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2025년 청정수소 공급망 혁신기술 포럼’에서 프랭크 유 엔비전 부사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12월 2일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2025년 청정수소 공급망 혁신기술 포럼’에서 프랭크 유 엔비전 부사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은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이란 영화가 있다. 여기서 따온 말 같다. ‘바람과 함께 춤을(Dancing With Wind)’은 엔비전에너지의 핵심 기술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말이다.

엔비전에너지(Envision Energy, 이하 엔비전)는 중국의 풍력 터빈 회사다. 지난해 신규로 설치한 풍력 터빈 용량만 14.5GW로 중국 골드윈드(19.3GW)에 이어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 지금까지 설치한 풍력 터빈 용량만 80GW가 넘는다.

중국에서는 풍력·태양광 사업을 하는 재생에너지 기업이 그린수소 사업을 선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배터리저장시스템(BESS)만으로는 대규모 전력을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엔비전은 태양광 사업을 하는 론지(Longi), 선그로우(Sungrow)와 더불어 수전해 사업을 하는 대표 기업에 든다. 풍력 터빈, BESS, 수전해 사업에 이어 재생에너지 전력을 탄소중립 합성연료로 전환하는 P2X(Power-to-X)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프그리드 그린암모니아 생산단지인 엔비전의 츠펑 공장.

지난 12월 2일 서울 종로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2025 청정수소 공급망 혁신기술 포럼’ 현장에서 엔비전의 프랭크 유(Frank Yu) 수석부사장을 처음 만났다. 그는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서 중국 네이멍구의 츠펑 산업단지에서 운영 중인 그린암모니아 생산공장을 소개했다.

유 부사장은 “네이멍구 고비사막이 ‘미래의 유전’이 될 수 있다”라며 “전력 계통에 의지하지 않는 오프그리드(Off-grid) 환경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에 수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엔비전은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운영센터를 내년에 한국에 설치할 예정이다.

연 30만 톤 그린암모니아 생산

2022년으로 기억한다. 중국에서 그린암모니아가 주요 투자 대상에 이름을 올리면서 대형 프로젝트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그 실체를 두고 반신반의하는 이가 많았다.

“엔비전에 수소사업 부문이 만들어진 게 2021년입니다. 2022년에 츠펑 프로젝트를 계획했을 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일이 진척이 안 됩니다. 그래서 장기구매계약 없이 일단 사업에 나서기로 결정을 했죠. 회사 자체 자금을 투자하기로 하고 대출 없이 일을 진행했어요. 그 결과 탄소 프리미엄 없이 그린암모니아를 판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츠펑 공장은 엔비전의 자체 투자로 사업이 진행됐다.(사진=Envision Energy)
츠펑 공장은 엔비전의 자체 투자로 사업이 진행됐다.(사진=Envision Energy)

엔비전의 츠펑 공장은 100% 재생에너지로 가동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프그리드 그린암모니아 생산단지다.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1.2GW의 풍력·태양광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공급받아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이 수소를 질소와 합성해 연간 30만 톤의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하게 된다.

“지난해부터 1단계로 32만 톤 규모의 공장을 가동 중입니다. 수요에 따라 P2 부지를 포함해서 P3, P4 부지로 생산시설을 확장해서 연간 150만 톤까지 생산량을 늘려갈 계획이죠. 외부로 폐기물이 나가지 않는 순환시스템을 적용해서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했습다. 회수한 물은 정수시설을 통해 재활용해서 쓰고 있죠.”

엔비전은 지난 5월 뷰로베리타스로부터 ‘재생암모니아 인증’을 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와 그린암모니아 공급 계약도 맺었다.

엔비전의 츠펑 그린암모니아 플랜트는 뷰로베리타스로부터 ‘재생암모니아 인증’을 받았다. 사진 왼쪽이 프랭크 유 부사장이다.(사진=Envision Energy)
엔비전의 츠펑 그린암모니아 플랜트는 뷰로베리타스로부터 ‘재생암모니아 인증’을 받았다. 사진 왼쪽이 프랭크 유 부사장이다.(사진=Envision Energy)

유 부사장은 대규모 그린암모니아 수요처로 일본, 한국, 싱가포르를 콕 집어 거론했다. 츠펑 산단에서 남쪽으로 290km 거리에 진저우 항이 있고, 현재 이곳에 암모니아 저장시설과 부두를 건설 중이다.

그는 “진저우 항과 수소, 메탄올, 암모니아 파이프라인을 연결할 예정”이라며 “연간 600만 톤 이상의 수요가 발생하면 트럭 운송보다 파이프라인 이송이 더 유리하다”고 한다.

수전해 스택보다 운영 기술이 중요

프랭크 유 부사장은 츠펑 공장의 그린암모니아 생산에 필요한 전력 단가를 묻는 질문에 “미 달러로 환산 시 1kWh당 1.5센트 수준”이라고 답했다.

이 말에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 보조금 없이 네이멍구 지역의 풍력발전 생산단가가 1.5~2.0센트/kWh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 그린수소 산업의 높은 경쟁력을 의미한다.

원화로 환산하면 22~30원(환율 1,470원 적용 시) 수준으로, 국내 육상풍력 발전의 기준 발전단가(약 150원/kWh)와 비교해 다섯 배나 저렴한 걸 알 수 있다. 국내 원자력 발전단가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포럼 참가자들이 츠펑 그린암모니아 생산시설을 소개하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포럼 참가자들이 츠펑 그린암모니아 생산시설을 소개하는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중국은 수전해 스택, 시스템 단가도 저렴하다. 네이멍구 오르도스에 조성하는 240MW급 수전해 시설에 들어가는 알칼라인 스택의 최근 입찰 단가를 보면, 5MW 한 기당 약 272만 위안으로 kW당 76달러 수준이다. kW당 약 374달러인 유럽산 알칼라인 스택과 비교하면 20% 수준이다.

