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펙스, 니가타현에 통합형 블루수소 생산시설 준공
블루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단계별 검증 나서
블루수소 사업의 경제성·탄소 격리 효과 시험대
일본 최대 석유기업 인펙스(INPEX)가 지난 11월 21일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에 블루수소·블루암모니아 생산단지인 ‘가시와자키 수소파크’를 준공했다.
현에 있는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수소 발전으로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실증 현장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현지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청정에너지 산업 모델로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을 실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CCS 기술 적용, 블루수소 700톤 생산
인펙스는 니가타현에 소유한 미나미 나가오카 가스전의 천연가스를 활용해 블루수소를 생산하는 실증 설비를 완공했다. 천연가스로 매년 블루수소 700톤을 생산하고, 이 수소를 활용해 전기와 암모니아를 생산해 지역사회에서 소비할 예정이다.
전체 700톤 중 600톤은 1,000kW 규모의 수소 발전소에서 전기로 변환된다. 변환된 전력은 니가타 지역의 에너지 기업인 ‘가시와자키 아이·알 에너지(Kasiwazaki I·R Energy)’를 통해 도시로 공급된다.
나머지 100톤은 질소와 합성해 연간 500톤의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데 활용된다. 이 암모니아도 지역 업체인 ‘미쓰비시 가스화학’에 납품될 예정이다.
수소를 얻는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인근 히가시 가시와자키 폐가스전에 압입해 지하에 격리하게 되는데, 이때 가스전 내부 압력이 높아지면서 남아 있는 천연가스를 추가로 얻는 가스회수증진(Enhanced Gas Recovery, EGR) 기술도 검증하게 된다.
상업 운전은 내년 봄부터 시작되며, 이번 실증사업의 비용 일부는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와 일본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에서 보조하고 있다.
가시와자키 수소파크 실증사업은 블루수소의 생산부터 활용까지 단계별 검증이 가능한 통합시설을 일본 최초로 구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일본의 동해안(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과 비교해 개발이 더딘 서해안 지역에 새로운 사업모델을 적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그린수소 수요 증가
일본 정부는 블루수소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2030 국가 온실가스 40% 감축 목표는 그린수소 정책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크지 않아 그린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지난 8월 미국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0년 9.5%에서 2023년 22.9%로 늘었지만,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이유로 발전 용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형 전력회사가 재생에너지 개발에 소극적인 점을 들 수 있다. 풍력·태양광 잠재력이 높은 홋카이도·규슈 지역은 송전 인프라가 부족하고,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운영사의 재정 부족으로 장거리 송전망을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후지산 인근을 경계로 동일본(50Hz)과 서일본(60Hz)의 송전 계통에 차이가 있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재생에너지 생산지(농촌·해안)와 소비지(도시·산단)를 잇는 송전 시스템을 적시에 완성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에 반해 한국은 새 정부 들어 2030 ND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린수소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인프라가 주요 산단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형성되어 있어 그린수소 활성화가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공약에 따라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해·호남권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초고압 직류 송전망(HVDC)을 완성해 그린에너지 생산지와 수요지를 직접 연결하려 한다.
소비량을 초과한 잉여전력은 생산지에서 ESS에 저장하거나 그린수소로 변환·저장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최근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전남과 제주가 선정됐다. 전남은 풍력 발전에 강점이 있고, 제주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P2G 실증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블루수소를 둘러싼 사업성 논란
일본은 대규모 석화단지를 보유하고 있고, 국내 천연가스전도 다수 보유하고 있어 블루수소 기술 상용화가 용이하다. 니가타현은 일본에서 가스전·CCS·발전 인프라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배관망을 구축해 블루수소 순환 시스템을 검증할 수 있다.
일본은 2030 ND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 기술로 블루수소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천연가스 사업을 유지하면서 그린수소 투자도 활성화해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블루수소 사업의 실효성을 두고 시장의 의문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석유 대기업 엑손모빌도 텍사스주 베이타운에서 추진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블루수소 생산설비 건설을 보류했다.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 에어리퀴드, JERA 등이 수억 달러의 투자를 집행했지만, 여전히 블루수소 생산단가가 높고, 트럼프 정부에서 ‘섹션 45V’와 같은 청정에너지 지원 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면서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도 동해 가스전에 탄소를 격리하는 CCS 실증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에서 암모니아 혼소를 제외했고, ‘초혁신 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에 그린수소를 선정하는 등 블루수소 사업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일본 정부가 징검다리 기술로 통하는 블루수소, 암모니아 혼소 사업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여기에 부정적이다.
이는 대형 전력회사나 가스업계가 화석연료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수소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과도 닿아 있다. 징검다리 기술에 많은 보조금이 들어가면서 대규모 장기 투자가 필요한 그린수소 기술개발에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면서 국내 수소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이 CCUS보다는 그린수소 쪽으로 크게 기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앞서서 CCS 실증에 나선 일본의 사례는 블루수소 사업의 실질적인 탄소저감 효과를 따져보고, 지중 격리 방식의 실효성과 경제성, 인센티브 제도와 규제 문제 등을 검토하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일본 또한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의 기술 우위를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술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실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