바로 비상전원으로 전환해 건물 내 비상부하(소방·방화 등)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건물엔 비상전원용으로 디젤엔진 발전기가 설치돼 있다. 이는 디젤이 다른 연료보다 저렴하고 열효율이 높은 데다 신속한 전원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전원공급이 불안정하며 대기오염물질과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한다.

무엇보다 대기환경보전법상 비상발전기는 배출가스 점검·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디젤발전기의 배출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또 건물 규모와 용도에 따라 1~4주마다 30분 정도 점검가동을 하는데, 발전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만 중점을 둔 무부하 운전이라 디젤의 불완전 연소로 대기오염물질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다.

디젤발전기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연료전지다. 연료전지는 전력 계통이 정상일 땐 전력과 열을 공급하는 분산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24시간 상시 가동해도 기존 발전 방식보다 배출가스와 소음이 현저히 적고 수소를 직접 이용하면 무공해 발전이 가능하다.

만약 자연재해 또는 계통 문제로 정전이 발생하면 즉시 독립운전 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실례로 지난 2020년 9월 허리케인 샐리가 미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51대의 플러그파워 젠슈어 연료전지 시스템은 상용전력이 복구될 때까지 총 1,573시간 동안 통신장비에 전력을 공급해 54만 명의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었다.이 때문에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연료전지를 비상전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연료전지를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고자 충남 특구에서 ‘계통전환용 연료전지 시스템 실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기존 ‘고정형 연료전지 제조의 시설·기술·검사 기준(KGS AH371)’은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연료전지를 정지시켜야 한다’고 규정했으나 이번 실증을 통해 완화됐다.

미코파워, 시스템 안전성 검증

계통전환용 연료전지 시스템 실증은 미코파워가 주관했다.

미코파워는 충남테크노파크의 실증 건물에 2kW급 연료전지 6대를 설치하고 계통전환용 연료전지 시스템 실증과 SOFC 복합배기 시스템 실증을 진행했다. SOFC 복합배기 시스템 실증은 연료전지마다 설치되던 개별 배기 시스템을 통합 배기 시스템으로 전환해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충남 규제자유특구에서 진행된 가정·건물용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스템 실증 현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연료전지가 계통전환형 연료전지 실증에 사용됐다.(사진=미코파워)
충남 규제자유특구에서 진행된 가정·건물용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스템 실증 현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연료전지가 계통전환형 연료전지 실증에 사용됐다.(사진=미코파워)

연료전지 6대 중 1대를 계통전환형으로 개발하고 해당 연료전지에 핵심기술인 ‘자동 절체 스위치(CTTS, Closed Transition Transfer Switch)’와 계통전환 기능을 보유한 인버터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했다.

CTTS는 정전이 발생하면 0.15초 이내로 전력계통을 상용전원에서 비상전원으로 전환하는 스위치다. 짧은 전환을 통해 전력 공급 중단을 최소화해 정전 시에도 건물 내 비상 부하(소방, 방화 등)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연료전지 발전시스템에서 생산된 전기로 독립운전을 시작하는 기능도 포함됐다.

미코파워는 수전반 차단기를 수동으로 껐다 켜기를 108회 반복하며 계통전환용 연료전지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했다. 그 결과 연료전지는 정전 시 즉시 독립운전 상태로 전환돼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했으며 정상일 땐 5분 후 전력 계통과 안전하게 연결돼 계통연계 운전이 지속됐다.

미코파워의 박진아 본부장은 “실증 시스템은 평상시엔 2,000W(±5%)의 출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다 정전 발생 시 약 0.15초의 짧은 전환 시간 후 독립운전으로 전환해 약 1,800W의 순발전출력을 유지했다”라며 “이를 통해 정전에 따른 발전 중단으로 연료전지의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해소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독립운전 전환 후 연료전지는 건물 내 비상부하, 소방부하, 방화부하 등에 즉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 정전 상황에서도 전력 공급 중단이 거의 없는 무정전 비상전원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실증을 통해 계통전환형 연료전지 시스템의 안정성, 에너지 자립성, 온실가스 저감효과, 경제성 등 다양한 성능을 검증하고 실제 운영환경에서 연료전지 시스템의 보급·확장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었다고 미코파워는 밝혔다.

가스기술기준위원회는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KGS AH371에 관련 내용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연료전지를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절반만 풀린 규제

그런데 개정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증 결과 중 절반만 반영됐다. 즉 연료전지를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온전하게 열리지 않은 것이다.

KGS AH371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운전이 가능한 계통연계형 연료전지의 구조 및 성능 등에 관한 특별요건’이 신설됐다. 이는 전력계통에 문제가 발생하면 연료전지의 운전을 중단하지 않고 대기운전 상태로 유지할 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 장치, 성능에 대한 기준이다.

그러나 연료전지를 독립운전 상태로 전환해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실증을 통해 연료전지가 비상전원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검증했음에도 대기운전 상태로 전환하는 것만 반영된 것이다.

