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창원에 있는 국내 첫 액화수소 플랜트가 준공 3년 만에 정상 가동될지 관심이 쏠린다. 플랜트가 정상 가동되는 게 지역 수소산업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으로 작용해서다.
경남에 있는 수소산업 관련 기업은 230여 곳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이에 경남과 창원시는 선도적으로 액화수소 관련 인프라 확장에 나섰지만, 관련 산업이 정체되고 수요처 확보에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플랜트 운영사인 하이창원의 상황도 비슷하다. 창원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공동 출자해 설립된 하이창원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 귀곡동 두산에너빌리티 내에 플랜트를 지었다. 2021년 7월 착공해 2024년 1월 준공식을 연 플랜트에서는 하루 5톤(t), 연간 최대 1,825톤의 액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총사업비는 1,050억 원(출자금 340억 원,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710억 원)이 들어갔다. 출자금은 진흥원(시비 60억 원, 도비 40억 원)과 두산에너빌리티(70억 원)에 더해 환경개선 펀드(170억 원)로 구성됐다.
하이창원은 올해 1월부터 플랜트에서 생산한 액화수소를 판매할 예정이었다. 다만 설비 인계 작업이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플랜트는 준공 후 2년 넘게 정상 가동을 못하고 있다.
대안 없는 공방전…창원시 ‘선 긋기’
액화수소 플랜트가 준공한 지 2년이 넘도록 정상 가동을 못 하는 이유는 설비를 구축한 두산에너빌리티와 컨설팅 담당인 창원시 간 입장이 달라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성능 검증을 마친 만큼 인계 작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창원시는 일부 결함이 있고, 성능 시험도 절차에 맞게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창원시의 입장과 관련해 액화수소 판매처를 찾지 못해 플랜트 정상 가동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진흥원은 하이창원과 맺은 구매 확약에 따라 매일 액화수소를 5톤을 구매해야 하는데, 현재 수요처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요처가 확보되면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을 덜 수 있다.
액화수소 사용처로 창원 대원충전소가 지목되나, 하루 5톤씩 수용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과제인 ‘액화수소충전소용 저장탱크 및 수소공급시스템 개발’ 사업 실증을 하고 있다. 기존 기체수소 충전소에 액화수소 저장탱크를 더하는 사업이다.
액화수소는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양이 기체보다 많아 운송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다만 하이창원 경영권이 대주단에 넘어가면서 실증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수요처가 확보되지 않아 플랜트 사업이 부진해지자 창원시의회는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꾸려 지난해 10~12월 진흥원의 사업 관련 업무 실태 전반을 조사했다. 국민의힘 소속 창원시의원만으로 구성된 행정사무조사특위는 올해 3월 결과보고서를 냈다.
특위는 경제적·재무적 타당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업을 강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창원시에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창원시의회는 이에 전임 창원시장에 대해 형법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창원시의원들은 이런 결정에 대해 ‘정치 공세’라며 반발했다.
창원시는 시의회와 별개로 진흥원이 사업비 대출 당시 제공한 양도담보가 시 채무가 아니라며 올해 2월 대주단에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진흥원에서 대출원리금 전액 상환 시까지 액화수소 구매 의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시 하이창원에 발생하는 모든 손해 배상 의무가 시에 없음을 확인받기 위한 것”이라며 “창원시의 법적 지위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대주단은 그러자 3월 하이창원에 대해 기한이익상실(EOD), 즉 만기 전 대출금 회수를 요구했다. 창원시가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하이창원 경영권은 대주단으로 넘어갔다.
‘개점휴업’ 하이창원…진흥원 액화수소 구매 예고
개점휴업 상태인 하이창원 플랜트 시설을 인계받아야 할 진흥원은 고심이 크다. 액화수소 수요처가 늘어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수소차 보급도 지금보다 늘어나야 생산한 양만큼 사용할 수 있다.
진흥원은 이런 상황에서 하이창원 대주단으로부터 액화수소 구매 대금 일부인 3억3,600만 원(부가세 포함) 납부를 통보 받았다. 대금은 하이창원이 지난 6월 27일 처음 상업운영해 4일간 생산한 액화수소 20톤에 대한 것이다.

진흥원은 물품 구매 확약을 근거로 하이창원과 체결한 공급 계약에 따라 의무적으로 매일 5톤씩 사야 한다. 공급 단가는 톤당 1,680만 원이며 납품 기한은 40일로 명시했다. 하이창원 대주단은 대금 지급을 압박하며 진흥원이 소유한 지역 내 수소충전소 9곳의 사무동, 저장동 등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의 인용 결정도 받았다.
진흥원은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생산한 액화수소 20톤에 대한 대금(3억3,600만 원)을 기한인 8월 16일까지 못 냈다. 대주단이 언제든 압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대주단은 7월 생산분(155t) 대금 26억 원도 두 차례에 나눠 내라고 진흥원에 요구했다.
문제는 더 있다. 플랜트 상업운전에 따라 진흥원이 의무 구매해야 하는 액화수소 금액은 매달 약 25억 원, 연간 300억 원에 이른다.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진흥원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진흥원은 이 금액을 부담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창원시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하이창원에 이어 진흥원까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창원시는 8월 14일 실국장 회의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했으나, 재정 지원 여부 등은 결정하지 못했다. 1차 대금 일부를 먼저 지급하고, 향후 기한을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창원시 관계자는 “진흥원에 재정 지원을 결정하기 위해 중앙투자심사, 시의회 의결과 예산편성 절차가 필요하므로 현재 직접적인 지원은 불가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진흥원은 수소충전소 운영 수익금을 활용해 액화수소 공급 대금을 지급할 계획이며, 시는 이와 관련한 행정 절차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첫 액화수소 플랜트 파산 위기…대책 있나
창원 액화수소 플랜트가 정상 가동되면 수소 생산·유통 관련 기업이 유입되면서 지역 수소산업에도 활기가 돈다. 1톤급 액화수소 저장탱크 실증에 나선 크리오스만 해도 액화수소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진흥원이 일부 대금이라도 하이창원 대주단에 지급을 약속한 것도 지역 수소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창원시는 정부가 추진하는 수소특화단지에 선정되고자 기존 창원국가산업단지 확장구역 중심으로 한 수소산업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내놨다. 클러스터를 조성해 지원시설 유치와 관련 기업 집적화로 창원을 수소산업 핵심 기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시는 액화수소 플랜트 정상화와 관련해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진 못하고 있다. 진흥원에서 액화수소 공급 대금을 일부 지급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요처를 확대하지 않는 한, 플랜트 운영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창원시 관계자도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에 민주당 문순규 창원시의원은 18일 성명서에서 “창원의 수소산업 기반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미래와 직결되는 핵심 산업”이라며 “이대로 무너진다면 그 피해는 시민과 미래세대가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장금용 시장 권한대행에게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취하를 요구하는 한편, 하이창원 대주단과 책임 있는 협상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