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지연과 취소 이어지며 투자 동력 약화
중국산 저가 전해조 확산, 공급망 구도 흔들어
동남아 400만 톤 수요, 세계 소비의 4% 차지

글로벌 수소산업의 성장 속도가 예상에 못 미치며 2030년 저탄소 수소 생산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탄소중립의 핵심 축으로 기대를 모았던 공급 확대 기대치는 줄줄이 낮아지고, 대규모 프로젝트의 지연과 취소가 이어지며 산업 성장곡선에 ‘브레이크’가 걸린 모습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수소 리뷰 2025’ 보고서는 2030년 저탄소 수소 생산 잠재량을 지난해 전망 대비 25%가량 낮췄다. 동시에 중국의 전해조 시장 장악과 동남아시아의 신규 수요 창출을 향후 시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제시했다.
중국, 수전해 공급망 영향력 확대
IEA는 2030년 글로벌 저탄소 수소의 연간 잠재 생산량을 약 3,700만 톤으로 추정했다. 불과 1년 전 예측치인 4,900만 톤보다 1,200만 톤 줄어든 수치이다. 이번 하향 조정은 상당수 프로젝트가 여전히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고, 최종투자결정(FID)에 도달한 사업이 전체의 9%에 불과한 현실을 반영한다.
현재 전 세계 수소 생산에서 청정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며, 2030년에도 4%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젝트 지연의 가장 큰 이유로는 자금 조달 난항과 정책 불확실성을 꼽았다. 특히 금리 상승, 투자심리 위축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금리 인상으로 투자 비용이 오르고, 주요 나라의 규제와 지원 정책이 지연되면서 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전해조 설치 용량의 65%를 차지했고, 연간 제조 능력은 20GW 수준이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가 2GW에 불과해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국산 전해조는 가격 경쟁력이 높다. 1㎾당 단가가 600~1,200달러 수준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산 저가 장비의 확산은 유럽·미국 제조사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경쟁 구도를 흔들고 있다. 실제로 중동과 아프리카의 일부 프로젝트에 중국산 장비가 채택되면서 시장 잠식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만 효율과 내구성은 여전히 과제다. 유럽안전 적합성 표시인 유럽연합 CE 인증이나, 미국 안전 규격 승인인 북미 UL 인증 등 국제 표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고, 장기 운전에서 성능 저하 가능성이 지적된다.
중국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과 현지 생산 거점을 활용해 수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IEA는 이러한 움직임이 글로벌 수소 공급망 재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동남아, 새로운 수요 축으로 부상
동남아시아는 수소 수요 확대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IEA에 따르면 2024년 동남아의 수소 수요는 400만 톤 규모로, 이는 전 세계 수소 소비의 약 4%에 해당한다. 인도네시아 35%, 말레이시아 22%, 베트남 15%, 싱가포르 12% 순이다. 용도별로는 암모니아 생산이 절반을 차지했고, 정유·석유화학이 33%, 메탄올이 20%를 기록했다.
2030년까지 동남아 저탄소 수소 생산 잠재량을 약 48만 톤으로 전망했다. 이 중 60% 이상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베트남은 240MW 규모의 전해조 프로젝트를 추진해 중국 외 지역에서 드문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해운 허브라는 입지를 바탕으로 벙커링 연료 전환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IEA는 동남아 수요가 암모니아·메탄올 생산을 넘어 철강, 해운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한국 기업에도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수전해 장비 수출, 현지 합작, EPC 사업 참여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다만 현지의 자금 조달 여건과 정책 불확실성, 규제 환경은 여전히 위험 요인이다.
IEA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수소산업의 성장 속도가 초기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산업 구조 전환과 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술로서 그 중요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망치는 하향됐으나 중국의 공급망 확대, 동남아의 신규 수요를 글로벌 수소 시장을 재편할 주요 요인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