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스와 포스코홀딩스는 2025년 8월 청록수소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해 청록수소의 환경성, 경제성, 기술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사진=SK가스)
SK가스와 포스코홀딩스는 2025년 8월 청록수소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해 청록수소의 환경성, 경제성, 기술성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사진=SK가스)

지난 12월 10일, SK가스와 포스코홀딩스가 주관하는 ‘K청록수소협의체’가 출범했다. 청정에너지 전환을 대비해 청록수소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는 플랫폼이자 정책 논의의 장을 목표로 SK에코엔지니어링, 포스코, 충북도청 등 15개 기관이 참여했다.

이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7.8%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의 큰 고민거리인 탄소 배출을 청록수소 기술로 해결하려는 행보로 읽힌다.

청록수소란 천연가스를 재생 전력으로 열분해해 고체탄소와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말한다. 기존 수소생산 방식인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와 비교해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고 오히려 탄소 부산물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를, 일본과 유럽은 탄소포집 기반 블루수소를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은 도시가스 인프라와 산업 구조를 고려한 청록수소를 새로운 선택지로 주목하고 있다.

청록수소 기술개발에 유독 관심이 큰 기업으로 포스코를 들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DRI)에 필요한 수소를 공급할 수 있고 제철용 침탄제 등 탄소 기반 재료를 쉽게 조달할 수 있어 철강산업 분야에 쓰임이 많기 때문이다.

청록수소의 K-브랜드화 추진

고등기술연구원 박성호 책임연구원이 청록수소 생산기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사진=천대웅 기자)
고등기술연구원 박성호 책임연구원이 청록수소 생산기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사진=천대웅 기자)

한국수소및신에너지학회,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과 고등기술연구원은 지난 12월 3일 송도컨벤시아에서 ‘청록수소 생산기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청록수소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향후 상용화 방향을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학회 차원의 첫 청록수소 행사이자 공개 행사로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에는 각계의 수소분야 전문가 100여 명이 모였다. 청록수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종합 토의가 진행됐다.

이날 ‘대용량 청록수소 생산기술 실증사업’을 소개한 고등기술연구원 박성호 책임연구원은 “무엇보다 청록수소 기술 자립화에 대한 요구가 크다. 특히 유도결합 플라즈마(ICP)는 국내 독자 생산기술이고, 저온 흡착 기술도 차별화된 기술이다. 국내 독자 기술로 ‘K-Turquoise H₂(K-청록수소)’라는 브랜드 사업을 추진하고, 국제표준안도 도출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고등기술연구원은 올해 4월부터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 시스템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다. 약 35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하루 3톤의 수소를 생산하는 플라즈마 기반 수소생산 반응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플라즈마 반응으로 생산된 합성가스에서 수소를 정제하기 위한 저온 흡착 정제시스템(VPSA)은 기존 흡착공정 대비 40% 소형화시킬 예정이다. 수소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고체탄소는 하루 9톤 분량으로, 모빌리티용 연료전지 지지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청록수소 생산 기술은 아크 토치 기반 플라즈마 열분해, 유도결합 플라즈마(ICP) 기반 열분해, 열화학적 전환 수소 생산 등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플라즈마 방식은 반응 제어와 탄소 품질이 우수하지만, 공정이 복잡하다. 열화학 방식은 구조가 단순하고 쉽게 설비 규모를 확장할 수 있지만 온도·촉매 관리가 까다롭다.

인투코어테크놀로지 직원이 수도권매립지 실증 설비에 설치된 유도결합 플라즈마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인투코어테크놀로지 직원이 수도권매립지 실증 설비에 설치된 유도결합 플라즈마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이러한 특성으로 장시간 운영 안정성과 탄소 품질관리가 중요하다. 이번 대량생산 사업에는 인투코어테크놀로지의 ICP 기반 공정이 적합한 대안으로 선택됐다. 현재 수도권매립지(인천광역시 서구)에서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유도결합 플라즈마로 분해해 수소와 고체탄소를 얻는 대량생산 공정을 2029년까지 검증하게 된다.

수소환원제철에 청록수소 활용 가능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고로제철과 달리 수소환원제철은 반응 과정에서 수증기만 배출해 ‘녹색철강(Green Metal)’으로 불린다. 청록수소는 고온 상태로 공급되므로 환원로의 가열 설비를 줄이고, PSA 공정도 줄일 수 있어 수소환원제철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수소생산 과정에서 얻는 고체탄소를 제철용 침탄제 등 제철 공정에 필요한 부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포스코는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유동환원로 기반의 ‘하이렉스(HyREX)’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2028년까지 수소환원제철 데모 플랜트를 건설할 예정이다.

포스코는 수소유동환원로에서 철광석을 직접환원철로 만든 뒤 철강을 제조하는 하이렉스(HyREX)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사진=포스코)
포스코는 수소유동환원로에서 철광석을 직접환원철로 만든 뒤 철강을 제조하는 하이렉스(HyREX)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사진=포스코)

다만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위해서는 수소 가격이 지금보다 저렴한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청록수소 대량생산 기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강연에서 포스코 시성규 수석연구원은 “DRI의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수소 가격이 1kg당 약 2달러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라며 수소생산 기술의 고도화를 촉구했다. 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2월 4일에 열린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5’ 개막식에서 “정부가 책임지고 수소 가격을 kg당 2,500원 이하로 맞춰주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청록수소를 청정수소로 인증해 제도적인 지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준비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인증제도와 관련하여, 청록수소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체탄소를 탄소 배출로 볼 것인지, 탄소 절감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의 서홍석 책임연구원은 “청정수소 인증제도에서 청록수소 부산물인 고체탄소 활용(CCU)에 대한 LCA 반영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2026년 인증 심사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고 2027년 인증제가 시행되면 구체적인 사항이 마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린수소와 블루수소의 한계 보완

청록수소는 그린수소, 블루수소와 비교해 기술 성숙도가 낮아 아직 불완전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청록수소가 갖는 의미가 크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가 필요한 그린수소, CCS를 위한 지하 저장소가 요구되는 블루수소만으로는 한국의 청정수소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철강·화학 산업 등 수소 수요처가 구성돼 있고 탄소 부산물에 대한 수요도 높다.

청록수소는 산업단지에 인접한 분산형 수소 공급 방식으로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고, 고체탄소를 판매해 수소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분산형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K-청록수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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