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 2024’에서 ‘HTWO Grid 솔루션’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수소 그리드’ 없이는 수소모빌리티의 확장이 어렵다는 현대차그룹의 오랜 고민을 반영한다. 중국, 인도를 중심으로 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수소 전략을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주>

CES 2024 현장의 현대차 부스로 ‘HTWO Grid 솔루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사진=현대차)

‘에이치투(HTWO)’는 현대차가 2020년에 론칭한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브랜드로 수소(Hydrogen)와 인류(Humanity)를 합친 말이다. 두 개의 H가 만나 인류를 위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현대차의 CES 부스는 ‘HTWO’라는 브랜드에 초점을 맞췄다. 대형 스크린은 폐플라스틱이 수소로 태어나는 과정을 담아냈고, 흰 상자 모양의 ‘미디어 테이블’을 바닥에 격자로 배치해 폐플라스틱을 수소로 바꾸는 ‘P2H’ 기술, 하수슬러지나 오물을 수소로 바꾸는 ‘W2H’ 기술을 소개했다.

이는 HTWO를 연료전지시스템에 국한된 브랜드가 아닌, 수소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그리드 개념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현대차뿐 아니라 현대로템,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그룹사 전체의 전략을 HTWO 브랜드에 녹여내는 출발점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엑시언트 수소트럭 유럽 수출 ‘지지부진’

2020년 7월 6일 전남 광양항에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10대가 스위스행 수출 선박에 줄줄이 오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수소사업의 전망은 밝았다. 니콜라가 공장도 시제품도 없는 상황에서 배저(Badger) 픽업트럭에 대한 사전예약 주문을 받느라 바쁠 때였다.

2020년 7월 6일 전남 광양항에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10대가 스위스행 수출길에 올랐다.(사진=현대차)

그해 여름 현대차 전주공장은 활기가 돌았다. 연말까지 스위스에 수소트럭 40대를 더 수출하고 2025년까지 모두 1,600대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지키지 못했다. 2022년 6월까지 스위스로 보낸 차량은 47대에 불과했다.

엑시언트 수소트럭 수출 소식은 드문드문 전해졌다. 독일 연방디지털교통부(BMDV)가 친환경 상용차 보급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여기에 7개 회사가 현대차를 파트너로 선정하면서 수소트럭 27대를 독일행 배에 실어 보냈다. 딱 이 정도 규모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만 165만2,821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판매량을 전 세계로 넓히면 730만대가 넘는다. 그에 반해 수소차 판매량은 지지부진하다. 매달 국내 수소전기차 등록 대수 통계를 내고 있지만, 2018년 넥쏘 출시 이래 4만 대를 넘지 못했다.

HTWO 광저우, 중국 시장 진출 본격화

그 와중에 모처럼 중국에서 희소식이 전해졌다. 중국의 수소 소식을 다루는 ‘China Hydrogen Bulletin’에 올라온 1월 5일자 기사 제목은 ‘현대차, 광저우에 수소전기차 500대 납품’이었다. 이는 중국 내 수소전기차 배치 중 최대 규모에 든다.

다만 완성차 수출은 아니다. 수소연료전지 모듈만 현대차 제품을 썼다. 현대차 HTWO 광저우와 현지 국영기업 2곳의 합작회사인 ‘H2 솔루션’에서 해당 차량을 납품했다. 여기에는 물류트럭, 냉동트럭, 노면청소차, 버스가 골고루 들어 있다.

HTWO 광저우는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건설한 첫 번째 수소연료전지시스템 공장으로 지난해 6월 1일에 준공됐다. 20만2000㎡(약 6.1만 평) 부지에 스택공장, 활성화공장, 연구동, 사무동, 혁신센터 등이 들어서 있으며, 연간 6,500기의 연료전지시스템을 생산할 수 있다.

2023년 6월 1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황푸구에서 현대차그룹 ‘HTWO 광저우’의 준공식이 열렸다.(사진=현대차)

HTWO 광저우는 올해 말까지 광둥성과 광저우시 산하의 국유기업에 수소트럭과 수소청소차 등 수소전기상용차 1,500대를 보급하기로 계약은 맺은 상태다. 1차 물량 500대가 이번에 인도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역시나 중국의 ‘수소 굴기(崛起)’가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6년 ‘신에너지·에너지절약형 자동차 기술 로드맵’을 통해 2025년까지 수소차 5만 대 보급‧수소충전소 300기 구축,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 보급‧수소충전소 1,000기 구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현대차는 세계 최대 수소차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광둥성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국의 에너지 기업인 광저우 헝윈그룹, 광저우개발구 교통투자그룹과 합작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광둥성은 수소전기차 도입에 적극적이다. 오는 2025년까지 2,500대, 2030년까지 1만 대의 수소전기차를 도입할 계획이다.

