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는 에너지산업이다. 그래서 사명이 곧 브랜드로 기능할 때가 많다. 하이넷(HyNet), 코하이젠(KOHYGEN), 하이스원(HyIS-one) 같은 수소충전소 운영사가 대표적이다. 사명 안에 수소(Hydrogen)를 DNA처럼 품고 있다.
하이넷을 한글로 풀어쓰면 ‘수소에너지네트워크’가 되고, 코하이젠은 ‘한국수소그린에너지네트워크’가 된다. Hy라는 영문이 눈에 띄면 ‘수소’ 관련 업체로 봐도 무방하다.
액화수소 사업을 하는 하이리움산업이 대표적이다. ‘Hy’라는 고딕체 위에 수소 원자량(1.0079)이 표기된 사각형 로고가 회사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하단에 적힌 4.0026은 헬륨의 원자량이다. 극저온 액화 기술에 특화된 회사란 의미다.

‘Hy’에 담긴 수소 정체성
하이리움산업은 액화수소를 기반으로 한 수소드론, 이동식 수소충전소, 수소모빌리티용 초경량 액화수소탱크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2023년 9월에는 경기경제자유구역인 평택 포승지구에 신사옥을 준공하면서 액화수소 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이리움은 미국의 산업용 가스 극저온 장비 제조업체인 차트인더스트리스와 손을 잡고 합작회사인 하이리움차트(HYLIUM-CHART)를 설립했고, CJ대한통운에 3톤급 액화수소 탱크트레일러를 납품하기도 했다. 이들 차량은 SK의 인천 액화수소 플랜트에 투입되어 운행 중이다.

수소 관련 합작회사 하면 SK플러그하이버스(SK Plug Hyverse)도 빼놓을 수 없다. SK E&S(현 SK이노베이션 E&S)와 미국 플러그파워(Plug Power)가 지난 2022년 1월에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SK플러그하이버스는 플러그파워의 고분자전해질막(PEM) 수전해 기술을 기반으로 제주도에서 그린수소 사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에서 진행 중이던 그린수소 상용화 사업에서 발을 뺐다. 지금은 액화수소충전소 구축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수소 전문 자회사를 세운 곳도 있다. 효성중공업의 자회사인 효성하이드로젠, HD한국조선해양의 수소연료전지 자회사인 HD하이드로젠이 여기에 든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2021년에 세계 산업용 가스 1위 기업인 린데와 액화수소 생산 합작법인인 린데수소에너지를 설립하면서 판매법인으로 효성하이드로젠을 세웠다.
효성하이드로젠은 액화수소충전소 구축을 비롯해 생산 합작법인인 린데수소에너지에서 생산한 액화수소의 사용처를 드론, 선박, 지게차 등 다양한 모빌리티 분야로 확대하는 일을 맡고 있다.
중소기업 중에는 수소저장 솔루션을 제공하는 하이드로럭스(HYDROLUX)라는 회사가 있다. 전문 경영인인 김종원 대표와 수소 1세대 연구자인 강길구 대표가 2021년에 세운 회사로 수소저장합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체수소 저장을 위한 합금 설계·제조·초기 활성화 공정 기술을 확보해 상용화에 나섰다. 하이드로럭스가 개발한 티타늄계 하이브리드형 수소저장 합금은 상온의 저압(10~50bar) 환경에서 수소를 안전하게 저장했다 방출한다.
수소 브랜드의 확장
하이드로젠이 식상했던지 ‘프로티움(Protium, 경수소)’이라는 단어를 발굴해 사명으로 쓰는 곳도 있다. 울산에 본사를 둔 어프로티움(Approtium)이 그 주인공이다. 앞자리 알파벳(Ap)은 ‘Apply’의 약자로 ‘안정적인 수소 공급을 지원하고 적용하는 파트너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프로티움의 전신은 덕양이다. 1964년에 ‘울산산소’라는 지역 가스 업체로 출발해 한국을 대표하는 수소 생산·공급 업체로 성장했다. 덕양은 맥쿼리자산운용에 인수된 후 통합 작업을 거쳐 2022년 9월에 어프로티움이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어프로티움은 울산에 제1, 2, 3, 5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 충남 서산에 제4공장을 짓는 등 사업 확장을 통해 연간 10만여 톤의 수소를 산업용 수요처에 공급하고 있다. 또 수소제조(SMR)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연간 약 40만 톤의 액화탄산을 생산한다. 울산 동해가스전에서 CCS 실증사업이 시작되면 큰 수혜를 볼 기업이다.
수소 운반체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암모니아다. 탄소(C)가 없는 친환경 에너지로 암모니아가 주목을 받으면서 해외 청정수소를 질소와 합성해 암모니아로 전환한 뒤 해당 국가로 운송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암모니아를 사명에 넣은 회사가 바로 미국 MIT 출신인 우성훈 대표가 2020년 11월 뉴욕에 설립한 아모지(AMOGY)다. 아모지는 암모니아(Ammonia)와 에너지(Energy)의 합성어다.
아모지는 루테늄 촉매를 기반으로 한 암모니아 크래킹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암모니아를 분해해서 생산한 수소를 모빌리티에 적용하거나 수소엔진 등에 활용하는 사업을 국내외에서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 같은 경우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에 ‘하이렉스(HyREX)’란 이름을 붙였다. 수소와 일산화탄소를 이용해 유동환원로에서 철을 직접 환원하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기반으로 한다.

