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에 매설된 수소배관.
안산시에 매설된 수소배관.

여러 국가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벗어나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경제산업 구조인 수소경제를 구축하려 한다. 

수소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선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현재 가장 보편적인 수소 이송방식은 수소배관 이송법과 튜브트레일러 운송법이다.

이 중 수소배관 이송법은 배관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것처럼 저압배관으로 대량의 수소를 최대 2,000km까지 이송하는 방법이다.

이는 수소를 에너지 손실 없이 비용 대비 효율적으로 이송할 수 있는 데다 튜브트레일러 대비 운송비용이 낮고 이송할 수 있는 양이 많아 향후 미래 수소 사회에서 요구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아울러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활용할 수 있어 관련 투자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 일환으로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수소도시 연결
울진 원자력수소국가산업단지, 포항 수소특화단지, 울산 수소도시 등 경북 지역에서 여러 국가수소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경상북도는 이들을 연결하기 위한 대규모 배관망을 구축하려 한다.

경북도는 지난 4월 25일 포항시, 울진군, 포스코홀딩스, 플랜텍 등과 ‘수소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 기본계획 수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수소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울진 원자력수소국가산업단지에서 생산되는 청정수소를 도내 전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수소배관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총연장이 무려 1,000km에 달한다.

프로젝트는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1단계는 포스코와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는 구간(16km), 포항신항과 울진 원자력수소국가산업단지를 잇는 구간(133km)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울진 원자력수소국가산업단지에서 생산되는 청정수소를 포스코 수소환원제철소에 공급할 계획이다.

경북도 수소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 기본계획 수립 착수보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경북도청)
경북도 수소에너지 고속도로 프로젝트 기본계획 수립 착수보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경북도청)

울진군 죽변면 일원에 조성되는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은 울진군에 있는 원전 10기에서 생산되는 전기(2GW)와 원자력의 고온 열을 활용해 연간 30만 톤의 청정수소를 생산, 저장, 운송, 활용하는 산업단지다.

이어 포항~경주~영천~경산~구미~김천을 잇는 구간(200km)과 김천~상주~문경~예천~안동~울진을 잇는 구간(300km)을 차례대로 추진한다. 이와 함께 3조 원을 투입해 포항에 수소·암모니아 인수 저장설비와 출하설비를 갖춘 수소복합터미널을 구축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경북도는 해당 프로젝트의 총사업비가 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업비는 지역활성화 투자펀드를 통한 민간투자와 재정을 통해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현재 추진 중인 수소도시 조성사업을 통해 수소배관망을 확충할 계획이다.

국토부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수소도시 추진전략 2.0’에 따르면 수소도시에서 생산되는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수소배관망을 확충하고 수소생산이 풍부한 지역에서 주변지역으로 이송 가능한 광역도시 간 연계 공급망 구축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수소배관망 길이를 2027년 90km에서 2040년 280km로 확대하고 4개 광역권을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수소도시 조성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12개 지자체는 수소배관망을 기반으로 수소도시를 조성한다. 12개 지자체는 총 83.7km의 수소배관을 매설할 예정이다. 이 중 포항이 16.7km, 울산이 11.9km이다.

유럽 수소경제 뼈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수소배관망 고속도로가 구축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수소를 선택, 2023년 7월 국가수소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 따르면 독일은 2032년까지 총사업비 190억 유로를 투입해 무려 9,040km에 이르는 수소배관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중 60%는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수소배관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구축하고 나머지 40%는 신규 수소배관을 설치한다. 배관은 항구, 수소생산단지 등 수소인프라와 석유화학산업단지 등 수소수요처를 연결한다.

먼저 독일 서부에 있는 링겐과 바트벤타임을 연결한 수소배관망(총연장 55km)을 지난 3월 말부터 가동하고 있다. 이 배관은 링겐에 있는 RWE의 300MW급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시설과 바트벤타임 내 수요처를 연결한다. 향후엔 바트베타임 남쪽에 있는 그로나우-에페(Gronau-Epe) 지역에 구축되는 수소저장시설, 화학산업단지, 네덜란드에 구축된 배관망과 연결될 예정이다.

독일 가스배관 운영사인 노베가(Nowega) 관계자들이 독일 서부에 있는 링겐과 바트벤타임을 연결한 수소배관망 구축을 완료하고 가동 개시를 알리는 기념식을 하고 있다.(사진=Nowega)
독일 가스배관 운영사인 노베가(Nowega) 관계자들이 독일 서부에 있는 링겐과 바트벤타임을 연결한 수소배관망 구축을 완료하고 가동 개시를 알리는 기념식을 하고 있다.(사진=Nowega)

독일 동부 라이프치히 인근에서는 풍력발전 연계 그린수소 산업단지에 설치된 30MW급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시설과 토탈에너지의 정유공장을 연결하는 배관망이 설치되고 있다. 총연장은 25km이며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1980년대에 설치된 배관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구축되고 있다. 가동은 올해 말에 개시한다는 목표다.

