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주도 글로벌 수소 협의체인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연례 회의인 글로벌 CEO 써밋을 사상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했다.
이번 써밋에 참가한 산업계 리더들은 현재 글로벌 청정수소 산업이 ‘목표 설정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실행 단계’에 진입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 미국, 유럽 등 수소 선도 국가의 핵심 지원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하며, 각국 정부에 지원 정책을 시급하고 완전하게 시행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실행 단계 진입
수소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표된 약 1,700개의 청정수소 프로젝트 중 최종투자결정(FID)을 확정했거나 건설 및 운영을 시작한 프로젝트가 510개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대비 80개 증가한 수치다.
이들 프로젝트에 투입된 자본은 총 1,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24년 대비 350억 달러가 증가한 규모다. 수소위원회는 이 같은 성장세를 “태양광, 풍력 산업의 초기 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궤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투자금의 지역별 편차가 두드러진다. 전체 투자액 중 330억 달러가 중국에서 집행됐으며, 대부분 그린수소다. 저탄소 수소 중심의 북미가 230억 달러, 최대 수요처가 될 유럽이 190억 달러로 뒤를 이었다.
이는 글로벌 수소 시장이 초기 단계부터 중국, 북미, 유럽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정책과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지난 18개월 동안 50개 이상의 청정수소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특히 미국에서 관세정책 여파로 올 하반기에만 5개의 대형 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됐다. 이들이 목표했던 연간 생산량을 합하면 무려 6만 톤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여전해 취소될 프로젝트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지원책 시급히 시행해야
CEO 써밋 참가자들은 “청정수소 산업이 이제 목표 설정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실행(Delivery)’ 단계에 진입했다”라며 글로벌 수소경제 가속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공동 성명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차액보상계약제도(CfD), 미국의 청정수소 생산 세액공제(섹션 45V), 유럽의 재생에너지 지침(RED Ⅲ) 등 주요 시장의 지원 정책이 완전히 이행될 경우 2030년까지 800만 톤의 수요가 창출될 수 있으며, 수소 가격 인하와 인프라 개선이 더해지면 추가로 1,300만 톤의 수요가 발생할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한국은 차액보상계약제도의 일환으로 수소발전 입찰시장을 마련했다. 이는 시장 가격 변동에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어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수소발전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40년 탈석탄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암모니아 혼소 발전 도입을 전면 중단하고자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을 일시 중단했다.
미국의 섹션 45V는 생산된 수소의 탄소집약도에 따라 세금 공제 혜택을 차등 제공하는 제도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화석연료 우선 정책 기조에 따라 섹션 45V 등 청정에너지 지원 정책을 축소하고 있다.
유럽의 재생에너지 지침(RED Ⅲ)은 지난 2023년 10월에 공식적으로 발효됐다. 이 지침은 2030년까지 EU의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 42.5%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EU 회원국들이 해당 지침을 국내법으로 전환해서 이행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뜩이나 청정수소 생산단가가 부생수소보다 높아 수요처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사업 부담을 낮춰줄 지원 정책마저 불확실해지면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참여자들은 각국에 지원 정책을 완전하고 시기적절하게 시행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참여자들은 신속한 규모 확대를 위해 명확하고 실용적인 규칙과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표준을 기반으로 한 공통 언어, 그리고 신속한 인프라 구축이 필수 전제 조건임을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장재훈 부회장은 “수소산업은 더이상 야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가게 됐다”라며 “탄탄한 정책 지원과 강력한 민관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리더십 통한 협력 가속
이번 써밋에서는 지난 2년 반 동안 공동의장을 맡았던 산지브 람바 린데 CEO의 뒤를 이어 프랑수아 자코브 에어리퀴드 회장이 신임 공동의장으로 선임돼 장 부회장과 함께 위원회를 이끌게 됐다.
공동의장사인 현대차와 에어리퀴드는 이번 써밋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을 체결하고 한국, 미국, 유럽을 거점으로 모빌리티 확대, 인프라 구축,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등 수소 전주기 고도화를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또 한국, 프랑스, 독일 등 정부 고위 관계자와 국제표준화기구(ISO) 회장 등 국제 관계자들이 모여 글로벌 정책과 표준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등 한국의 수소 기술력과 노력을 소개하는 장이 마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