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줄이고자 1.2kW PEMFC 자체 개발···에너지밀도 606Wh/kg
최대 20L 타입3 저장용기···냉각 효율 위해 수랭식 시스템 탑재
비행시간 12시간·총 항속거리 755.6km 달성···세계 최고 수준

경남 창원에 있는 한국재료연구원(이하 재료연)에 들어서자 너른 잔디운동장이 보인다. 그곳에서 몇 사람이 비행기를 조립하고 있다.
비행기의 정체는 재료연이 개발 중인 수소연료전지 추진 무인기로, 지난 2011년부터 추진되고 있는 재료연의 기본사업인 ‘수소연료전지 추진 무인기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재료연은 연료전지 기술을 자체 개발해 해외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무인기 산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해당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 사업은 양철남 책임연구원이 이끌고 있다. 그는 27년 넘게 고분자전해질막 연료전지(PEMFC)를 연구해왔다.
1.2kW 연료전지 적용해 12시간 비행
양철남 책임연구원이 무인기 몸통 앞부분에 있는 덮개를 들어 올린다. 그 안에 여러 장치가 설치돼 있다. 양철남 박사가 한 장치를 가리킨다. 바로 무인기의 심장인 연료전지·배터리 하이브리드 추진 시스템이다.
핵심인 연료전지는 1.2kW급 PEMFC로, 연구팀이 자체 개발했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은 “무인기에 적합한 연료전지 동력원을 개발하기 위해 분리판, MEA(막전극접합체) 등을 직접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연료전지를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무인기에 요구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장시간 비행이다. 오래 날기 위해선 무인기 기체가 가벼워야 한다. 기체가 가벼우면 공중에서 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감소해 비행시간이 길어진다. 여기에 카메라, 센서 등 다양한 임무 장치를 적용할 수 있는 데다 비행 동작이 빠르고 부드러워져 고난도 조종이 가능하다.
그런데 리튬이온배터리 무인기의 경우 에너지밀도가 낮아 비행시간이 30분 이내인 경우가 많다. 비행시간을 늘리려면 배터리 용량이 커야 한다. 배터리 용량이 커지면 중량과 부피가 커져 에너지밀도가 낮아진다. 이 때문에 리튬이온배터리 무인기의 비행시간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연료전지 무인기는 배터리보다 에너지밀도가 높아 같은 무게의 배터리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최소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여기서 기체의 무게를 줄이면 비행능력이 향상돼 더 오랫동안 비행할 수 있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은 “무인기에 탑재되는 연료전지 시스템의 에너지밀도를 높이기 위해선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사업 초기엔 미해군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연료전지 추진 무인기를 벤치마킹하고 무인기에 적합한 연료전지 동력원을 설계 제작하고자 했다. 이후 리튬이온배터리 동력원보다 높은 에너지밀도를 갖춘 연료전지 동력원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택을 설계할 때 분리판의 활성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최소화했다. 또 내부 체결 방식을 적용해 무게를 줄였다. 연료전지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변장치를 가능한 경량 부품을 사용했다. 특히 연료전지 제어기는 자체 개발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연료전지 동력원의 에너지밀도를 606Wh/kg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는 리튬이온배터리 동력원의 에너지밀도(200Wh/kg)보다 3배가량 높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1시간 정도 비행했던 무인기는 지난 9월 초에 진행된 시험비행에서 무려 12시간 연속 비행했다. 총 항속거리는 755.6km로,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타입3 저장용기에 수랭식 냉각 적용

양철남 책임연구원이 이번엔 무인기 몸통 뒷부분에 있는 덮개를 들어 올린다. 그 안엔 검은색의 수소저장용기가 탑재됐다. 이 공간엔 최대 20리터의 수소저장용기를 탑재할 수 있다.
수소저장용기도 무인기의 비행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가벼우면서도 많은 연료를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연구팀은 해당 무인기에 탑재된 수소저장용기를 자체 제작했다. 알루미늄 라이너를 탄소섬유 복합재료로 감싼 타입3 제품이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은 “타입4 수소저장용기는 700bar까지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무인기에 적용하기엔 타입3보다 훨씬 더 무겁다”라며 “무인기에 사용되는 수소의 양이 1kg이 안 된다. 500g만 넣어도 12시간을 비행한다. 그래서 굳이 타입4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액화수소 사용을 검토하고 있으나 규제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액화수소는 단위 질량당 에너지밀도가 높아 고압 기체수소보다 3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같은 무게로 저장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액화수소를 사용하면 해당 무인기의 비행시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연구팀은 전망한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이 주황색으로 칠해진 노즈콘(Nose cone)을 가리킨다.
