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S·CBAM만으로는 부족···“리드 마켓 키워야”
청정수소 수요 공백이 대규모 투자 막아
인프라 확장 위해 녹색 철강·비료 전환 서둘러야

 PwC가 수소유럽협회 의뢰로 펴낸 ‘청정수소 리드 마켓 프레임워크 연구’ 보고서를 정리했다.
PwC가 수소유럽협회 의뢰로 펴낸 ‘청정수소 리드 마켓 프레임워크 연구’ 보고서를 정리했다.

유럽연합(EU)이 청정수소 기반 산업 전환을 앞당기기 위해 ‘수요를 직접 만들어내는 방식’의 정책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가 수소유럽협회(Hydrogen Europe)의 의뢰로 작성한 ‘청정수소 리드 마켓 프레임워크 연구’ 보고서는 철강과 비료 산업을 중심으로 리드 마켓의 적용 가능성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현행 정책만으로는 청정수소 기반 제품이 시장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라며 “산업 전환을 촉진하려면 별도의 수요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U가 주목하는 리드 마켓(Lead Market)은 특정 산업에 청정 제품 사용 비율을 의무화해 초기 수요를 정책적으로 확보하는 제도다.

청정수소 기반 공정은 기존 공정보다 생산비가 높아, 탄소가격이나 제품 가격을 일부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이 전환을 결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책이 확정적 수요를 먼저 제시해 투자 부담을 낮추고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비용 격차로 인한 녹색 전환 지연

보고서는 EU 배출권거래제(EU-ETS)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일정 수준의 비용 격차를 완화하고 있지만, 화석 기반 공정과 청정수소 기반 공정 사이의 차이를 메우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ETS 가격이 톤당 60~80유로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는 녹색 철강(Green Steel) 전환에 필요한 추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녹색 철강이 기존 고로 기반 제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시점이 2040년대 중반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유럽의 철강산업은 연간 1억3,800만 톤의 조강을 생산하고 2억1,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초대형 제조업이다. 약 260만 명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어, 전환이 지연될 경우 산업 구조와 지역 경제 전반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티센크루프 뒤스부르크 제철소에서 슬래브가 주조되고 있다.(사진=thyssenkrupp Steel)
티센크루프 뒤스부르크 제철소에서 슬래브가 주조되고 있다.(사진=thyssenkrupp Steel)

녹색 철강은 기존 고로 공정과 달리, 수소환원제철(H-DRI)이나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 열원을 활용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인 생산 방식이다.

유럽에서는 전기분해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직접환원공정(DRI)에 전기로(EAF)를 결합한 형태가 대표적인 녹색 철강 공정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 수요와 고가의 청정수소가 필요해 생산비가 높아지고, 이는 기존 고로 공정 대비 가격 경쟁력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보고서는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더라도 초기 수요가 확보되지 않으면 생산·운송·저장 인프라 확충도 함께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가격 변화만으로는 기업의 투자 판단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전환 규모를 뒷받침할 수요를 정책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산업 전환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녹색 철강 전환, 수요 의무화가 열쇠

철강 부문에서 PwC가 제안한 가장 실효적인 리드 마켓 모델은 ‘최종 제품 기반 할당제(Product-based Quota)’다. 자동차, 건설, 기계, 가전 등 완제품 제조업체에 일정 비율의 녹색 철강 사용을 의무화하는 구조다.

이는 제철소에만 부담을 집중시키지 않고 가치사슬 전반에 분산해 소비자 가격 충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방식으로 평가됐다. 다만 이 제도를 도입하면 EU 역내 기업만 의무를 지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역차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보고서는 이를 막기 위해 수입품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반대로 수출 제품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다만 라벨링이나 공공조달 같은 방식은 보완 수단에 그칠 뿐, 단독으로는 충분한 규모의 수요를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PwC 분석에 따르면 EU 1차 철강 생산의 10%를 녹색 철강으로 전환할 경우 필요 수소량은 약 40만 톤이며, 전환 비중이 50%에 달하면 약 200만 톤 수준까지 늘어난다. 전환률이 높아질수록 인증서 비용도 상승해 10% 전환 시 톤당 719유로, 50% 전환 시 850유로 수준으로 분석됐다. 전환률이 10%씩 증가할 때마다 약 33유로가 추가되는 구조다.

비료 산업은 별도 설계 필요…수입 변수도 고려해야

비료 산업은 국제 교역 비중이 높고 가치사슬이 복잡해 철강과 같은 최종 제품 중심 의무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대신 식품 기반 부담금과 차액정산계약(CfD)을 결합한 모델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식품 유통업체가 매출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고, 이를 청정 암모니아 생산 비용 보전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최종 식료품 가격 상승 폭을 제한하면서도 산업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OCI 글로벌의 저탄소 비료가 독일 농가에 공급되고 있다.(사진=OCI Global)
OCI 글로벌의 저탄소 비료가 독일 농가에 공급되고 있다.(사진=OCI Global)

농가나 산업 소비자가 청정 비료를 사용할 경우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보너스 모델도 가능하지만, 대상 선정과 행정 절차에서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정책 설계에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향후 청정 암모니아 수입이 증가할 경우 유럽 내 수소 기반 비료 생산이 위축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EU 수소시장 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입 경쟁 변수까지 고려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EU 산업 정책의 중심 축이 공급 확대에서 수요 창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철강과 비료는 유럽 산업 배출의 핵심 분야로, 두 산업에 리드 마켓이 도입될 경우 초기 청정수소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고 수소 생산·저장·운송 인프라 확충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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