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는 사막이 많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식민지로 있다 1990년에 독립했어요. 현재 여성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고 언론 자유도도 세계 28위로 한국보다 높아요. 영어를 공식 언어로 쓰고 기독교도도 80%나 됩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여행 다큐에서 나미브 해안 사막을 접한 분들에게는 나미비아의 수소산업 이야기가 낯설 수 있죠.”
한승관 모다드렁 대표의 말이다. 그는 국제협력전문가로 제주특별자치도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나미비아도 제주처럼 그린수소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하이픈 수소에너지 프로젝트
9월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대한민국 그린수소 밸류체인 강화: 국제 협력과 시장 확보 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승관 대표를 만났다.
“나미비아는 연간 300일 이상 일조량이 풍부하고, 1,60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타고 대서양의 연안풍이 불기 때문에 바람이 좋아요. 재생에너지 개발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나라죠. 나미비아 정부는 제주에서 진행 중인 그린수소 사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행원리에서 진행된 3.3메가와트(MW) 그린수소 실증 모델 같은 걸 자국에 그대로 들여와서 사업화하기를 원하죠.”
나미비아를 대표하는 수소사업으로 첫손에 꼽는 것이 ‘하이픈 수소에너지(Hyphen Hydrogen Energy, 이하 하이픈)’다. 하이픈은 독일의 수소·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인 에너트라크(Enertrag)와 영국의 인프라 회사 니콜라스홀딩스(Nicholas Holdings)의 합작사 이름이기도 하다.
하이픈 프로젝트는 100억 달러(약 14조 원)에 이르는 초대형 사업으로, 다이아몬드 산지로 유명한 뤼데리츠(Luderitz) 항만 지역에서 재생 가능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0년 임대 조건으로 토지를 확보해 3.5GW 규모의 태양광(32% 설비용량)과 4GW 규모의 풍력(60% 설비용량, 약 600개의 풍력 터빈)을 설치하고, 3GW 규모의 전해조를 운영하게 된다.
1단계 사업으로 연간 17.5만 톤의 수소와 100만 톤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고, 2단계 사업으로 연간 35만 톤의 수소와 200만 톤의 암모니아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뤼데리츠 항만에서 약 70km 떨어진 지역에서 수소를 생산해 배관으로 이송받게 되며, 수전해에 필요한 물은 바닷물을 담수화해 배관으로 이송받는다.

