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솔루포스의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사진=솔루포스)
네덜란드 솔루포스의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사진=솔루포스)

경상북도는 현재 수소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울진 원전에서 생산되는 청정수소를 도내 전역에 공급하는 수소배관망(총연장 1,000km)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대량의 수소를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압배관을 활용하면 에너지 손실 없이 비용 대비 효율적으로 이송할 수 있는 데다 튜브트레일러 대비 운송비용이 낮고 이송할 수 있는 양이 많아 향후 요구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여기에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활용하면 관련 투자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이 세계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으나 큰 걸림돌이 있다. 바로 수소취성이다.

수소취성은 수소 원자가 금속 내부로 침투해 금속의 연성과 인성을 떨어뜨려 쉽게 깨지도록 만드는 현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내구성이 높은 특구 합금강을 사용하거나 금속 표면을 특수 코팅해야 한다. 이는 수소배관 생산단가를 높인다.

여기에 배관 길이를 10m 이상 만들 수 없어 여러 배관을 연결하는 용접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건설 비용과 공사 기간 증가로 이어진다. 실례로 안산시는 수소시범도시 사업 일환으로 10.9km의 수소배관을 구축했다. 배관 1km 매설에 약 15억 원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배관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이다.

네덜란드서 세계 최초 상용화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은 플라스틱, 고무, 복합 섬유 등 비금속 소재로 만들어져 유연성이 뛰어나고 가벼워 별도의 공정 없이 좁은 공간에 설치할 수 있다.

또 배관 길이를 최대 500m까지 늘일 수 있고 전용 연결장치를 활용하면 용접이 필요 없다. 이를 통해 공사 기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아울러 부식이 없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이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네덜란드다. 세계 최초로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이 시공될 정도로 활발하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 업체가 솔루포스(soluforce)와 스트롬(Strohm)이다. 두 회사는 ‘열가소성 복합 파이프(TCP)’ 기술을 활용해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을 개발하고 있다.

TCP는 플라스틱의 유연성과 고강도 섬유의 강도를 결합한 첨단 다층 구조의 배관이다. 내화학성이 뛰어난 열가소성 폴리머(HDPE, PP 등) 내부 라이너를 고강도 섬유로 감싼 뒤 외부 보호재를 코팅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일반 플라스틱 파이프의 단점인 낮은 내압성과 내열성을 보완해 고압 및 고온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스트롬의 TCP.(사진=스트롬)
스트롬의 TCP.(사진=스트롬)

세계 TCP 시장을 선도하는 곳이 바로 스트롬이다. 스트롬은 TCP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2022년부터 여러 업체와 수소용 TCP를 개발하고 있다. 또 북해에서 추진되는 여러 해상 청정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러나 수소용 TCP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곳은 바로 솔루포스다. 솔루포스는 TCP의 한 종류인 ‘강화 열가소성 플라스틱 파이프(RTP)’를 바탕으로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을 상용화했다.

RTP는 TCP와 구조는 같으나 보강층이 내부 라이너를 감쌀 뿐 일체형으로 결합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각 층이 독립적인 형태로 이뤄져 다른 층의 움직임을 허용하는 특성 때문에 RTP는 주로 중압 이하 배관으로 사용된다.

솔루포스는 지난 2000년부터 RTP를 생산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공급한 RTP가 3,500km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수소용 RTP를 개발, 올해 2분기 네덜란드 그로닝겐에 세계 최초로 설치했다. 이 배관은 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그린수소를 에임스하펜 항만 내 수요기업으로 이송한다. 총길이는 4km다.

솔루포스의 수소용 RTP는 내부 HDPE 라이너와 아라미드 섬유 보강층 사이에 수소 투과를 막는 특수 알루미늄 차단층을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최대 작동 온도는 65°C, 최대 작동 압력은 52bar다.

솔루포스는 현재 네덜란드 북부 비링거메어(Wieringermeer)에 있는 풍력발전 기반 수소생산기지와 인근 수소충전소를 연결하는 사업을 지난 2023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총길이는 약 5km이며 올해 안에 완공할 예정이다.

솔루포스는 또 네덜란드와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서 추진하는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소생산기지와 충전소를 연결하는 배관을 구축하게 된다.

영국의 테크닙(Technip)FMC는 해저 유전개발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을 개발하고 있다.

테크닙FMC는 지난 2017년 프랑스의 엔지니어링 기업인 테크닙과 미국의 해저 장비기술 기업인 FMC 테크놀로지가 합병되어 설립된 기업으로, 해저 유전개발 EPCI(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Installation)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50년 가까이 발전시켜온 플렉시블 배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파도의 움직임이나 해저 지형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깊은 수심과 혹독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지난 2018년 하이브리드 플렉시블 배관(HFP) 기술을 확보했다. HFP는 TCP와 구조는 같으나 내부 라이너를 감싸는 보강층을 금속이 아닌 탄소섬유와 고성능 반결정 열가소성 플라스틱(PEEK)을 혼합한 소재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해저 배관에서 흔히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인한 응력부식균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수소 투과성이 우수하다.

이런 특성에 테크닙FMC는 청정수소, 이산화탄소, LNG 등을 이송할 수 있는 HFP를 개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021년 인적분할을 통해 HFP 기반 육상 에너지 개발 사업 전문업체인 테크닙 에너지(Technip Energies)를 설립했다.

세계 최고 수준 배관 개발

LS전선의 초고압케이블.(사진=LS전선)
LS전선의 초고압케이블.(사진=LS전선)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은 국내에서도 개발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 개발사업 일환으로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 배관 및 접속재 국산화 기술 개발’ 사업을 공모해 LS전선, 울산TP, 한국동서발전 등으로 이뤄진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해당 사업은 세계 최고 수준인 직경 150mm 이상, 70bar 이상인 고압수소 이송용 비금속 플렉시블 배관과 접속재, 건전성 진단 기술과 안전기준을 개발하는 것이다. 사업 기간은 오는 2028년 6월까지 총 48개월이며 사업비는 정부출연금 60억 원을 포함해 총 102억 원이다.

주관기관인 LS전선에 따르면, 컨소시엄은 배관·접속재 설계 및 실증 콘셉트를 마무리하고 핵심 설계·제조·평가·모니터링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바로 광섬유다.

광섬유는 빛을 이용해 정보를 전송하는 매우 가느다란 섬유로, 대역폭과 장거리 전송 능력이 뛰어나고 환경 변화를 매우 정밀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온도, 진동, 변형률 등을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또 빛만 이용하기 때문에 폭발 위험이 없어 수소, 가스, 석유 등이 있는 환경에서 안전하게 설치·운영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광섬유를 활용하면 미세한 누출이나 잠재적 파손 징후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어 예방적 유지보수가 가능하고, 10m 이내의 정확한 위치를 즉시 파악할 수 있어 최소한의 구간만 보수할 수 있어 손실량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에 컨소시엄은 LS전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광섬유 기반 실시간 상태감지 및 자동경보·차단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또 20년 이상의 수명을 보장할 수 있는 내구성 확보, 배관 구조 최적화, 커플러·앤드피팅 등 접속부 국산화·내구화도 추진한다.

이렇게 개발된 비금속 플렉시블 수소배관을 실증구역에 200m 이상 구축해 장기운전 데이터를 확보, 안전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후 수소도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제 환경을 반영한 실증과제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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