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전남·부산 강서 등 4곳 분산특구 지정
포항시 ‘청정암모니아 기반 무탄소 발전사업’ 지속 의지
울산시 지정보류로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 고민
기후에너지부 ‘재생에너지 우선 정책’에 방점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중심이 되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중심이 되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산지소(地産地消)’라는 말이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산물이나 식재료를 지역에서 생산한 뒤 지역에서 바로 소비하는 걸 이른다. 

이 말은 분산에너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송전망으로 멀리 보내는 대신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지역에 분산된 ‘지산지소형 에너지 시스템’을 활용하면 송전 비용을 아끼면서 국가 전력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11월 5일 김성환 장관 주재로 제36차 에너지위원회를 열고 제주·전남·부산(강서)·경기(의왕) 등 네 곳을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했다. 특구로 지정되면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간 직접전력거래가 허용되고, 규제 특례를 적용받아 요금제를 차별화할 수 있다. 

포항시 분산특구 사업 지정보류

정부의 1차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 결과를 보면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정 지역을 보면, 풍력과 태양광 보급률 전국 최고 수준인 제주, 해남의 ‘솔라시도’로 대표되는 태양광 단지를 보유한 전남이 이름을 올렸다. 또 산업단지와 항만 지역에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스마트그리드 도입 계획을 밝힌 부산 강서구, 태양광 발전과 ESS,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연결하는 도심형 마이크로그리드 실증사업을 내세운 경기도 의왕시가 선정됐다.

반면에 울산의 미포 국가산단, 충남 서산, 경북 포항 등 세 곳은 이번 심사에서 ‘지정보류’ 결정을 받았다.

포항시도 그중 한 곳이다. 지난 11월 6일 포항의 라한호텔에서 ‘포항 국제수소연료전지 포럼’이 열렸다. 현장에서 만난 포항시 관계자는 “세계 최초로 ‘청정암모니아 기반 무탄소 분산에너지 실증 및 상용화’를 핵심 모델로 한 분산특구를 제안했다”라며 “차기 에너지위원회에서 재심의될 예정인 만큼 부족한 점을 개선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1월 6일 포항 라한호텔에서 열린 ‘포항 국제수소연료전지 포럼’에서 우성훈 아모지 대표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11월 6일 포항 라한호텔에서 열린 ‘포항 국제수소연료전지 포럼’에서 우성훈 아모지 대표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포항시의 공식 입장에도 변함이 없다. 흥해읍 일원의 영일만 산업단지(444만㎡)를 중심으로 암모니아 기반 수소엔진 발전설비를 구축하고 이차전지 기업에 무탄소 전력을 공급해 친환경 산업 인프라를 조성하는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포항시 사업에는 아모지(Amogy), GS건설, HD현대인프라코어가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포럼 현장에는 아모지의 우성훈 대표가 연사로 참여해 큰 주목을 받았다. ‘수소경제의 열쇠, 암모니아’를 주제로 한 강연이 이날 포럼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모지는 암모니아 크래킹 기술을 적용한 ‘암모니아 투 파워시스템(Ammonia-to-Power System)’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농업용 트랙터, 세미트럭에 이어 지난해 암모니아를 연료로 한 크라켄(Kraken)호의 선박 운항 실증에도 성공했다. 암모니아를 개질한 수소를 연료로 연료전지나 수소엔진을 구동하는 방식으로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우성훈 아모지 대표가 포항시 기업인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우성훈 아모지 대표가 포항시 기업인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성재경 기자)

올해 연료전지 포럼 현장을 찾은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갈렸다. 

“청정수소를 활용해 만든 암모니아를 다시 개질해서 수소발전에 활용하는 방안이 탄소 감축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고, “국내 여건상 청정암모니아 수입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공급량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새로운 기술을 검증하고 고도화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아모지의 암모니아 크래킹 장비와 HD현대인프라코어의 수소엔진 기술은 암모니아 추진선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육상에서 발전용으로 테스트하는 선행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의 ‘AI 지원 정책’과 엇박자

울산과 충남의 분산에너지 사업은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발전소에 집중하고 있다. 가스터빈, 스팀터빈으로 생산한 전력을 인근 산업단지에 직접 공급하는 형태로 사업이 기획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선정 보류 이유를 명확히 밝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재생에너지 활용 비중이 낮거나 화석연료 기반의 사업계획을 써낸 지역이 이번 선정에서 제외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포 국가산단에 LNG 발전소를 세워 인근 기업에 전기를 공급하는 안을 낸 울산광역시는 이번 결정에 크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울산GPS가 미포 산단에 구축한 세계 최초 LNG·LPG 겸용 복합화력발전소 조감도.(사진=UGPS)
울산GPS가 미포 산단에 구축한 세계 최초 LNG·LPG 겸용 복합화력발전소 조감도.(사진=UGPS)

이는 지역 기업의 우려를 반영한다. 인공지능(AI) 전환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전력수요가 크게 늘 전망이지만, 청정에너지 사용에 대한 규제와 압박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관련 인프라 확보, 전기요금 인상 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가 미포 산단에 1단계 사업으로 40MW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착공한 마당에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이 보류되면서 전력 수급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결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고, LNG를 기화할 때 나오는 냉열을 데이터센터 냉각에 활용하는 등 보완점을 마련해서 재심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과기정통부의 ‘AI 지원 정책’과 기후에너지부의 ‘재생에너지 우선 정책’이 현장에서 충돌하는 대표 사례일 수 있다. 원전 확대 없이 대규모 AI 전력수요를 탄소중립 관점에서 해소하기에는 힘든 점이 있다.

발전 효율이 높으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지만, 초기 투자비가 높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전력 직거래가 가능한 분산에너지 사업은 한국전력의 경영악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한 개인 판매자에게 직거래를 허용하면 플랫폼의 판매수수료 수익이 그만큼 줄어든다. 한전은 전력을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비유할 수 있다. 

한전의 우량 고객이 빠져나가면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결국 전력 직거래 당사자들만 이득을 보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복잡한 수를 따져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지만, 탄소 감축에 대한 압박이 현실화하면서 정부의 대응도 시급해졌다. ‘2040년 석탄발전 전면 폐지’를 공식화했고, 청정수소발전 경쟁입찰을 취소하는 등 실행 의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기후 변화를 최소화하는 ‘정책의 묘’를 발휘해야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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