암모니아 생산은 항만 지역에서 이뤄지며 질소 정제, 암모니아의 생산과 저장에 필요한 전력도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충당하게 된다. 국내 수소제조 기업인 어프로티움(Approtium)도 하이픈을 통해 2027년부터 연간 25만 톤의 그린암모니아를 도입하겠다는 협약을 맺은 바 있다.
한승관 대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미국대사관을 나미비아에 신축해서 남아프리카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라며 “우라늄 같은 핵심 전략 광물이 많은 지역으로 그린수소 사업에서 우리나라와 협력할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K-수소기술과 노하우에 큰 관심
나미비아 그린수소프로그램 매니저인 요나 무셰코(Jona Musheko)도 이날 행사에 패널로 참석했다. 그는 하이픈 외에도 나미비아를 대표하는 그린수소 사업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가 그린스틸 생산을 목표로 하는 하이아이언(HyIron) 프로젝트다. 이미 올해 3월 오시벨라(Oshivela) 공장에서 12MW의 전해조를 사용해 남아프리카 최초로 친환경 수소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오시벨라 공장은 25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와 13.4MW 규모의 배터리저장장치로 구성된 재생에너지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다. 12MW의 전해조는 모두 중국산으로 중국 기업인 진코(Jinko), 페릭(Peric), 선그로우(Sungrow)가 참여했다. 지난해 4월 착공에 들어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설 구축을 마무리했다. 중국의 전해조 생산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이아이언은 이 수소를 활용해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할 예정이며, 연간 약 1만5,000톤의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독일의 금속 가공 회사인 벤텔러(Benteler)와 연간 20만 톤의 수소환원철 공급 계약을 맺은 터라 태양광 패널 추가 확장에 나선 상태다. 연간 100만 톤 생산을 최종 목표로 한다.
두 번째는 벨기에의 CMB.TECH가 수소 인프라 사업 중 하나로 진행한 ‘클리너지 솔루션즈 나미비아(Cleanergy Solutions Namibia)’가 있다. 나미비아 최대 민간기업인 O&L(Ohlthaver & List) 그룹이 함께 참여했다.
클리너지 솔루션즈는 나미비아 에롱고(Erongo) 지역에 친환경 수소생산공장 개발을 주도했다. 태양광에서 나온 전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며, 수소트럭이나 소형 선박 등의 충전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세 번째는 ‘다우레스 그린수소마을(Daures Green Hydrogen Village)’ 사업이다. 에롱고에 건설 중인 수소시범마을로 지난해 10월에 기공식이 열렸다. 현재 파일럿 시설이 들어선 상태로, 2027년에는 연간 2만 톤의 암모니아와 8만 톤의 비료 생산이 가능한 100MW급 비료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향후 약 1만5,000헥타르(150㎢) 부지에 연간 18만 톤 이상의 수소와 100만 톤의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하는 5.5GW 규모의 하이브리드 재생에너지 시설(2.5GW 용량의 전해조 포함)을 갖출 계획이다.
요나 무셰코 매니저는 “나미비아는 세계에서 그린수소를 가장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라며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를 도입해서 양국에 서로 도움이 되는 협력 사업을 추진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린수소 국가전략 채택한 칠레
아프리카에 나미비아가 있다면, 중남미에는 칠레가 있다. 칠레는 2020년에 ‘그린수소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태양광,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의 풍력 등 발전 효율이 매우 높은 재생에너지 자원 부국이다.

국내 기업들도 칠레에 관심이 많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연말 미국의 재생에너지 기업인 AES와 ‘INNA 프로젝트’에 협력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는 칠레 북부의 항구도시인 안토파가스타에서 그린수소·암모니아 생산시설과 수출터미널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와 관련해서 현지 기업인 ‘AES 안데스’가 환경영향평가(EIA)를 제출했다.
AES 안데스는 칠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칠레에서만 약 4GW에 이르는 발전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화력발전 외에도 수력, 풍력, 태양광, 배터리저장시스템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가 들어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 추진을 위한 기본적인 의무 절차로 개발 초기 단계를 의미한다. 최종투자결정(FID)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NNA 프로젝트 사업 현장이 칠레 북부 유럽천문연맹(ESO)의 파라날 천문대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거리에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수소사업에 대한 칠레 정부의 의지는 명확하다. 2030년까지 1kg당 1.5달러 이하에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2040년까지 세계 3대 수소 수출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칠레 투자청은 지난 8월 22일에 민관대표단을 이끌고 경북 포항에 있는 플랜텍의 신항만 공장을 찾아 ‘수소 PRG 시스템’을 시찰했다. PRG는 시스템은 40피트 컨테이너에 압축기·저장탱크·디스펜서를 함께 구성해 시간당 50kg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이다.

플랜텍 수소사업팀의 안병락 부장은 “칠레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 에너지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암모니아로 전환해서 수출하는 항만 허브를 구축하려 한다”라며 “한국의 수소기술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은 건설, 에너지 분야의 플랜트 기술에 강점이 있다. 그린수소 생산은 대표적인 EPC 사업이다. 청정수소 사업을 국가전략으로 추진 중인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가 절실하게 원하는 플랜트 기술을 국내 기업이 확보하고 있다.
다만 그린수소 생산 잠재력만 보고 섣불리 뛰어들기에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국가를 바라보는 낡은 시선, 즉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곳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또 그린암모니아를 배로 운송하는 비용과 거리도 따져봐야 한다.
중동과 호주에 머물러 있던 청정수소 도입시장에 대한 논의가 아프리카 남아공과 나미비아, 남미의 칠레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선입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망을 맺어가는 데 그린수소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