박진아 본부장은 “개정된 규정엔 정전 시 연료전지를 대기운전 상태로 전환하는 1단계 실증 내용만 반영됐다. 이 때문에 앞으론 정전이 발생하면 연료전지를 대기운전 상태로 전환하고 이때 발생한 전기를 그냥 태워버려야 한다”라며 “연료전지를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업계에 엄청난 실망감을 안겼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전 시 계통전환형 연료전지와 건물 내 절체기의 연결에 대한 실질적인 추가 검토가 필요해 1단계 실증 내용만 반영된 것으로 분석한다. 2단계 실증 내용인 연료전지를 독립운전 상태로 전환해 비상부하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규정에 반영되기 위해선 반드시 실증을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제약이 너무 많아 실증이 언제 진행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실례로 정부는 기업들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자유특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실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제약으로 인해 사업 추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규제자유특구에 참여했던 기업 중 대부분이 다시 참여하기를 꺼린다.

한 기업 관계자는 “규제자유특구에서 실증을 진행하려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 이때 시간을 많이 소비하다 보니 실증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규제자유특구를 경험한 기업은 다시는 규제자유특구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라며 “이 때문에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규정이 제때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실증을 주도할 곳이 마땅치 않다. 박진아 본부장은 “규정을 만들기 위해선 실증을 진행해야 하나 정부든 지자체든 주도적으로 추진하려는 곳이 없다. 그렇다고 기업이 단독으로 실증을 추진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계통전환형 연료전지 시스템을 활용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미코파워의 발전용 연료전지.(사진=미코파워)
미코파워의 발전용 연료전지.(사진=미코파워)

건물용 연료전지 시장 개선 시급

업계는 계통전환형 연료전지 시장을 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건물용 연료전지 시장을 대폭 개선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물용 연료전지 지원책이 설치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연료전지를 설치만 하고 가동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설치사업자만 이익을 보는 것”이라며 “연료전지를 가동하면 제품의 성능과 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순환이 반복되면 수요자는 품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공급자는 수익이 증대된다. 이를 통해 건물용 연료전지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따라서 설치 위주로 운영되는 건물용 연료전지 지원책을 가동률 위주로 전환·운영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정부는 공공기관(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 의무설치(신재생에너지법), 지자체 조례(녹색건축조례)에 따른 일정 면적 이상의 주거·영업용 건물 의무설치, 의무설치 대상 외 희망자를 대상으로 건물용 연료전지 설치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연료전지 지원책을 가동률에 따라 차등 지원하거나 가동이 잘되는 시스템에 혜택을 더 많이 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건물용 연료전지 사용량 및 보급량이 촉진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25kW급 연료전지를 설치할 때 설치비용의 55%를 지원하면 소비자부담금이 시스템 단가(약 2억3,750만 원)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지는 데다 연료전지 설치 후 연간 에너지절감액이 약 1,941만 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투자액 회수기간이 6년 이하로 단축된다. 여기에 계약체결 방식에 따라 차등화된 전기요금제를 사용하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업계는 또 발전용 중심으로 운영되는 연료전지 정책을 건물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40년까지 8GW(누적)의 발전용 연료전지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2040년에는 2018년(설치비 450만/kW, 발전단가 250원/kWh) 대비 설치비 35%, 발전단가 50%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확정한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 전략’을 통해 수출산업화 대상으로 선정한 5대 분야 중 하나는 발전용 연료전지다.

그러나 건물용 연료전지 보급 확산 방안으로 제시한 LNG 전용 요금제 신설 외에는 병원·데이터 센터 등에서 활용 중인 화석연료 비상전원을 ‘연료전지+ESS 시스템’으로 대체, 연료전지 대여사업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 전기요금 특례제도 연장 검토 등 추가적인 인센티브 마련 계획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료전지 발전소는 높은 초기 투자 비용, 수소연료 공급망 구축의 어려움, 주민수용성 문제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만약 전국에 있는 모든 건물에 연료전지를 설치해 전력과 열을 활용한다면 분산전원 확대, 국가 건물부문 온실가스 저감, 건물의 에너지자립률 확대, 비상전원 활용 등 여러 이점이 있다. 따라서 건물용 연료전지 정책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강원 삼척시에 구축된 수소타운하우스 전경. 앞쪽 2개동은 일반주택, 그 뒤 1개동은 수소주택이다.(사진=성재경 기자)
강원 삼척시에 구축된 수소타운하우스 전경. 앞쪽 2개동은 일반주택, 그 뒤 1개동은 수소주택이다.(사진=성재경 기자)

이를 위해 건물용 연료전지 보급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평가 프로그램인 ECO2의 최대 연료전지 설치용량 한계를 해지하고 열병합발전과 연료전지는 전기를 생산하는 운전방식, 투입 연료의 종류, 배기가스 배출 종류 및 배출량 등이 다른 만큼 별도의 연료전지 평가 항목을 만들어야 한다.

또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경우 설치의무대상이 제한적인 데다 전기료가 매우 저렴해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하기가 어려운 만큼 분산에너지 설치 여부에 따라 페널티를 강력하게 주는 제도 등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이끌 만한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기축건물이 건물용 연료전지의 운영경제성을 도출하는 데 유리한 만큼 연료전지 설치비용을 지원하면 소비자의 부담과 투자비 회수 기간이 줄어들고 규모의 경제에 따른 시스템 단가 절감으로 건물용 연료전지 보급을 촉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연료전지는 건물의 온실가스 저감효과를 높이고 비상전원, 분산전원 등 활용도가 많은 전원인 만큼 보급이 촉진될 수 있도록 과감한 정책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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