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분리·정제에 특화된 엔지니어링 회사
“궂은일 도맡아 하는 미드필더 역할”
PSA 설비 통해 고순도 수소 정제
탄소포집·수전해·암모니아 크래킹 시장도 주목

PSA로 대표되는 가스엔지니어링 전문기업 아스페의 충주공장을 찾았다. 
PSA로 대표되는 가스엔지니어링 전문기업 아스페의 충주공장을 찾았다. 

축구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 중 하나가 미드필더다. 아스페(Aspe)는 바로 이 미드필더 포지션에 있는 회사다. 그것도 공격형보다는 수비형에 가깝다.

“공기 분리, 가스 정제 쪽으로 기반을 다져온 가스엔지니어링 전문회사입니다. 수소정제, 이산화탄소 포집, 바이오가스 고질화, 알칼라인 수전해 등 장치 기술에 특화된 회사다 보니 컨소시엄 형태로 국책과제에 참여하거나 EPC의 하청을 받아 설계를 진행하고 있죠. 주문자 요청에 따른 위탁생산, 즉 OEM 제조사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흥섭 아스페 대표가 담담하게 말한다. 사람들은 상표와 브랜드로 제품을 기억한다. 그래서 아스페란 이름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이쪽 가스업계에서는 그 인지도가 남다르다. 

아스페는 수소정제 설비, 바이오가스 고질화 설비, CO₂ 회수설비 등의 설계, 제작, 시운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스페는 수소정제 설비, 바이오가스 고질화 설비, CO₂ 회수설비 등의 설계, 제작, 시운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스 분리·정제에 특화된 엔지니어링 회사 

축구는 리오넬 메시 같은 공격수만 있는 게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사비 알론소, 맨체스터 시티의 로드리 같은 뛰어난 미드필터가 있어야 리그에서 우승권 경쟁을 이어갈 수 있다. 

부지런한 압박으로 공을 빼앗아 전진 패스를 찌르고, 간간이 중거리 슛도 터뜨리는 베테랑 선수가 꼭 필요하다. 맨시티의 로드리가 지난해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수상자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스페 충주공장을 찾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산업용 가스메이커로 유명한 대성산업가스(현 DIG에어가스)를 나와 2000년에 회사를 세웠어요. 창업 초기부터 산소와 질소를 정제하는 PSA 엔지니어링을 했고, 2010년부터 바이오가스 관련 연구과제를 시작했죠. 수소 관련 분리·정제 사업은 2015년을 기점으로 그 수요가 꾸준히 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PSA(Pressure Swing Adsorption, 압력변동흡착) 방식의 가스 정제 장치는 흡착제와 개별 가스의 흡착 특성을 이용해 제품으로 생산하고자 하는 가스를 선택적으로 분리해서 정제하게 된다. 피드가스(Feed Gsa)의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처리 공정부터 시작해 분리·정제 공정이 복잡해진다. 

기술지원팀 장현덕 과장이 소형으로 제작된 수소 PSA 시스템 앞에 서 있다. 피드가스의 특성에 맞는 흡착제와 압력 차이를 이용해 가스를 정제한다.
기술지원팀 장현덕 과장이 소형으로 제작된 수소 PSA 시스템 앞에 서 있다. 피드가스의 특성에 맞는 흡착제와 압력 차이를 이용해 가스를 정제한다.

피드가스의 조성을 보면 수소 외에도 질소,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메탄 등 여러 종류의 가스가 포함된다. 이런 기체들의 특성을 고려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리게 되는데, 전처리 장치를 비롯해 제품 생산 공정에서 기체의 분리 가능성, 회수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설계 작업에 착수한다.

“피드가스 조성을 기반으로 어떤 가스를 뽑아낼 것이냐? 이 부분에 초점을 두고 설계를 진행합니다. PSA 열 개를 똑같이 설계해도 현장마다 다 달라요. 시공 후에 장비를 돌려보면서 세밀하게 잡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기본적으로 가스의 물성, 흡착제의 특성, 설계능력, 운전 경험과 현장 노하우, 수소법 적용에 따른 법규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서 대응하기가 버거울 때가 많아요.”

공장에 들어서자 스키드 위에 설치된 PSA 장비가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 과제인 ‘바이오가스 기반 수소생산 활용 실증’을 위한 설비로 하루 500k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충주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를 정제하기 위한 PSA 설비로 납품을 앞두고 있다. 
충주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를 정제하기 위한 PSA 설비로 납품을 앞두고 있다. 

