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사이, AI가 전 세계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AI의 활용보다도 전력 수요에 관한 부분이다. 

IEA는 2030년까지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현재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재생에너지의 확대, 송전망 보강, 신규 원전 및 가스발전 확충 등 다양한 해법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당장 AI 데이터센터 옆에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 친환경 설비로 수소연료전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천연가스 사용 확대, 청정수소 과도기

하지만 간과하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현재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연료전지의 연료 대부분은 천연가스라는 점이다. 수소연료전지가 효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고는 하나,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IEA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글로벌 수소산업 내 저탄소·청정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포집 없이 기존 화석연료에서 생산되는 그레이수소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족한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천연가스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과도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에너지 전환 패러다임의 퇴보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AI 데이터센터로 인해 늘어난 전력 수요를 당장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계통 안정화 역할을 하는 가스 또는 원전의 역할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천연가스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원이 재편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5~10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소산업의 역할과 위상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바벨 전략, 밑그림 그리기가 중요한 이유

이런 과도기에는 천연가스와 청정수소를 함께 바라보는 ‘바벨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AI 데이터센터, 대규모 산업단지, 도심형 분산전원 등으로 활용하는 천연가스 기반 수소연료전지를 확충하되, 청정수소를 연료로 하는 수소연료전지 수요를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이를 위한 하드웨어 인프라 기반 구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청정수소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먼 것은 사실이다. 청정수소 기반 발전 비용이 여전히 높고, 국내 청정수소 입찰 시장에서 정부가 요구한 낮은 수준의 가격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저렴한 청정수소 생산을 위해 재생에너지 연계 가격을 낮추고, 전해조 등 기술 자본비용 절감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당장 1~2년 내 청정수소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진 않겠지만, 글로벌 리서치 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에는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그린수소 비용이 지금보다 절반 이상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앞으로 5년이라는 과도기를 어떻게 현명하게 준비해서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식시장의 높은 관심이 실물경제로

수소 관련 정책은 다소 모호하고, 산업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받고, 주식시장에서만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도 동일하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높아진 관심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기업 가치 재평가를 통해 기업들의 체력이 좋아지면서 안정적인 자본지출(CAPEX)을 통해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가 다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주가 상승 덕을 톡톡히 봤다. 설비투자 조달 비용을 낮춰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차전지 업체들도 주식시장의 높은 관심이 다양한 자금 유입으로 이어져 생산능력을 확충할 수 있었다.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바이오산업도 시장의 재평가를 통해 연구개발 자금을 조달하면서 신약 개발, 기술 수출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경제성 있는 청정수소 확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 확대, 과감한 CAPEX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한다.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수소 관련 기업들에 대한 높은 관심은 과거 여타 산업에서 확인한 것처럼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지금은 분명 천연가스와 청정수소를 함께 바라보는 바벨 전략의 시기이다. 바벨의 무게 중심은 시간이 길수록 청정수소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의 인식 개선, 더 구체화된 목표를 제시하는 정책 의지, 산업계의 기술 혁신이 맞물린다면 청정수소 산업 역시 실물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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