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수소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수소전문기업만 해도 2022년 32개에서 2024년 106개로 2년 만에 세 배 이상 증가했고, 관련 기업은 2,637개에 달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수소전문기업 600개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심각한 인력난을 해결해야 한다. 수소산업은 2050년까지 60만 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 수소 분야 산업기술인력은 2만8,840명에 불과하다. 특히 연구개발(R&D) 인력과 제조, 운영관리 등 기술직이 전 분야에 걸쳐 부족한 실정이다.
인력 부족의 원인은 명확하다. 체계적인 인력양성 시스템 미흡, 해외 대비 소규모 투자로 인한 핵심기술 경쟁력 부족, 고급 인력의 대기업 유출로 전체 기업의 92%를 차지하는 중소·벤처기업의 인력 확보 어려움을 들 수 있다.
경력전환 프로그램 도입 시급
해답은 우리 곁에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30년까지 화석연료 부문에서 매년 3,400개, 내연기관차 부문에서 매년 5,2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가 된다.
기존 에너지 산업의 숙련된 인력이 수소산업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답안이 될 수 있다. 독일과 일본 등 선진국이 단순히 신규인력 양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존 산업의 숙련된 인력을 수소산업으로 재배치하는 체계적인 재교육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수소 공급망은 화석연료 공급망을 거의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화력·원자력 발전소 운영 전문가, 터빈·펌프 유지보수 기술자, 고압가스 취급 전문가들의 노하우를 수소산업에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부 지원이 신규인력과 R&D 인력양성에만 치우친 가운데, 일부 교육시스템을 정비하여 기존 에너지 산업의 숙련된 인력을 재교육해서 현장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인력 전환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경력전환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존 에너지 인력의 핵심역량을 수소산업에 맞게 전환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다음 여섯 가지를 제안한다.
①발전소 운영 및 안전관리 → 수소 생산·저장시설 운영 및 안전관리로 전환 ②터빈, 펌프 등 대형 기계장비 유지보수 → 수소액화 플랜트 설비 유지보수 및 관리로 전환 ③고압, 고온 환경에서 공정제어 → 수소충전소 압축 및 저장 공정 관리로 전환 ④연료 공급 및 품질관리 → 수소연료 품질 분석 및 관리로 전환 ⑤복합 설비의 시스템 통합 및 최적화 → 수소 밸류체인 전반의 시스템 관리로 전환 ⑥위험물 취급 및 비상대응 프로토콜 인력 → 수소안전 규제 준수 및 비상대응 체계 구축 인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며칠에 불과한 단기 과정이 아닌, 기초이론-심화기술-현장실습-자격증 취득-재취업이 연계된 통합 프로그램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어 발전소 운전원이나 정비원을 대상으로 수소액화 플랜트 운영과 안전관리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위험물 취급 및 비상대응 프로토콜 인력에는 수소안전 규제 준수 및 비상대응 체계 구축 등의 프로그램을 재교육하는 것이다.
기존 인력 활용한 재배치 전환사업
다행히 고용노동부의 국가인적자원개발 컨소시엄사업, 내일배움카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문인력양성사업 등 기존 사업을 활용할 수 있다. 예산을 따로 잡기보다는 이런 제도를 수소산업 특성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 고령자 고용지원금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동서발전은 퇴직 인력을 중소기업에 파견하고 인건비 50%를 지원해 인력난 해소와 기술 전수를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은 퇴직 간부급 인력을 지역대학 초빙교수로 재취업시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정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재정지원 정보와 기업 구인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재교육 안내, 재정지원, 구직 정보를 아우르는 단일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퇴직(예정)자들이 재교육부터 재취업까지 ‘원스톱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와 관련된 정보가 빠르게 전파·공유되어야 한다.
수소산업은 한국이 4만 불 경제로 도약할 핵심 동력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젊은 인재들이 유입되기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기존 에너지 산업 인력이 다른 산업으로 흩어지거나 은퇴하기 전에 체계적인 재교육을 통해 수소산업의 핵심 인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개인의 재취업 문제가 아니라 AI 산업전환 시대 인구절벽 상황에서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과제이다. 여러 기관이 개별 진행하기보다는 전문기관 한 곳을 주축으로 기존 산업군과 연계한 산학연 협력이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전문기관이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할 때 전문가의 검토와 자문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소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다리가 필요하다. 신규인력 양성과 함께 기존 인력을 교육해서 재배치하는 전환사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두 다리가 모두 튼튼해야 목적지에 안전하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계획이 아니라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의지와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