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산전, 모든 인증 완료하고 수소버스 출시
도요타 85kW급 연료전지 탑재···120kW 모델 추가 예정
전기버스와 동일한 ‘9년 90만km’ 보증 내구성 확보 노력
내년 하반기 11m 버스 출시 계획···시장점유율 25% 목표
업계의 경쟁은 소비자를 이롭게 한다. 하지만 예외인 곳도 있다. 국내 수소전기버스 시장이 여기에 든다.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수소버스 시장을 독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개발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고,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시내버스에 해당하는 11m급 일렉시티 FCEV를 출시했다. 또 2023년에는 고속버스와 전세버스로 활용되는 유니버스 FCEV를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바로 이 시장에 우진산전이 도전장을 냈다. 현대차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9m급 시내버스를 타깃으로 삼았다. 국토부 인증, 환경 인증을 모두 완료하고 출시를 앞둔 시점(10월 중순)에 김천 전기버스공장을 찾았다.
현대차 단일 모델에 새로운 선택지 제공
공장동 앞으로 파란색 버스 한 대가 들어온다. 내연기관의 엔진음은 들리지 않는다. 겉보기엔 전기버스와 다를 게 없다. 우진산전의 9m급 전기버스인 ‘아폴로 900’을 기반으로 한 양산형 ‘아폴로 900 H2’ 모델이다.
EV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김광석 부사장을 따라 버스에 오른다. 공장 앞을 크게 한 바퀴 돌아 주행시험장으로 진입한다. 일상에서 전기버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주행감이 익숙하다. 맨 뒷자리 차창에 붙은 ‘H₂-DRIVE’라는 글귀만 없다면 전기버스로 봐도 무방하다.
김광석 부사장은 “9미터급 중형버스는 운행거리가 긴 농어촌 버스나 도심의 이차선 도로를 다니는 마을버스에 수요가 있다. 인천 지역의 운송사업자를 중심으로 해서 전국으로 수요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날 시승에는 서울에서 100여 대의 시내버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버스의 조준서 대표도 참석했다. 그는 전기버스와 동일한 크기의 실내에 만족을 표했다.
운송사업자나 버스구매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보증 조건이다. 전기버스와 동일하게 ‘9년/90만km 운행 보증’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 이게 핵심이다.
조준서 대표는 “우진산전에서 이 점에 확답을 줬고, 그래서 내년에 나올 11미터급 시내버스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한다.
두산그룹 계열의 하이엑시움모터스, KG그룹이 에디슨모터스를 인수하면서 탄생한 KGM커머셜도 수소버스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가장 빠르게 상업화에 성공한 곳은 우진산전이다. 현대차 단일 모델로 선택지가 없었던 국내 수소시내버스 시장에 우진산전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도요타 연료전지 스택 채택
이번에 인증을 받은 ‘아폴로 900 H2’에는 도요타의 85kW급 연료전지가 들어갔다. 우진산전은 여기에 더해 120kW급 연료전지를 적용한 모델을 별도로 개발 중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환경부가 올해 초 확정한 ‘수소차 보조금 지침’에 따라 구매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연료전지(스택) 출력의 경우 110kW 미만의 저상버스는 1kW당 60만 원의 보조금이 차감된다. 85kW만 해도 시내버스 운행에 별 지장이 없지만, 보조금을 최대한 받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셈이다.
세계적으로 연료전지 시스템을 상용화한 곳은 한국의 현대차, 일본의 도요타, 캐나다의 발라드(Ballard Power Systems), 중국의 리파이어(Refire) 등이 있다. 우진산전은 이런 회사들을 두고 오래 고민했다.
김 부사장은 “수소연료전지 차량 개발에 대한 김영창 우진산전 회장의 의지가 확고했고, 그룹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개발부터 양산까지 빠른 진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스택만 별도로 공급받기를 원했고, 도요타가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합의하면서 일이 빠르게 진척이 됐어요. 전기버스에 들어가는 배터리팩만 해도 LG엔솔 같은 배터리 제조사에서 셀을 받아 패키징 작업은 우리가 따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택만 별도로 받고, BOP에 해당하는 주변장치를 더해서 시스템을 꾸미는 일을 우리가 직접 해야 기술도 확보하면서 생산비용을 낮춰갈 수 있죠.”