무인기의 머리에 해당하는 노즈콘 안에는 냉각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무인기의 무게를 줄이고자 많은 공을 들인 만큼 공랭식 냉각시스템이 탑재됐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도 수랭식 냉각시스템이 들어갔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은 “공랭식은 시스템이 간단하고 무게가 가벼워 무인기에 유리한 면이 있으나 스택에 요구되는 공기 공급과 스택 냉각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대기 온도에 민감하다. 스택 온도가 높거나 주변 대기 온도가 높을 때 고분자막이 마르지 않도록 보완하지 않으면 스택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랭식은 공랭식보다 연료전지 시스템 무게가 증가하는 단점이 있으나 별도의 냉각시스템을 두어 스택을 냉각하기 때문에 냉각 효율이 높아 장시간 비행하는 데 유리하다”라며 “참고로 미해군연구소가 개발하고 있는 연료전지 추진 무인기에도 수랭식이 적용됐다”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첨단 기술 적용
무인기 안에 탑재된 장치들을 살펴본 후 날개를 조립한다. 날개의 총 길이는 7.3m로, 몸통 길이(3.7m)보다 약 2배 길다. 대신 세로길이는 매우 짧다. 즉 가늘고 길쭉한 형태의 날개를 적용했다.
이 같은 날개를 적용한 것은 글라이딩(무동력 비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글라이딩이 길수록 저출력으로 장시간 비행할 수 있다.
기체와 날개는 FRP(섬유강화 플라스틱)로 만들어졌다. FRP는 같은 강도의 금속 재료보다 훨씬 가볍고 습기나 화학물질에 강하며 전도성이 없다. 또 다양한 형태로 쉽게 만들 수 있어 복잡한 모양의 부품 제작이 가능하다. 아울러 섬유와 플라스틱 매트릭스가 각각 에너지를 흡수하고 분산시키기 때문에 강한 충격에도 균열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해당 무인기엔 오토파일럿 시스템이 탑재됐다.
이 시스템은 20~30개의 위성 신호를 받아 위치, 방향, 속도, 궤적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며 무인기를 제어하는 장치다. 이 시스템은 주익 앞에 부착된 GPS센서와 기체 안에 있는 자동항법장치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동체와 날개를 조립한 후 조종기로 주익, 보조익, 방향타, 승강타를 점검한다. 이어 수소저장용기의 밸브를 연다. 수소가 공급되자 연료전지가 작동한다.
연료전지 동력원의 전기 출력을 메인 전원에 연결하고 배터리와 하이브리드 전원을 구성해 비행준비를 완료한다.
몸통 덮개를 닫은 후 지상통제소에서 아밍(arming, 비행체를 작동 가능 상태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러자 두 개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한다. 조종기로 한 번 더 보조익, 방향타, 승강타를 점검한 후 무인기를 서서히 움직인다. 이어 파워를 높이자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재료연 잔디운동장은 비행금지구역이어서 공중비행을 하지 않고 운동장을 오가는 택싱(taxiing, 자체 동력을 이용해 지상을 주행하는 행위)만 한다.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 약 50m를 왕복하는 데 몇 초 걸리지 않는다. 이는 순간적으로 속도가 붙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료전지 추진 시스템의 출력이 높다는 뜻이다.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연구팀은 연료전지 시스템 출력을 1.5kW로 올려 800Wh/kg 이상의 에너지밀도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통해 무인기의 비행시간을 20시간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은 “해당 목표를 달성해 1단계를 마무리하고 2단계인 기술이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2단계 사업은 연료전지 동력원을 적용해 장시간 체공할 수 있는 무인기 개발에 관심 있는 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협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양철남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이 지금의 무인기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려 14년간 축적해온 기술력 때문이다. 이 기간에 시험 비행하다 추락한 무인기가 100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연구실엔 그동안 만들어온 수많은 수소저장용기, 스택, MEA, 분리판, 기체 등이 쌓여 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민수용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12시간 비행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연료전지 추진 무인기는 배터리 추진 무인기가 가진 비행시간과 탑재중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물류, 농업, 보안, 측량, 국방, 미디어 등 무인기 활용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어렵게 개발한 수소연료전지 추진 무인기가 빠르게 상용화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련 업체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