충주 바이오그린수소 충전소 북쪽에 있는 하수처리장에서 1.5km 배관으로 바이오가스를 공급받아 수소를 추가로 생산하는 과제를 고등기술연구원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수소생산의 경우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국책과제로 진행이 되고 있죠. 이 설비는 조만간 현장 설치를 완료하고 시운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고순도 수소를 정제해서 수소충전소에 공급하게 되죠.”

아스페는 바이오그린수소충전소 인근에 있는 충주 음식물바이오에너지센터에 바이오메탄 고질화 설비와 PSA 설비를 구축한 이력이 있다. 통상 기체분리막 설비로 메탄의 농도를 높이는 고질화 작업을 거쳐 증기개질(SMR)에 나선다. 여기서 추출한 수소를 PSA로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흥섭 대표는 “바이오가스를 활용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멤브레인(기체분리막)과 PSA를 하이브리드로 묶어서 가는 현장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스페는 독일 에보닉(Evonik) 사의 오스트리아 공장에서 생산된 멤브레인을 메탄 고질화 공정에 적용하고 있다.

수소생산, CCUS 정제 수요 확대

아스페는 고등기술연구원과 함께 국토교통부 과제도 진행하고 있다. ‘석유 코크스를 활용한 수소생산 실용화 기술개발’ 과제로 지난 2021년에 시작됐다. 

코크스는 정유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산업용 보일러에 주로 사용된다. 국내에선 연간 130만 톤이 생산되는데, 코크스를 직접 연소하는 대신 고온·고압 상태에서 가스화하면 합성가스가 만들어진다.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이뤄진 이 합성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효율적으로 포집하게 된다.

국토부 과제로 충남 태안의 서부발전에 납품된 3톤급 수소정제 패키지.(사진=아스페)
국토부 과제로 충남 태안의 서부발전에 납품된 3톤급 수소정제 패키지.(사진=아스페)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 기술을 보유한 충남 태안의 서부발전에서 실증이 진행된다. 코크스를 합성가스로 전환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 CCUS를 적용해 블루수소를 생산하는 요소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이번 과제에 하루 3톤급 수소정제 설비의 설계와 제작, 현장 시공을 맡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아스페는 지난 2021년 8월 ‘수소생산을 위한 석유 코크스 합성가스화 공정 중 수성가스전환(Water Gas Shift) 후단의 H₂ 및 CO₂ 동시 분리방법’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또 이듬해 11월에는 ‘수소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VPSA를 적용한 H₂ 및 CO₂ 분리방법’에 대한 특허도 받았다.

“CO₂ 제거와 회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제거’보다 ‘회수’ 쪽 일이 훨씬 어렵죠. 과거에는 그냥 날려버리거나 태워 없앤 기체들을 이제는 분리해서 다시 쓰는 쪽으로 트렌드가 바뀌었어요.”

수소탱크 앞에서 수소감압장치를 조립하고 있다.
수소탱크 앞에서 수소감압장치를 조립하고 있다.

지금은 탄소를 포집해서 활용하는 CCU 수요가 크게 늘었다. CO₂만 해도 신선식품 배송용 드라이아이스로 여름철 수요가 높다. 기본적으로 발전 플랜트, 철강, 시멘트 산업 등에 CO₂를 포집해서 활용하려는 수요가 있고, 메탄을 개질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CO₂를 회수하려는 시도도 늘었다.

그럼에도 그 움직임은 연구과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업들이 나서 지갑을 열기에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CCU가 됐든 CCS가 됐든 법으로 강제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기업이 나선다”는 것이 이흥섭 대표의 생각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발안 천연가스 공급관리소에서 진행된 한국가스공사의 ‘지능형 통합에너지플랫폼 기반 복합에너지 허브 실증’도 눈길이 간다. 이 프로젝트는 두산퓨얼셀의 트라이젠(TRI-GEN, 삼중발전시스템) 기술과 관련이 있다. 

전기와 열뿐 아니라 수소까지 생산하는 기술로, 두산퓨얼셀의 인산형 연료전지(PAFC)를 기반으로 한다. 연료전지 앞단의 개질기로 들어가는 합성가스 일부를 아스페가 설치한 VPSA 쪽으로 돌려 고순도 수소를 생산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 수소를 고압으로 압축해 수소전기차 충전에 활용한다.

