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빛을 활용한 광촉매로 폐페트병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 최근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발표됐다. 촉매와 태양광을 활용한 수소생산 기술로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양산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
업계에서는 열가소성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에 관심을 보여왔고, 열분해·가스화 공정에서그 답을 찾아왔다.
고온증기를 투입하면서 플라스틱을 1,300℃ 이상으로 가열하면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구성된 합성가스를 얻게 된다. 여기에 수성가스전이(Water-gas shift, WGS) 설비를 붙여 수소생산량을 극대화하고, PSA 분리 과정을 거쳐 고순도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우석이엔씨, 코하이젠에 수소공급 추진
상업화에 가장 근접한 행보를 보이는 곳은 우석이엔씨다.
금호엔지니어링 건설사업부문을 모태로 한 기업으로 군산의 새만금산단에 ‘합성가스화 기반 수소생산 실증플랜트’를 운영하고 있다. 300kg급 1세대, 500kg급 2세대를 거쳐 1톤급 3세대 설비를 개발했다.
지난해 초 군산 현장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합성가스 생산에 머물러 있었다. 1년 5개월 만에 우석이엔씨 김봉근 전무를 엔벡스(ENVEX 2025) 전시장에서 다시 만났다.
“코하이젠이 환경부 ‘수소충전소 설치 민간자본보조사업’으로 용인에 수소충전소를 짓게 됩니다. 용인 양지IC 인근에 사업장이 들어서는데, 이곳에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온사이트 수소제조시설을 설치하기로 협의가 된 상황이죠. 하루 최대 2.5톤의 수소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우석이엔씨는 이를 위한 초기 단계로 3.2톤급 가스화기 플랜트 2개 라인을 구상 중이다. 폐플라스틱 투입 라인을 2개로 잡은 이유는 안정적인 수소공급을 위해서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혼합 폐플라스틱 원료를 반응기에 넣어서 6,500시간 이상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후단에 붙은 PSA로 분리한 수소로 파이브나인(99.999%) 수소를 얻었고, 5월 말에는 국립환경과학원에서 6시간 동안 환원로에서 가스 성분을 샘플링하기도 했죠. 현재 폐플라스틱을 열분해서 만든 환원가스를 샘플링할 수 있는 곳은 우석이엔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소법에 열분해·가스화가 포함되어 있지만, 법제화로 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폐플라스틱 안에 들어 있는 탄소의 전환율을 몇 프로로 갈지, 시설의 설치기준 등을 어떻게 할지 그 기준을 잡아가는 과정에 있다.
“폐플라스틱의 원료마다 열량이 달라요. 1,400℃ 이상 고온을 필요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열량이 높은 원료가 좋죠.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성일하이텍에서 받은 폐플라스틱 원료는 연소 열량이 높아요. 대신 건설폐기물 현장에서 나오는 SRF(고형폐기물연료)는 열량이 낮아 다른 원료를 섞어서 태워야 합니다. 대신 SRF는 톤당 6만 원 정도 처리비용을 받기 때문에 경제성 확보에 도움이 되죠.”

플랜트의 설치면적은 400㎡(약 120평)면 충분하다. 수소제조시설에 필요한 원료는 용인이나 인근의 평택, 안성 등지에서 선별한 폐플라스틱 재생원료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코하이젠은 우석이엔씨에서 생산한 수소를 배관으로 받아 쓸 생각이다. 튜브트레일러 운송비를 아낄 수 있어 수소구매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안정적인 수소 판로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우석이엔씨에도 도움이 된다.
열분해·가스화 공정
우석이엔씨 열분해·가스화기 기술의 핵심은 ‘2단 적층구조’로 설계된 반응기에 있다. 산소버너로 열원을 공급하게 되는데, 산소와 환원가스, 증기가 선회하는 유동장을 통해 하단에서 열용융과 가스화가 이뤄지고, 중간 격벽을 지나 상승한 물질이 고온에서 환원가스로 변하게 된다.
“열분해와 환원이 포함된 가스화 반응을 하나의 환원로로 구현한 세계 최초의 기술이라 할 수 있죠. 단일환원로에서 나오는 슬래그는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하단으로 자동 배출되는 구조를 하고 있어요. 증기의 양으로 수소와 일산화탄소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산소발생기로 산소를 만들어 공급하게 되죠.”