그에 반해 현대차는 기술 보안 문제를 들어, 부품이 아닌 패키지 개념으로 연료전지 시스템을 통으로 공급하길 원했다. “연료전지 공급사에 기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연적인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도요타-이스즈, 수소버스 양산에 공동 대응
국내와 달리 일본의 버스업체들은 수소전기버스 개발과 양산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도요타는 올해 6월 말에 이스즈자동차와 차세대 연료전지 노선버스 상용화를 위한 공동개발 계약을 발표했다. 도요타그룹의 상용차 브랜드인 히노와 이스즈의 합작법인인 ‘J-버스’를 통해 도치기현 우쓰노미야 공장에서 내년부터 수소버스를 함께 생산한다.
이스즈는 10월 말에 열린 ‘일본 모빌리티 쇼(Japan Mobility Show) 2025’에 에르가(ERGA) 수소전기버스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차량은 에르가 전기버스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도 수소차 시장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더디다. 양사가 이렇게 손을 잡은 것은 수소버스 배터리팩과 연료전지 부품 표준화를 통해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현대차도 연료전지 시스템 판매를 위해 노력해왔다.
해외 첫 연료전지 생산기지인 ‘HTWO 광저우’에서 생산한 연료전지 시스템을 중국 골든드래곤(Golden Dragon)에서 출시한 폴스타(Polestar) 수소버스에 공급하고 있다. 이 차량은 8m급 폴스타 전기버스를 기반으로 한다.
현대차는 이탈리아 이베코(Iveco) 그룹의 버스 브랜드인 이베코버스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베코버스는 세계 최대 버스 박람회인 ‘버스월드 2023’에서 12m급 ‘E-WAY H2’ 수소버스를 공개했다. 현대차가 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했고, 배터리팩은 이베코그룹 산하 파워트레인 전문 브랜드인 ‘FPT 인더스트리얼’에서 공급했다.
국내에도 이런 협업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9년 10월 국내 중소·중견 버스 제작사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우진산전 등과 협약을 맺은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도요타 스택을 기반으로 한 우진산전의 수소버스 판매가 현실화하면서 현대차 측의 대응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현대차는 10월 30일 울산에서 열린 수소연료전지 신공장 기공식 날 KGM커머셜과 수소버스용 연료전지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김광석 부사장은 “2년 만에 국내 인증을 완료하고 양산에 나선다고 하자 도요타 측도 크게 놀라워하는 분위기”라며 “도요타 스택이 비싸긴 하지만 전기버스와 동일한 ‘9년 90만km 보증’ 조건에 맞는 내구성을 어필해서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면,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알리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11m급 대형버스 출시 예정
국내 수소전기버스 인증은 현대차 기준에 맞춰져 있다. 85kW급 연료전지와 배터리팩의 조합으로도 시내 주행에는 무리가 없지만, 구매보조금을 최대한 받기 위해 고사양의 연료전지를 적용한 버스를 다시 개발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대기업의 보이지 않는 견제와 싸워야 했어요. 까다로운 인증도 그중 하나라 할 수 있죠. 부품 수급에 있어서도 기존 부품 공급업체로부터 공급 불가 또는 과도한 요구에 직면하면서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도 변화가 일고 있고,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오고 있어요.”
다만 2027년부터는 인증시험을 제작사에서 자체 보유한 대형 차대동력계(Dynamometer)로 진행해야 한다. 여기에 드는 시설 구축 비용이 만만치 않다. 김광석 부사장은 “국내 연구기관에 시험 시설을 구축하고 이를 중소·중견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대차는 수소버스 전용부품에 ‘5년/50만km’의 보증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수소버스 스택 보조금 지원 대상에 들면서 실제로는 ‘9년/90만km’의 보증연장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에서 수소버스 한 대당 연료전지 스택 2개까지 정액 보조금을 지원해준 덕이다.
우진산전의 수소버스 시장 진출은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버스 구매를 원하는 운송사업자의 평가도 중요하다. 김천공장의 생산라인을 한 바퀴 둘러본 조준서 서울버스 대표는 “수소버스 시장의 독점이 깨지는 순간 수소버스 대중화가 가능하다”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시내버스 운송사업자 입장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차량 구매 가격, 보증 조건, 정비 용이성, 부품 수급 같은 것들이죠. 수소버스 특성상 충전소 확보가 매우 중요하고, 차량의 운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충전소와 연계해서 충전 효율을 높이고, 운행 스케줄을 연동해서 관리하는 기술이 꼭 필요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우진산전이 잘 대응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진산전은 올해 40대 공급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9m급 버스는 시장이 한정돼 있다. 진짜 전장은 11m급 대형버스 시장에 있다. 우진산전은 내년 하반기에 11m급 시내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우진산전은 연간 150대에서 200대 수준으로 출하량을 늘려 수소버스 시장에서 25%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수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국 버스업계의 국내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경쟁을 피할 순 없다. 이는 소비자의 요구이기도 하다. 현대차와 우진산전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