유 부사장은 “스택 가격도 배터리처럼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고, 3D 프린터로 찍어내듯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라며 “알칼라인 전해조만 해도 1만 시간 테스트를 완료했다”고 한다.

수전해 스택 자체의 기술보다는 주변장치(BOP), 프로젝트 관리,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제어 기술이 더 큰 과제에 든다. 풍력 발전량에 따라 수소생산량을 최적화하고, 수소저장량을 최소로 유지하면서 암모니아나 메탄올로 전환하는 운영 기술이 청정수소 사업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프랭크 유 부사장은 “수소저장량을 최소로 유지하면서 암모니아나 메탄올로 전환하는 운영 기술이 청정수소 사업의 핵심”이라고 한다.(사진=성재경 기자)
프랭크 유 부사장은 “수소저장량을 최소로 유지하면서 암모니아나 메탄올로 전환하는 운영 기술이 청정수소 사업의 핵심”이라고 한다.(사진=성재경 기자)

유 부사장은 “그리드를 통하지 않는 100% 오프그리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력구매계약(PPA)을 활용하거나 그리드의 지원을 받게 되면 탄소 집약도(CI)를 낮출 수 없고, 전반적인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초기 구축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오프그리드로 가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엔비전은 그린수소를 활용한 친환경 연료로 암모니아, 메탄올, 메탄, SAF(지속가능항공유)를 연구해왔다. 이중 그린암모니아의 가격 경쟁력을 가장 높게 본다.

유 부사장은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우드맥켄지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츠펑 현장에서 이와 동일한 수치를 얻었다. 그린암모니아의 실제 생산비용이 그레이암모니아의 1.3배, 블루암모니아의 1.2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화석연료를 활용한 기존 생산 방식과 비교했을 때 e-메탄올은 2.5배, e-메탄은 6배, e-SAF는 6.5배나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우드맥켄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암모니아의 생산단가는 기존 암모니아보다 1.3배가 비싼 수준이다.(사진=성재경 기자)
우드맥켄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암모니아의 생산단가는 기존 암모니아보다 1.3배가 비싼 수준이다.(사진=성재경 기자)

중국산 그린암모니아의 가격 경쟁력

엔비전은 선박 엔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WinGD와 친환경 연료의 가격 경쟁력에 대한 백서를 제작하고 있다. 유 부사장은 2026년 4월에 정식으로 공개될 예정인 결과물의 일부를 이날 언급했다.

“선박용 친환경 연료가 아주 고가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합니다. 중국에서 생산한 그린암모니아의 가격은 초저유황 연료유(VLSFO), LNG와 유사한 수준이 될 겁니다. 대형 선박에는 통상 두 종류의 엔진이 들어가는데, 항해를 위한 저속엔진(메인엔진)에는 암모니아를 쓰고, 발전용 전력을 생산하는 고속엔진(보조엔진)에는 LNG를 쓰는 쪽으로 가게 될 겁니다.”

패널 토론을 마친 프랭크 유 부사장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패널 토론을 마친 프랭크 유 부사장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그린암모니아의 생산비용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 가격 경쟁력 면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반해 e-메탄올이나 e-SAF는 생산에 필요한 원료인 생물학적 이산화탄소를 얻는 일이 어렵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건설 비용이나 원료 조달 부문에 리스크가 생길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블루암모니아의 경우에도 원료가 되는 천연가스의 장기구매계약에서 오는 리스크가 상당히 큽니다. 또 탄소를 포집해서 지중에 저장하는 CCS 시설이 필요하고, 이산화탄소 유통을 위한 배관을 깔아야 해요. 이런 유의 초대형 프로젝트는 항상 리스크가 높고, 실제로 사업을 취소하는 곳이 늘고 있죠.”

엑손모빌은 미 텍사스주 베이타운에서 추진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저탄소 수소 생산시설 건설 계획을 보류했다. 또 BP는 영국 티스사이드에서 추진하던 블루수소 생산 프로젝트(H2Teesside)를 철회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산업이 본궤도에 오르자 그린수소를 다음 목표로 삼았다. 2021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제시한 ‘위안왕허추’ 전략은 이를 담고 있다.

위안왕허추(源网荷储)는 전력 시스템의 네 가지 핵심 요소인 전력원, 계통, 전기 부하, 에너지 저장을 이른다. 이 네 가지 요소를 통합하고 조정해서 운영을 최적화한 새로운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그린수소는 에너지 저장, 즉 추(储)와 관련이 있다. 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 재생에너지의 저장성을 높이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에 수출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츠펑 산단 남단에 있는 진저우 항을 통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로 그린암모니아를 수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츠펑 산단 남단에 있는 진저우 항을 통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로 그린암모니아를 수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그에 반해 국내 그린수소 시장은 답답한 면이 있다. 제주에서 2022년부터 추진해온 10.9MW급 수전해 실증사업은 첫 삽을 뜨지도 못했다. 당초 12.5MW로 사업을 추진하다 예산 삭감으로 규모가 줄어든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양국의 출발점은 비슷했지만, 3년이 지나서 내놓은 결과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친환경 에너지인 그린암모니아 생산으로 기존 산유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2030년이면 그린암모니아가 기존 암모니아와 비교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프랭크 유 부사장의 말을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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