사업 모델은 다양하게 갈 수 있다. 하루 1톤급 수소생산에 전기발전 300kW를 더한 모델도 한창 설계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봉근 전무는 “환원로에서 나온 합성가스를 정제해서 가스엔진발전기의 연료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생산한 전기를 한전에 팔아 수익을 내거나 분산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디카본도 우석이엔씨와 유사한 고온가스화 용융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수소전문기업에 이름이 올라 있다.
디카본은 인천 환경산업연구단지에 실증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루 최대 2톤 정도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HR시스템(Hydrogen Reactor System)’을 개발하고 사업화를 모색 중이다. 표준모델로 10톤급 제품을 설계 중이다.
열원으로 수소와 산소를 섞어서 태우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며 1,400℃ 정도에서 운전이 된다. 시스템에서 생산된 수소 중 30% 정도를 연소에 활용하는 리사이클링 개념을 도입한 점이 특징이다.
다만 값비싼 수소를 연료로 쓰려면 탄소 배출 저감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폐열 활용한 전처리 기술
단단한 폐플라스틱 수지를 열분해하기 위해서는 고온의 가스화로, 회분 회수 장치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전단에 플라스틱 원료를 끊김 없이 투입해 연속으로 설비를 돌릴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조종표 박사 연구팀은 재활용이 어려운 열경화성 혼합 폐플라스틱을 수소생산 원료인 합성가스로 전환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엔벡스 현장에서 만난 조종표 박사는 “하루 1톤 규모의 열경화성 혼합 폐플라스틱을 처리하는 파일럿 플랜트로 폐플라스틱 1kg당 수소 0.13kg을 생산할 수 있다”라며 “원료 투입, 전처리, 가스화로 이어지는 연속 공정을 구현해 공정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플라스틱의 종류는 크게 열가소성, 열경화성으로 나눌 수 있다. 열에 잘 녹는 비닐은 열가소성에 들고, 멜라민이나 요소수지, 페놀수지처럼 열을 가해도 잘 녹지 않는 딱딱한 플라스틱은 열경화성에 든다. 이 경화성 수지를 50% 이상 포함한 혼합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과제를 4년째 진행 중이다.
직류 아크방전에 의한 토치 플라즈마를 주 열원으로 하고, 보조 열원으로 산소버너를 적용하기로 했지만, 해마다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값비싼 플라즈마 장비를 산소버너로 대체한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1,300℃가 넘는 고온 가스화기에서 나오는 열을 회수해 600℃ 정도의 과열증기를 만들고, 이를 혼합 폐플라스틱 원료를 간접가열하는 전처리 공정에 활용한 점은 돋보인다.

“혼합 폐플라스틱을 가열하면 400℃ 정도에서 30% 정도 분해가 되고, 여기서 나온 휘발 성분이 연료로 작용하면서 가스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폐열을 활용한 복합 전처리 공정을 적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고 할 수 있죠.”
연속 공정으로 가스화기 내부를 초고온 상태로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 가스화를 촉진하면서 강한 점성으로 공정 라인에 들러붙어 운전을 방해하는 타르의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조종표 박사는 “조만간 2톤급 반응기로 교체해서 테스트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플라즈마 아크 토치 기술
고온 가스화기에는 직류 아크방전을 적용한 플라즈마 토치 기술이 상업적으로 널리 쓰인다. 국내에서 이 기술을 가장 오래 들여다본 곳 중 하나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하 핵융합연)이다.
핵융합연 플라즈마기술연구소는 지난 2022년 GS건설,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과 업무협약을 맺고 ‘고온 플라즈마 가스화 상용로’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 하루 처리 용량을 3톤급으로 키운 실험로를 구축하고 플라스틱 외에도 나무, 오일 슬러지 같은 유기성 폐기물을 플라즈마로 처리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팀은 지난 2월 이 실험로에서 합성가스를 추출하고 정제한 뒤 수소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또 실험로에서 나온 합성가스를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의 연료로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DC 토치 플라즈마는 청록수소 생산을 위한 상용 기술로도 활용되고 있다. 플라즈마 메탄 크래킹 기술로 청록수소 생산 상용화에 성공한 미국의 모놀리스(Monolith Materials)가 대표적이다.
용접을 하듯 두 개의 전극에 높은 전압을 걸어 아킹 현상으로 플라즈마를 발생시키게 되는데, 고전압으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고 손상된 전극을 갈아줘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핵융합연은 실험로의 장기운전 실증으로 장치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여러 종류의 폐기물을 플라즈마로 처리해 데이터를 확보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DC 토치 플라즈마의 약점을 보완하는 데 성공한다면 국내 대기업이 나서 상용화 단계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