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창원이 구축한 창원 액화수소플랜트에 에어리퀴드의 설비가 들어와 있다.

하루 5톤의 액화수소를 연간 1,800톤이나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첫 액화수소플랜트가 지난해 1월 창원에서 준공식을 열었다.

그 후로 잠잠했다. 창원 액화수소플랜트는 상업운전을 하지 않은 채 1년을 그냥 보냈다. 사업 시행 주체인 하이창원이 성능시험의 신뢰성을 이유로 들어 두산에너빌리티가 시공한 플랜트 설비 인수를 거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결국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 3월 18일 하이창원 대주단(대출 금융사 단체)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하면서 하이창원은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디폴트 선언한 하이창원···정쟁의 희생양?

창원 액화수소플랜트 구축에 들어간 돈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합쳐 1,050억 원에 이른다.

하이창원은 창원시 출연기관인 창원산업진흥원과 두산에너빌리티가 공동출자한 특수목적법인으로, 이번 사업을 위해 금융사인 대주단에 710억 원을 빌렸다. 대출금 상환기한은 2028년으로 매달 3억 원 정도의 이자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하이창원에 출자한 창원산업진흥원이 하루 5톤씩 액화수소를 구매하기로 약속했고 이와 관련된 손해를 진흥원이 갚기로 확약을 했는데, 창원시가 우리 채무가 아니라며 발을 빼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크리오스에서 개발한 2.5톤 액화수소 수송탱크가 창원 액화수소플랜트에 들어와 있다.(사진=크리오스)
크리오스에서 개발한 2.5톤 액화수소 수송탱크가 창원 액화수소플랜트에 들어와 있다.(사진=크리오스)

디폴트의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이창원의 주인이 대주단으로 바뀌면서 창원산업진흥원 소유 주식 100억 원(시비 60억 원, 도비 40억 원)과 두산에너빌리티 소유 주식 70억 원 등 170억 원의 주식이 대주단에 그대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에 창원산업진흥원 소유의 수소충전소 소유권도 법적 다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사이의 힘겨루기, 즉 정쟁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홍남표 창원시장이 전임 허성무 시정에서 기획해서 추진한 액화수소플랜트 구축사업을 두고 예산의 불법 조달·사용, 무리한 사업 강행, 담보제공 절차의 부당함을 문제 삼으면서 일을 키운 측면이 있다.

창원시는 액화수소플랜트 사업과 관련해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사전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 내용을 기반으로 창원시의회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행정사무감사가 진행되면서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이 시작됐다.

홍 시장은 액화수소플랜트 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전 컨설팅, 행정사무감사에서 나온 의혹을 기반으로 특정감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창원시의원들은 “2차 PF 대출 710억 원은 홍남표 시장 재임 중인 2023년 11월에 실행됐다”라며 “모든 책임을 전임 시정과 일선 공무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했다.

홍남표 창원시장은 2022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내 경선 과정에서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선고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정략적 감사로 정쟁을 일삼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수소는 영하 253℃에서 액체로 변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수소는 영하 253℃에서 액체로 변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창원의 수소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두고 “1천억 원에 이르는 플랜트를 인수할 곳이 없다. 대주단도 결국에는 플랜트를 돌려 운영 정상화에 나서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경남지역 수소충전소를 중심으로 액화수소 수요처를 빠르게 늘려가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홍남표 창원시장은 지난 4월 3일 공직선거법상 당원 등 매수금지 조항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형이 확정되면서 직을 잃었다.

시장이야 새로 선출하면 그만이지만, 이번 사태로 돌아선 민심, 즉 수소사업에 대한 지역민의 불신을 바로잡는 데는 갑절의 노력이 든다. 그동안의 소모전으로 일어난 갈등을 봉합하고 소송이 마무리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일본 ‘수소에너지 공급망 사업’ 대폭 수정

액화수소 시장을 보면 국내만 사정이 어려운 게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은 가와사키중공업과 이와타니산업 등 7사로 구성된 ‘기술연구조합 CO₂ 프리 수소공급망 추진기구(HySTRA)’를 중심으로 호주 정부와 손을 잡고 ‘수소에너지 공급망(Hydrogen Energy Supply Chain, HESC)’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수소시범사업으로 수소의 생산과 저장, 운송 등 전 부문을 아우른다.

그 과정은 이렇다. 호주 빅토리아주 라트로브 밸리에서 갈탄으로 수소를 생산한다. 여기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포집해서 지중에 저장하게 된다. 이 수소를 멜버른 남쪽에 있는 헤이스팅스항으로 보내 액화한 다음,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액화수소운반선인 스이소 프런티어(Suiso Frontier) 호에 실어 고베항으로 운송하게 된다.