한국가스공사의 발안 천연가스 공급관리소에 설치된 VPSA와 압축기 설비.(사진=아스페)
한국가스공사의 발안 천연가스 공급관리소에 설치된 VPSA와 압축기 설비.(사진=아스페)

“지난 2020년에 현장 설치를 마치고 시운전을 완료한 기억이 납니다. 처음 시작하는 연구과제라 레퍼런스라는 게 있을 수 없죠. 이 분야가 매우 폐쇄적이고 특화된 기술을 다루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아요. 그동안 중소형 규모의 정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경험치를 늘려왔지만, 대형시스템 수주에서는 고배를 마신 적이 많아요. 레퍼런스가 없다는 이유로 결국 해외 제품을 선정해서 그대로 들여오죠. 이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국내 중소기업이 상용화 문턱에서 겪는 성장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흥섭 대표는 “시장은 분명히 좋아지고 있는데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공기업에서 주도하는 사업이라도 그 문턱을 낮췄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성능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국내 기업을 믿고 지원해줘야 이를 기회로 삼아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는 토대를 닦을 수 있어요. 이런 지원이 절실합니다.”

설비 제작에 필요한 용접을 진행하고 있다. 
설비 제작에 필요한 용접을 진행하고 있다. 

수전해·암모니아 크래킹 시장도 주목

아스페는 25년간 한 길을 걸어왔다. 공기분리 시스템 기술을 기반으로 수소 PSA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산화탄소 제거·회수 기술도 확보했다. 

또 폐수처리시설, 음식물이나 가축 오폐수가 있는 혐기성 소화조, 쓰레기매립지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 등에서 메탄과 이산화탄소를 분리·정제하는 멤브레인 시스템 기술도 갖추고 있다.

“알칼라인 수전해 사업도 하고 있어요. 미국 텔레다인 사의 스택을 활용한 수소발생장치를 시장에 공급하고 있죠. 가스발전용 가스터빈에 들어가는 냉각 기체로 수소를 많이 써요. 이런 쪽에 수요가 있죠.”

수소기체에 포함된 수분을 제거하는 수소 드라이어 시스템, 수전해 과정에서 나오는 산소를 제거하는 데 꼭 필요한 수소 디옥소(DEOXO) 시스템도 수전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만 해도 몽골을 중심으로 수전해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는 시장이 크게 열리지 않았어요. 석유화학, 제철 같은 플랜트 시설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를 정제하거나, 수소추출기로 메탄을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는 쪽에 한정돼 있죠. 또 청정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서 국내로 도입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암모니아 크래킹을 통한 수소정제 수요가 크게 늘었어요.”

이흥섭 아스페 대표이사는 “수소, 메탄,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 분리·정제를 위한 엔지니어링 서비스에 특화된 회사”라고 한다.
이흥섭 아스페 대표이사는 “수소, 메탄,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 분리·정제를 위한 엔지니어링 서비스에 특화된 회사”라고 한다.

이흥섭 대표는 시장의 변화를 꿰고 있다. 고순도 수소를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후단에 분리·정제 공정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EPC 업체가 아스페를 찾아 기술 자문을 구하고 사업 참여 의사를 타진한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를 받치는 역할이죠. 피드가스의 종류나 조성비에 따라 맞춤형 설계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능력이 매우 중요해요. 그다음으로 제어 기술을 꼽을 수 있는데, 가스의 물성이나 흡착제의 특성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이를 계산해서 정확히 제어할 수 있죠.”

공장 한쪽에 흡착제의 성능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 장치도 갖추고 있다. 아카데미과학에서 나온 프라모델 장난감처럼 크기를 축소한 설비라 할 수 있다.

고순도 가스 분리용 흡착제 테스트 장비를 자체 개발했다.
고순도 가스 분리용 흡착제 테스트 장비를 자체 개발했다.

흡착제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흡착탑 내부의 온도와 압력에 따라 가스 흡착량이 달라지는데, 상업용 PSA는 그 변화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쌓은 시공 능력이나 운전 경험이 없으면 사실상 대응이 어렵다. 

“탄소중립이 화두가 되면서 무탄소 에너지인 수소가 뜨고 CCUS 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죠. 회사에서 집중하고 있는 수소, 메탄(바이오가스 포함), 이산화탄소와 관련된 분리·정제 수요가 모두 이와 관련이 있어요. 아스페는 앞단이 아니라 후단을 보는 회사다 보니 업계의 전반적인 흐름이 중요해요.”

아스페는 2023년 12월 산업부가 지정하는 수소전문기업에 선정됐다. “하지만 기대만큼 수소산업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수소는 밸류체인 산업이라 공격수, 수비수, 미드필더 할 것 없이 각 포지션의 선수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발휘해야 팀워크가 오른다. 

아스페는 25년의 공력이 있다. 수소사업이 블루오션이 되려면 정부 정책과 보조를 맞추면서 새로운 과제에 도전적으로 임하고 있는 이런 기업들이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국내 가스 정제 업계에서 로드리 같은 세계적인 미드필더가 나오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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