이 배관망은 독일 북동쪽에 있는 루빈항과 중부지역에 있는 비터펠트-볼펜(Bitterfeld-Wolfen)를 연결하는 배관망과 연결된다. 총연장은 525km이며 이 중 507km를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수소배관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구축한다. 가동은 올해 말부터 개시할 계획이나 아직 불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선 함부르크항과 인근에 있는 주요 에너지집약산업시설을 연결하는 배관망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는 ‘EU 공통 이익 중요 프로젝트(IPCEI)’의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총연장 60km의 수소배관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 중 40km를 2027년에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옆 나라인 벨기에서도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벨기에는 2030년까지 지브뤼헤항, 헨트항, 앤트워프항 등 주요 항만과 산업지역 및 인근 국가를 연결하는 수소배관망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벨기에 천연가스 송전시스템 운영사인 플럭시스(Fluxys)는 벨기에 서북부에 있는 브뤼헤와 헨트를 거쳐 브뤼셀에 도착하는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총연장 97km)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헨트 인근에 있는 데스텔동크와 브뤼셀 인근에 있는 오프베이크를 연결하는 배관망을 지난해 초부터 가동하고 있다.

또 플럭시스는 지난 3월 25일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벨기에 북부에 있는 앤트워프와 북서부에 있는 헨트를 잇는 수소배관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총연장은 36km이다. 공사는 2026년에 완료할 예정이다. 향후 시장 발전에 맞춰 점진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스페인의 에나가스는 13개 지역과 550개 지자체를 연결하는 2,600km의 수소배관망을 구축한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이 사업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이베리아반도에서 생산되는 청정수소를 주요 산업단지와 연결하는 것으로, 계획한 수소배관망 중 상당 부분을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구축해 높은 비용효율성을 확보하면서 사업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사업비는 IPCEI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포함해 7,500만 유로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독일, 벨기에, 스페인에 구축되는 배관망은 범유럽 수소배관망인 ‘유럽 하이드로젠 백본(이하 EHB)’의 한 축을 담당한다. 

현재 유럽연합은 유럽 전역에 깔린 기존 천연가스(LNG) 배관망과 수입터미널의 용도를 변경하고 신규 수소배관을 설치·연결해 유럽 수소경제의 중추가 될 수소배관망을 구축하는 사업인 EHB를 추진하고 있다. 목표는 2030년 1만1,600km, 2040년 3만9,700km이다.

EHB는 5개 구역으로 나눠 진행되는데 독일, 벨기에, 스페인이 참여하는 곳은 B구역이다. B구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생산된 수소와 모로코에서 수입되는 수소를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에 공급하는 배관망을 구축한다. 총길이는 1만km이며 60%는 기존 천연가스 배관을 활용한다. 예상 수소공급량은 2030년 160TWh, 2040년 570TWh이며 이 중 65%가 그린수소다.

범유럽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인 ‘유럽 하이드로젠 백본(이하 EHB)’의 인포그래픽.(사진=EHB)
범유럽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인 ‘유럽 하이드로젠 백본(이하 EHB)’의 인포그래픽.(사진=EHB)

중동 사막 가로지른다
기존 화석연료산업을 대체하고자 수소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도 수소배관망 구축사업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UAE는 2040년까지 2,200km의 수소배관망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 중 1,300km를 신규 수소배관으로, 나머지 900km는 기존 가스배관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구축하기로 했다. 

이 수소배관망은 UAE 북서부에 있는 알 루와이스 산업단지를 시작해 8개의 수소오아시스, 3개의 수소터미널 등을 거쳐 북동쪽에 있는 주요 컨테이너항인 코르 파칸에서 끝난다. 인근 국가인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소배관망과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 중 루와이스-아부다비-케자드-제벨 알리를 잇는 구간을 가장 먼저 구축한다. 가동 개시 시점은 2035년이다. 이 구간은 루와이스에서 생산된 블루루소를 다른 수소오아시스로 공급하고 수소오아시스에서 생산되는 그린수소를 수요처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나머지 구간은 2035년부터 2040년까지 진행한다.

옆 나라인 오만의 경우 오만 국영 가스배관망 운영사인 OQGN이 오는 2027년에 수소·이산화탄소 배관망 구축사업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OQGN가 검토 중인 사업은 오만 중부에 있는 두쿰과 남부에 있는 살랄라에서 생산되는 수소를 오만 전역에 공급하는 수소배관망을 2030년까지 구축하는 것으로, 총연장은 300~400km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만의 그린수소 전략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인 하이드롬(Hydrom)에 따르면 현재 두쿰에선 5개의 수소사업이, 살랄라에선 3개의 수소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2030년부터 2032년까지 두 개의 탄소 포집·저장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파이프라인을 가동하는 것도 포함된다. 실례로 정유회사인 쉘은 두쿰에서 천연가스로 수소와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플랜트를 구축할 예정이다. 생산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는 200km의 신규 배관을 통해 지하에 저장할 계획이다.

최종 투자가 결정되면 OQGN은 수소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에 우선 수소배관망을 구축하고 향후 국가 수소배관망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가 운영 중인 가스배관.(사진=ADNOC)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가 운영 중인 가스배관.(사진=ADN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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