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단체는 석탄발전에 부정적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지난 11월 26일 미국 유타주의 최대 석탄발전소인 인터마운틴(Intermountain) 발전소가 가동을 멈췄다. 석탄발전소가 가동을 멈춘 건 캘리포니아주의 에너지 정책 때문이다.
인터마운틴 주변에는 대규모 수요처가 없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의 대부분은 LA로 송배전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는 석탄발전 중단, 청정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해왔다. 204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을 목표로 한다.
시에라 클럽의 ‘석탄 퇴출’ 캠페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은 미국을 대표하는 풀뿌리 환경단체로 1892년 창설됐다. 수백만 명의 회원과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야생 동물 보호나 청정에너지 촉진을 위한 로비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석탄 퇴출(Beyond Coal)’ 캠페인은 시에라 클럽을 대표하는 운동이다. 홈페이지에 석탄발전소 운영 현황을 담은 지도를 공개해 이미 폐쇄되었거나 폐쇄 예정인 발전소를 회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연중 가장 큰 휴일(추수감사절)에 각 가정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아무도 이 석탄발전소의 가동이 중지된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이 침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의 지역 사회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시대에 뒤떨어지고 오염을 유발하는 석탄발전소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캘리포니아는 더 깨끗한 길을 선택하고 있으며, 우리는 유타도 이 길에 동참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시에라 클럽의 석탄 퇴출 캠페인 서부지역 책임자인 잭 워터맨(Zack Waterman)이 낸 성명서의 내용이다.
그러나 유타주 의회의 대응은 달랐다. 발전소 폐쇄가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인터마운틴 전력공사(Intermountain Power Agency, IPA)의 화력발전소 완전 폐쇄를 막고 발전소 가동 중단이나 해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법적으로 전력망 연결 상태를 유지한 상태로 새로운 고객을 찾아 나섰지만, 노후 발전소를 인수해서 운영하겠다는 매수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1.9GW 용량의 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했다.
시에라 클럽은 “화석연료 발전량이 많은 50개 모기업을 연구했고, 75개의 운영회사가 석탄·가스 발전량의 절반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75개 기업 중 65개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높은 평가(A)를 받은 기업은 단 3곳에 불과했다.
시에라 클럽이 이들 회사의 발전사업을 조사한 ‘더러운 진실(Dirty Truth)’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곳은 29%에 불과했다. 또 2035년까지 118GW 규모의 신규 가스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며, 전력 수요 증가에 맞춰 화석연료 발전량의 32%를 청정에너지 생산시설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IPP 리뉴얼’ 프로젝트로 수소 혼소 추진
인터마운틴 발전소 폐쇄는 이미 예고된 일로, 유타주의 발전 협동조합인 IPA는 지난 2019년부터 후속 사업을 준비해왔다. 1980년대 지역 에너지 협력의 모범 사례로 꼽혔던 ‘인터마운틴 전력 프로젝트(IPP)’는 ‘IPP 리뉴얼(Renewed)’ 프로젝트로 거듭난 셈이다.
이는 미쓰비시 파워(Mitsubishi Power Americas)가 주도하는 사업으로, 미쓰비시 파워의 가스터빈 복합사이클(GTCC)을 적용한 840MW급 발전소가 들어선다.
이 발전소는 탄소 감축을 위해 천연가스-수소 혼소를 적용한다. 2025년 수소 연료 30% 혼소를 시작으로 2045년까지 100% 수소 전소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아직 착수 단계는 아니다.
혼소 발전에 필요한 청정수소 확보를 위해 2019년 5월부터 ‘ACES 델타(Advanced Clean Energy Storage Hub)’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해왔다. 미쓰비시 파워는 매그넘 개발(Magnum Development)과 손을 잡고 IPP 시설 인근에 있는 지하 소금동굴 두 곳을 활용해 300GW급 수소저장소를 만들기로 했다.
지상에 하루 최대 100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220MW 규모의 수전해 시스템을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된 청정수소를 두 개의 소금동굴에 저장한 다음 배관을 통해 GTCC 발전소에 공급할 계획이다.
매그넘 개발은 2023년 9월에 셰브론 USA의 자회사인 셰브론 뉴에너지(Chevron New Energies)에 인수됐다. 하지만 아직 수소생산시설과 저장시설이 정상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정책과 기술, 기업 투자의 선순환 고리
이 사업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과 관련한 국내 에너지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월 21일에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전원별 발전량 비중을 원전(31.8%), LNG(25.1)%, 신재생(21.6%), 석탄(17.4%) 순으로 잡고 있다.
석탄발전을 크게 줄여가고 있지만, 그 빈자리를 원전·LNG로 메울 생각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정수소·암모니아 같은 무탄소 연료의 비중을 얼마나 늘려갈지가 큰 관심사다. 새 정부 들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한 만큼 이 부분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각국의 에너지 사업은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에라 클럽이 공개한 ‘석탄 퇴출 캠페인’ 지도에서 보듯 캘리포니아주의 탈석탄 정책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다.
이와 별개로 그린수소 확보를 통한 청정연료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PP 리뉴얼 사업을 통해 수소 혼소 발전을 오래전부터 준비해왔지만, 여기에 필요한 청정수소를 확보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2025년에 착수하기로 했던 혼소 계획은 훗날로 미뤄진 셈이다.
에너지 전환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어디서 마련하느냐도 큰 숙제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대출 보증 등을 합쳐 ‘ACES 델타’ 프로젝트에 들어간 총사업비만 10억 달러(약 1조4,760억 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에너지 가격에 청정에너지 생산비용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고, 정부 지원 없이는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트럼프 정부가 캘리포니아주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부정적이라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결국 정책과 기술, 기업의 투자가 맞물려 돌아가며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내야 수소 인프라와 밸류체인이 더불어 성장할 수 있다. 이 순환고리를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어떻게 버티면서 뚝심 있게 일을 추진하느냐가 청정수소 사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