 호주에서 액화수소를 싣고 고베항에 도착한 스이소 프론티어 호.(사진=HySTRA)
 호주에서 액화수소를 싣고 고베항에 도착한 스이소 프론티어 호.(사진=HySTRA)

일본전력개발(J-POWER)과 스미토모가 수소생산을 맡았고, 가와사키중공업이 액화수소운반선 개발을 맡았다. 지난 2022년 2월 호주를 출발한 배가 2주 만에 고베에 입항하면서 국제 수소공급망 구축을 위한 물꼬를 텄다.

일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술술 풀리지 않았다.

HESC 사업이 호주의 탄소배출량 감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현지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갈탄에서 수소를 추출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중에 저장하는 CCS 기술 전반에 의문을 표했고, 일본 내 액화수소 수요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HESC 프로젝트에 2,200억 엔을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실증사업의 완료 기한을 2030년으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가와사키중공업이 지난 3월 말 대변인을 통해 “수소생산을 일본으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프로젝트는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가와사키중공업이 수소 조달 방식을 국내로 전환했으며, 수소운반선 규모를 축소하는 등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 건설된 HESC 파일럿 플랜트.(사진=Iwatani Australia)
호주 빅토리아주에 건설된 HESC 파일럿 플랜트.(사진=Iwatani Australia)

가와사키 측이 밝힌 이유를 보면 “호주 측 절차 지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나온다. 호주의 환경 운동가와 에너지 전문가들의 강한 반대로 빅토리아 주정부가 블루수소 사업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일정을 맞추기가 곤란해졌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사업 마감기한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서 수소를 조달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이번 결정을 대하는 호주 현지의 시각은 일본과는 온도 차가 있다. 빅토리아주 라트로브 밸리의 석탄으로 연간 최대 3만 톤의 수소를 생산해 액화해서 수출하는 사업 자체의 경제성 확보가 어렵다는 “상업적인 이유”로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탄소포집 기술, 액화수소운반 기술 확보에 어려움이 있고, 사업의 실효성과 비용 면에 회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HESC 프로젝트를 두고 “여전히 매우 긍정적이며 장기 목표에는 변화가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애초에 목표로 한 호주의 블루수소 수입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탄소포집을 통한 CCS, 액화수소 해상운송 기술에 대한 검토를 비롯해 사업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거쳐 재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가와사키중공업은 호주와의 ‘수소에너지 공급망 사업’을 통해 액화수소운반선을 개발해왔다.
가와사키중공업은 호주와의 ‘수소에너지 공급망 사업’을 통해 액화수소운반선을 개발해왔다.

일관된 수소 정책이 중요

창원 액화수소플랜트 사업 과정에서 불법이나 절차상 문제가 발견됐다면 법적 절차를 밟아 죄를 물으면 된다. 다만 시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한 수소사업을 정쟁의 도마에 올려 난도질해서는 곤란하다.

환경부는 4월 1일 ‘수소전기자동차 충전소 설치운영 민간보조사업 추진계획’ 공고를 통해 올해 1,365억 원규모의 신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상업용 수소충전소 사업자를 대상으로 35개 충전소에 예산을 투입하게 된다. 이 중 액화수소충전소는 17개로 한 곳당 70억 원의 보조금이 지원된다.

정부는 수소 수요처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수소전기차 구매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수소충전소 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수소산업이 초기 단계로 미래의 성장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이런 정부 정책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액화수소 수요 예측에 문제가 있었다면 창원산업진흥원뿐 아니라 SK나 효성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 창원산업진흥원이 하루 5톤의 액화수소 구매와 손실금 보전을 약정하지 않았더라면 투자금 유치에 실패하면서 사업 추진 자체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인천 액화수소플랜트에 설치된 액화수소저장탱크.
인천 액화수소플랜트에 설치된 액화수소저장탱크.

미래는 예측의 영역이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과거의 결정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에어버스만 해도 2035년을 목표로 추진하던 수소항공기 개발 프로그램을 지난 2월에 전면 연기했다. 당초 예상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개발 일정을 늦추면서 관련 예산 25%를 줄이기로 했다.

로드맵은 큰 틀의 계획이다. 코로나, 전쟁 같은 변수나 시장 상황에 따라 세부 계획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수소사업으로 큰 주목을 받아온 HESC 시범사업도 계획을 크게 수정해서 가고 있다.

일본의 많은 기업과 기관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별다른 잡음 없이 일이 추진되고 있다. 한 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다룰 때는 그 파장을 고려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몇 년 안에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사업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수소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늘면 액화수소 인프라가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다. 현시점에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현실의 대안을 찾아가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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