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는 그간 국가 산업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으나 기후위기 시대에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노후 석탄발전기를 폐지한다. 석탄발전이 폐지되면 우선 발전소 인력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충남지역이 가장 심각하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59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절반에 가까운 29기가 충남에 몰려 있는데, 이 중 14기가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폐지된다. 발전 5사는 거액을 투자해 건설하고 운영해온 석탄발전 인프라의 좌초자산화를 겪게 된다.
발전 5사가 지역경제를 살리고 석탄발전설비의 좌초자산화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수소발전 인프라로 전환하는 구상을 발표해 주목된다.
석탄발전 감축 정책
석탄발전 폐지는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미세먼지 발생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정부는 그해 7월 6일 노후 석탄화력발전 폐지, 기존 석탄발전 성능개선 및 환경설비 전면교체, 신규 석탄발전 원칙적 진입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석탄발전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발전 5사(동서·남동·남부·서부·중부발전)는 후속 조치로 그해 12월 26일 충남지역 주요 석탄발전단지인 보령화력발전소에서 2030년까지 노후 석탄발전(10기) 폐지, 기존 석탄발전(43기) 환경설비 전면교체, 건설 중인 석탄발전(20기) 환경설비에 총 11조6,000억 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이행협약을 체결했다.
유연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석탄발전소를 폐지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저탄소·친환경 전원믹스 구축을 위한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됐다. 또 이번 대책 이행을 위해 총 11조6,000억 원이 투자됨에 따라 충남지역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노후 석탄발전기의 봄철 가동정지를 정례화하는 한편 노후 석탄발전 10기를 당초 일정(2025년까지)보다 앞당겨 2022년까지 모두 폐지하는 것을 추진했다.
특히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시 경제성뿐만 아니라 환경성과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법적 근거(전기사업법 2017년 6월 시행)를 마련하고, 제8~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에 에너지전환 로드맵(2017년 10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2017년 12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년 6월) 등에 따라 원전·석탄발전 설비 감축, 신재생·LNG 발전설비 확충 계획을 반영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제10차 전기본부터는 원전을 확대하는 게 큰 차이점이었지만 신재생발전 확대 및 석탄발전 감축은 문 정부와 같은 기조였다. 10차 전기본에 노후 석탄발전 28기 폐지 계획을 반영했다. 올해 2월에 확정된 제11차 전기본(2024~2038년)에서는 10차 전기본의 노후 석탄발전 28기(태안 #1~6, 당진 #1~6, 보령 #5·6, 삼천포 #3~6, 동해 #1·2, 하동 #1~6, 영흥 #1·2) 폐지 후 LNG 전환 계획을 유지하는 한편 2037~2038년에 수명이 도래하는 12기(영흥 #3·4, 하동 #7·8, 당진 #7·8, 태안 #7·8, 보령 #3·4·7·8)는 양수, 수소전소, 암모니아 혼소 등의 무탄소 전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노후 석탄발전 폐지 본격화
올해부터 태안화력 1호기(12월)를 시작으로 오는 2030년까지 태안화력(1~4호기), 하동화력(1~6호기), 보령화력(5, 6호기), 삼천포화력(3~6호기), 동해화력(1, 2호기), 당진화력(1~4호기) 등 총 22기가 폐지될 예정이다.

해당 지자체는 지역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충남도는 지난 4월 23일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대체 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2028년까지 170억 원을 투입해 태안읍 인평리 일원에 탄소포집형 수소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태안군, 한국가스기술공사 등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국회에서는 이미 10개 이상의 석탄발전폐지지역지원법이 발의되어 논의 중이다. 발전 5사는 석탄발전 중심의 사업을 대대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산업부는 이미 10차 전기본을 통해 노후 석탄발전의 좌초자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석탄발전 휴지보전 제도를 검토하는 한편 석탄발전 폐지에 따른 일자리 문제 최소화를 위해 LNG·신재생발전 등 다른 발전소 등으로 인력 재배치, 기존 석탄발전 인프라 활용 등의 다양한 방안을 관계부처, 지자체와 함께 검토해 나갈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10일 관계부처·지자체와 발전 5사가 참여하는 ‘석탄발전 전환 협의체’를 출범하고,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석탄발전 인프라 재활용, 석탄발전 전환에 따른 지역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최소화, 발전사의 과감한 사업재편 지원방안 등을 담은 ‘석탄발전 전환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석탄발전 인프라, 수소·암모니아 시설 전환
특히 지난 4월 29일에 개최된 제3차 회의에서 석탄발전 인프라를 수소 인프라로 활용하는 구상이 처음으로 나와 관심이 쏠린다. 발전 5사는 주로 석탄발전의 대규모 부지와 전력설비를 활용해 수소 생산시설 및 발전시설로 전환하고, 석탄 인프라 시설을 수소·암모니아 인수·저장시설로 전환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또 석탄발전 송전설비를 활용한 해상풍력 배후단지 조성, BESS(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태양광 등 다양한 대체사업을 논의했다. 다만 아직은 사업 구상단계로 지자체 및 관계부처와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
산업부는 석탄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져왔던 발전 5사가 좌초자산을 최소화하면서 풍력·수소 등 친환경 발전사로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발전 5사는 이미 연료전지 발전사업을 진행해왔고, 정부의 CHPS(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 정책에 따라 수소발전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수소발전에 활용할 청정수소를 해외에서 생산해 주로 암모니아 형태로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확정한 ‘청정수소 생태계 조성방안’을 통해 LNG·석탄 발전의 탈탄소화 및 발전설비의 좌초자산화 방지를 위해 수소·암모니아 발전용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석탄발전기가 밀집된 서해·동해·남해 등 3개 지역을 거점화해 대규모 암모니아 인수·저장 설비를 구축하는 한편 액화수소 인수·저장 설비도 구축해 수도권에 집중된 LNG 발전소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한국남부발전이 지난해 처음으로 개설된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에서 유일하게 낙찰되어 발전 5사 중 최초로 청정수소발전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2028년부터 본격적으로 삼척그린파워 1호기에서 연간 750GWh 규모의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개시할 계획이다.
산업부가 지난 9일 2025년 수소발전 입찰시장 개설을 공고했는데, 청정수소발전 물량은 연간 3,000GWh로 2029년까지 발전을 개시해야 한다. 이처럼 정부가 매년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을 개설함에 따라 수소·암모니아 인프라 구축이 시급해진 발전 5사가 폐지되는 석탄발전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석탄발전 전환사업에 많은 인허가 등의 절차가 수반되고 석탄발전폐지지역 지원, 수소·암모니아 시설에 대한 지역주민 수용성 제고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한 국회, 정부, 지자체, 발전사 간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
최남호 산업부 제2차관은 ‘석탄발전 전환 협의체’ 제3차 회의에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석탄발전폐지지역지원법과 정부가 준비 중인 석탄발전 전환 로드맵을 통해 발전사의 에너지전환 계획이 안정적·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