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취임하면서 새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주요 공약을 통해 △기후에너지부 설립 △탄소중립 산업전환 지원 △중소기업 탄소중립 지원법 제정 △산업단지 RE100 지원 △에너지고속도로 설치 등을 추진할것임을 밝힌 바 있다.
수소산업 육성도 언급했다. 재생에너지를 에너지저장장치(ESS), 그린수소, 히트펌프 등과 연계하는 한편 태양광·풍력·전기차·배터리·수전해·히트펌프 등 탄소중립 산업의 국산화 및 수출경쟁력 제고, 메탄올·암모니아·수소 등 친환경 연료 추진선·운반선 원천기술 개발 및 상용화 지원을 공약했다.
과학기술 R&D 예산 대폭 확대도 제시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백신, 수소, 미래차 등의 국가전략기술을 육성하는 데 R&D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기후정책, 재정 기반 확보 중요
이들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재정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소산업만 해도 이미 정부가 수소차 구매 및 수소충전소 구축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청정수소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외 주요국처럼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수소연합이 주관하는 수소 전문기업 지원사업 예산도 한계가 있어 수소 전문기업 수는 늘어나는 반면 지원금액이 줄어드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기후대응에 필요한 재정 규모와 사용 전략을 아직 제대로 계획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도 실제적인 재원 마련 계획이 없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소경제연구단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5월 28일 한국수소환경협회 창립총회에서 ‘청정수소 현황과 나아갈 길’이란 발제를 통해 “새 정부가 ‘제2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제2차 계획에서는 우선 구체적인 수소 가격 인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가격 인하의 확실한 수단 중 하나인 생산·공급에 대한 재정적 보조를 통해 과잉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도 해외 여러 국가처럼 수소 분야에 직접 보조, 세제 혜택 등의 재정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는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재정포럼(2020재단·녹색전환연구소)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새 정부에 기후대응을 위한 국가 재정의 역할과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한 보고서가 주목되는 이유다. 이들 기관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5 새 정부에 제안하는 기후재정 방향’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중소기업 탄소중립 지원법 제정 등 제도적 기반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명확한 재정 계획과 예산 편성이 필수”라며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효과적인 기후대응을 위한 재정 전략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기후재정 8대 정책 제언
보고서는 기후재정계획 수립, 기후대응기금 확대, 온실가스 인지예산제도 실효성 강화, 신규 화석연료 보조금 편성 제한 원칙 도입 등 8대 정책 제언을 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먼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중장기 재정 로드맵 마련이 필요하다. 현행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기본계획) 내 기후대응 재정 투자 계획은 1장 분량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사업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서 예산이 20% 이상 삭감돼 투자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또 정부 재정 이외 민간투자나 공적 금융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보고서는 재정 규모, 연도별 투자 계획, 조달방식 등이 포함된 기후재정계획이 수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후재정계획이 실제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 기후특위의 예산심의권을 확보하거나 기후예산 편성 시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보고서는 기후대응기금을 2025년 2조4,000억 원에서 2030년 20조 원으로 확대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기금의 주요 재원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유상할당 수입이다. 과잉배출권 할당으로 인한 배출권 가격 급락과 낮은 유상할당 비중으로 인해 기금 규모가 4년째 2조4,000억 원 수준으로 정체된 게 문제다.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 계획(2026~2030년)에서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연도별로 20%씩 상향하고, 총량규제를 통해 배출권 가격이 2030년 6만 원까지 도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배출권 수입의 일부(30%)를 활용해 ‘지역기후대응기금’을 만들고, 금융·민간협력을 통해 지역주도형 기후대응 사업을 확산해야 한다는 내용도 강조됐다.
동시에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중장기적으로 탄소세로 개편하고, 도로·공항 건설을 축소해 전입금 비중을 대폭 확대해 2030년에는 5조8,000억 원 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선임연구원은 “새 정부가 기후대응을 경제적 기회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 큰 그림을 제시하는 일”이라며 “국가기후재정계획의 수립과 기후대응기금 확충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온실가스 감축 인지예산제도 실효성 강화도 주문했다. 정부 예산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과 결산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탄소중립기본법 제24조를 기반으로 2022년에 도입됐다.
현재 온실가스 감축 인지예산제는 감축 사업만 작성하고 배출 사업은 작성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또 지방정부의 경우 작성이 의무화되지 않았다. 부서가 자율적으로 작성한다는 문제도 있다. 2025년 온실가스 감축 인지예산서를 작성한 곳은 예산편성기관 61곳 중 16곳뿐이다. 형식적인 운영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출 사업까지 포함한 ‘온실가스 인지예산’으로의 전환, 지방정부의 인지예산서·결산서 작성 의무화, 연도별 비교 가능성을 위한 기준 정비와 이전연도 소급 적용 등을 제안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감축사업만 작성하는 온실가스 인지예산제를 배출사업까지 확대하지 않으면 ‘그린워싱’으로 전락할 수 있다”라며 “지방정부도 온실가스 인지예산서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기후예산 거버넌스 확립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온실가스 감축 인지예산제는 기재부와 환경부가 관리하고 있으나 각각 전문성 부족과 권한 한계로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탄녹위에 전 부처의 온실가스 인지예산제를 총괄·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조율·조정하거나 국가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특별회계를 조정하는 방식과 유사한 국가 단위 거버넌스 모델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로드맵이 수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정부(2023~2025년)에서 중앙정부의 연평균 화석연료 보조금은 12조9,000억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보조금(1조3,000억 원) 대비 1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현행 보조금 체계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저해할 뿐 아니라 고소득층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돼 있어 기후정의와 재정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주요 7개국(G7)은 2025년까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를 선언했다. 유럽연합(EU)·프랑스·영국 등은 석탄채굴 보조금이나 화석연료 난방 보조금 지원을 중단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시 2030년까지 전 세계 배출량을 최대 10%까지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신규 화석연료 보조금 편성 제한 원칙 도입도 제시했다. 신규 보조금 도입단계부터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 여부를 평가하고, 편성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대응기금에도 ‘친환경’이란 이름 아래 화석연료 지원사업이 2025년 기준 1,200억 원 가량 편성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기금의 약 5%에 해당한다.
임현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일몰하는 것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세수 확보를 통해 기후재정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라며 “기후목표 이행과 재정 기반 마련이라는 2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2030년까지 기후재정 20조 원 확보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대응을 위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투자해야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후대응 예산은 현재 GDP 규모의 약 0.5% 수준인 12조 원(온실가스 감축인지예산제 기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기후재정 규모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후대응기금을 대폭 확충하고, 기존 교통·에너지·환경세 체계를 전면적으로 탄소세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끝으로 기후대응 세액공제 제도 신설을 제안했다. 현재 기업의 세액공제 대상인 신성장·원천기술 및 국가전략기술에는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히트펌프), 배터리 저장장치, 탄소포집·저장(CCS) 기술 등이 포함돼 있지 않다. 이들 기후대응 기술을 조속히 세액공제 대상으로 포함해 기술개발과 시설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소는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이다.
채이배 2020재단 상임이사는 “기업의 탄소중립을 위한 행동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가 세제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며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선진국 수준만큼의 세제 지원책을 마련해 기업의 기술개발과 시설투자를 이끌고 기후테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