중국 연료전지 기술 ‘급성장’

현대자동차는 합작회사인 ‘H2 솔루션’을 통해 2023년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6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China International Import Expo, CIIE)’에 중형급 수소전기트럭을 처음 공개했다. 이 차량은 현대차의 2.5~4톤급 마이티 트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HTWO 광저우는 중국 상용차 설계‧제조 전문업체인 페이치 테크놀로지(Foshan Feichi Automobile Technology)와 1년여에 걸쳐 냉동탑차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해왔다. 1971년에 설립된 페이치 테크놀로지는 중국 최초로 수소연료전지 버스‧트럭 생산 자격을 받은 대형 수소트럭 판매 1위 업체다.

두 회사의 역할 분담은 명확하다. HTWO 광저우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공급과 기술을 지원하고, 페이치 테크놀로지가 상용차 제작과 통합솔루션 구축을 맡았다. 양사가 공동 개발한 4.5톤 수소전기 냉동탑차는 냉동식품, 유제품, 백신 등을 운송하게 된다. 1회 수소 충전으로 400km를 달릴 수 있다.

골든드래곤(Golden Dragon)의 8m급 전기버스인 폴스타(Polestar)를 기반으로 한 수소전기버스도 이번 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 차량에도 HTWO 연료전지가 들어갔다.

골든드래곤은 중국 최대 버스 제조업체 중 하나인 킹롱버스의 계열사다. 2023년 7월에는 중국 수소전기버스 월 판매량(216대) 1위에 올라 상하이 맥서스(SAIC Maxus, 170대)와 하이거(Higer, 166대)를 앞지르기도 했다.

골든드래곤은 수소전기버스 외에도 연료전지로 구동되는 소형트럭, 대형트럭 개발에도 성공했다. HTWO 수소연료전지를 공급받아 자사의 차량에 탑재했다는 것은 기술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기술을 기반으로 상용 부문(버스‧트럭)에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접목해왔다. 도요타나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받아 자국 내 공장에서 차량을 제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력을 높일 수 있고, 기업이나 지방 정부에 보조금을 골고루 분배해 경제 활성화를 돕는다.

중국은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4분기 비야디(BYD)가 중국에서 테슬라의 전기차 판매량을 처음으로 앞서는 등 그 기세가 등등하다. 현대차는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보다는 수소차 시장에 집중해왔다. ‘HTWO 광저우’는 중국에서 현대차가 친환경차의 입지를 다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제2의 비야디 경계해야”

다만 그 전망이 밝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CATL과 비야디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거 소니나 노키아에 배터리를 공급하던 작은 회사(비야디)가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로 성장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그동안 연료전지시스템을 다양한 차종에 적용하면서 양산체계를 구축해왔다. 500대의 수소전기차를 시장에 풀었다는 건 수소 충전 인프라를 지역에 구축했다는 뜻이다. 산둥성을 거점으로 시노트럭(Sinotruck), 웨이차이파워(Weichai Power) 같은 자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수소연료전지시스템 브랜드는 HTWO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연료전지 개발업체인 시노하이텍(SinoHytec)이나 리파이어(Refire)의 제품을 써도 무방하다. 지금은 수소차 시장의 규모를 키워가는 단계지만, 연료전지 기술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숨은 발톱을 드러내게 된다. 이는 중국 내 정치 상황, 미국과의 관계 등에 따라서도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컴퓨터 두뇌에 해당하는 CPU(중앙처리장치)를 인텔 대신 자국의 룽손 제품으로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수소연료전지는 차량의 CPU에 해당한다. 중국은 그동안 수소연료전지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힘써왔다. 골든드래곤이 ‘제2의 비야디’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에 ‘황금룡’이 되어 날아오를 수 있다.

현대차가 이탈리아 상용차 업체인 이베코그룹에 제공한 HTWO 연료전지시스템.(사진=현대차)

실제로 광저우에 본사를 둔 수소전기상용차 개발사인 하이봇(Hybot)이 지난해 12월 H49 대형 수소트럭을 공개한 바 있다. 기체수소를 활용해 1,000km 이상을 주행하는 차량으로 올해 하반기부터 소량 납품에 들어가 내년부터 정식 양산에 나설 예정이다.

중국은 가격 우위를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발 빠르게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시장이 어렵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바둑판에 돌을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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