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상반기 석유·가스 기업의 수소 스타트업 투자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투자 전반이 위축된 가운데 수소 분야는 여전히 주요 투자처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GCV(Global Corporate Venturing)가 발표한자료에 따르면 BP, 쉘, 시노펙, OMV, 페트로브라스 등 주요 석유가스 기업들이 수소 스타트업에 잇따라 자금을 투입했다.

BP는 수전해 기술기업어드밴스드 아이오닉스(Advanced Ionics)에 1,250만 달러(174억 원)를 투자했다. 어드밴스드 아이오닉스는 산업 현장의 폐열을 활용하는 수증기 전해조(Symbion)를 개발한 기업으로, 기존 전해조 대비 전력 소모를 30~40% 줄였다. 전력 사용량을 35kWh/kg 이하로 낮췄고, 수소생산 단가는 1kg당 1달러 이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BP는 이외에도 지하 매장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화이트 수소’를 추출하는 탐사 기업스노폭스 디스커버리(Snowfox Discovery)에 투자했다.

쉘벤처스(Shell Ventures)와 태국 타이오일의 자회사 탑벤쳐스(TOP Ventures)는 그린수소 고압 수전해 시스템 제조사 슈퍼크리티컬(Supercritical)에 1,800만 달러(250억 원)를 투자했다.
슈퍼크리티컬은 2020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세계 최초로 고압·고효율 무막 전해조를 개발했다. 전해조는 전력 소모가 42kWh에 불과하고, 220bar 이상의 고압에서 99% 이상의 고순도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별도의 압축 공정 없이 산업용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갖췄다.
슈퍼크리티컬은 이번 투자금으로 파일럿 설비를 구축하고, 2027년부터 본격적인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중국 시노펙은 지난 4월 50억 위안(약 1조 원) 규모의 수소 벤처펀드 조성을 발표했다. 시노펙 캐피탈 산하의 시노펙 에쿼티 펀드 매니지먼트가 운용을 맡았다.
펀드는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연료전지까지 전 밸류체인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가 수소를 위험화학물질이 아닌 청정에너지로 공식 분류한 것과 맞물린 조치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수소 생산국이자 소비국이지만, 그린수소 비중은 0.1%에 그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 재정부는 지난 4월 수소충전소 보급에 3억2,1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외에도 페렌코, 오를렌, OMV 페트롬도 수소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갔다. 프랑스 석유기업 페렌코(Perenco)의 타라니스 카본 벤처스(Taranis Carbon Ventures)는 탄소 소재 기술기업 엘리멘탈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Elemental Advanced Materials)에 2,000만 달러(278억 원)를 투자했다.
폴란드 오를렌(Orlen)은 수전해 분리막 개발사 하이스타(Hystar)의 3,600만 달러(5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에 참여했고, OMV 페트롬(OMV Petrom)은 메탄 분해 기술로 저탄소 수소를 생산하는 하이카마이트 TCD 테크놀로지스(Hycamite TCD Technologies)에 투자했다.
수소, 석유가스 기업의 전략적 투자처
석유가스 기업들이 수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산업계의 탈탄소 압박이 커지면서 액화천연가스(LNG)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수소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수소 시장에서 밀려나면 고객 기반이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동하고 있다.

다만 수소에 대한 투자 열기는 예전 같지 않다. 5년 전만 해도 그린수소가 탈탄소 에너지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제는 재생에너지 활용처 중 하나라는 인식이 늘고 경제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투자자들의 접근도 신중해졌다.
탄소포집, IT는 꾸준…모빌리티 투자는 급감
탄소포집 분야는 여전히 석유가스 기업의 탈탄소 전략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3년간 분기당 1~3건의 투자가 꾸준히 이어졌고, 올해도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수소모빌리티 분야 투자는 급감했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각각 한 건에 그쳤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장에 적극적이던 BP, 쉘 등의 전략 변화가 도드라진다.

IT 분야는 두 번째로 큰 투자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 아람코는 지난 10년간 디지털 전환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고, 2분기에도 석유가스 기업이 참여한 10대 투자 중 6건에 포함됐다. 쉐브론 테크놀로지 벤처스는 소형 원자력 발전 투자에 힘을 싣고 있다.
투자 총액은 감소…브라질·중국 신규 펀드 조성
2분기 전체 투자액은 전년 동기보다 약 10억 달러가 줄었다. 다만 지난해 2분기 투자 규모가 이례적으로 컸던 만큼 절대적인 감소로 보긴 어렵다.
투자 규모는 매년 평균 100만 달러씩 줄어드는 추세지만, 1억 달러 이상 대형 투자는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브라질페트로브라스(Petrobras)는 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저장, 탄소포집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8,900만 달러(1,236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운용사를 선정해 2026년 상반기부터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사우디 아람코의 벤처펀드 와에드벤처스가 투자한 사이버보안 AI 스타트업 스파이더실크는 CPX에 인수되며 엑시트에 성공했다. 노르웨이 에퀴노르는 수중 하이퍼스펙트럼 이미징 스타트업 에코톤을 일룸에 매각했다.
석유가스 기업들의 탈탄소 전략이 다변화하는 가운데, 수소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앞으로도 이어질지 그 흐름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