포스코는 지난해 1월부터 사장 직속으로 수소환원제철 사업 총괄조직인 하이렉스추진반을 운영해왔다. 올해 6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 개발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총사업비 8,146억 원(국비 3,088억 원)을 들여 기술개발에 나선다.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
통상 브랜드 하면 기술보다 제품이 먼저 떠오른다. 도요타의 수소 브랜드 하면 수소전기차 ‘미라이(Mirai)’를 떠오르듯, 현대차 하면 ‘넥쏘(NEXO)’란 이름이 맨 먼저 떠오른다.
현대자동차는 7년 만에 완전변경모델인 디 올 뉴 넥쏘를 출시하고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광고는 ‘넥쏘 러브콜’ 캠페인이다. 친환경의 가치, 수소모빌리티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캠페인성 광고로 가장 먼저 화답한 사람은 방송인 유재석이다.
“CO₂ 없이 떠나는 수소모빌리티의 여정, 저 유재석도 넥쏘와 함께하겠습니다”라는 담담한 독백을 담고 있다.
현대차 넥쏘 러브콜 캠페인 영상에서 유재석이 화답했다.
넥쏘는 국내 수소산업을 이끈 아이콘 역할을 해왔다. 수소차 대중화를 이끌며 전국 곳곳에 수소충전소가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도심에 수소충전소를 짓기란 여전히 어렵고, 화석연료에 기반한 그레이수소가 아닌 청정수소 인프라를 확보하는 일은 지금도 큰 숙제로 남아 있다.
현대차가 ‘에이치투(HTWO)’를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격상시킨 계기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수소사회 전환을 거론하며 ‘HTWO Grid 솔루션’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원래 HTWO는 현대차가 2020년에 처음 발표한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브랜드로 수소(Hydrogen)와 인류(Humanity)를 합친 말이다. 두 개의 H가 만나 ‘인류를 위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CES 2024를 기점으로 HTWO는 수소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그리드 개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현대차뿐 아니라 현대로템,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그룹사 전체의 수소사업이 ‘HTWO 브랜드’로 통합된 셈이다.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전해’ 기술, 폐플라스틱을 수소로 바꾸는 ‘P2H’ 기술, 하수슬러지나 오물을 수소로 바꾸는 ‘W2H’ 기술을 모두 HTWO 브랜드로 묶어 수소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다.
수소전기차 제작사는 수소의 생산과 공급을 포함한 수소충전 인프라를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현대로템만 해도 수소전기트램 개발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현대로템은 2020년 5월 수소추출기 사업을 수주하고, 그해 6월에 하이넷 당진 수소출하센터를 수주하면서 수소 인프라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또 국내 최초의 ‘수소모빌리티 통합형 수소충전소’로 불리는 창원 대원수소충전소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현대건설도 전북 부안 신재생에너지 테마파크 안에 수전해 기반 수소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국책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또 수도권매립지에서 나오는 바이오가스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수소 브랜드의 가치
전북특별자치도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인 전북현대모터스는 2025 시즌 새 유니폼에 ‘NEXO’ 문구를 넣었다. 지난 2019년부터 6년간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을 홍보한 걸 감안하면 큰 변화다.
또 우측 소매에 현대차그룹의 수소사업 브랜드인 ‘HTWO’ 로고를 큼지막하게 부착했다. 이는 수소사업에 대한 현대차의 의지를 담고 있다.

HTWO 브랜드 홍보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차는 2023년 하반기에 ‘캘리포니아 항만 친환경 트럭 도입 프로젝트(NorCAL ZERO)’를 통해 글로비스 아메리카(GLOVIS America) 산하 트럭 운송 사업자에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30대를 공급한 바 있다.
단일 운송업체에 공급한 수소트럭 대수로는 북미 최대 규모로, 단순한 차량 판매를 넘어 수소 공급과 충전소 구축, 리스와 파이낸싱, 유지보수 서비스를 아우르는 ‘수소 상용모빌리티 밸류체인’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글로비스 아메리카와 협력해 조지아주 현대차 생산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친환경 물류체계인 ‘HTWO 로지스틱스 솔루션’을 도입하기도 했다. 엑시언트 수소트럭을 물류 현장에 투입하고 태양광발전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는 등 탈탄소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로 미국의 환경·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가 일면서 수소사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주목하는 시장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 광둥성에 해외 첫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생산기지인 HTWO 광저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7월 18일 HTWO 광저우 혁신센터에서 현지 물류기업인 위안상물류와 수소트럭 공급 등을 골자로 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위안상물류에 연내 100대의 수소 차량을 공급하고, 중장기적으로 도심 배송과 장거리 물류 등 주요 수요처에 단계적으로 1,000대 이상의 수소차량을 추가로 공급할 예정이다.
광둥성은 지난해 착수한 ‘광잔 수소에너지 고속도로 시범사업’을 통해 수소트럭 도입을 빠르게 추진해왔다. 광저우에서 잔장으로 이어지는 총길이 435km의 고속도로에 4.5톤급 수소냉장트럭 500대와 49톤급 대형트럭 10대를 우선 도입하고, 올해 말까지 2,000대 규모로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브랜드는 시장의 규모와 비례해 인지도를 키워간다. 시장이 작으면 브랜드의 힘도 그만큼 약해진다. 그 점에서 중국 시장은 잠재력이 매우 크다. 수소차량과 연료전지시스템 판매가 늘어야 HTWO 브랜드의 확장성도 커진다.
HTWO 브랜드는 단일 제품을 넘어 수소생태계를 지향한다. 수소사회에 대한 확신 없이는 투자를 이어가기가 어렵다. 그 길은 길고 험난하지만, 밑바닥부터 기초를 다져 올린 브랜드의 가치는 쉽게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