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산업 발전 예상보다 더뎌···민간 투자 ‘주저’
보조금 지원만으론 한계, 안정적인 수요처 필요
대체재 없는 운송부문에 ‘이퓨얼’ 활용 가능성
2030년 해운·항공 분야 탄소중립 이행 ‘분수령’

안치훈 현대건설 책임연구원.
안치훈 현대건설 책임연구원.

‘수소경제의 새벽’.

2020년 현대차증권에서 당시 국내 증권가 최초로 발간한 수소산업 전반을 다룬 보고서의 서두에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신비의 섬’의 한 구절이 수록되어 있었다.

“여보게들, 물은 전기에 의해 기본 원소들로 분해된다는 걸 아나? 분해된 원소들은 앞으로 강한 동력원으로 작용될 걸세. 그래서 말인데 수소와 산소로 이뤄진 물은 석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이 될 거야. 물은 미래의 석탄인 셈이지.”

보고서가 나온 당시만 해도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했으나, 필자 눈에는 수소가 미래의 석탄으로 보였고, 전 세계가 직면한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약속된 미래를 수소경제가 열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 전 세계가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 시기의 평균온도에 비해 1.5℃ 이상의 온도 상승폭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전 세계가 방어하고자 했던 지구온난화 최전방 저지선이 뚫린 것이다.

수소산업이 직면한 자생력의 한계

기대와 달리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수소산업의 발전은 아직 더딘 상황이다. 수전해 분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플러그파워의 주가를 보면 2021년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로 상당한 하락을 거듭했다. 올해 6월에는 덴마크의 그린수소시스템스(Green Hydrogen Systems)가 파산하는 등 다수의 글로벌 수전해 기업들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전해 수소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기술 향상과 대량 생산체제를 통한 전해조 제조원가의 저감도 중요하나, 수전해 수소의 원료가 되는 재생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른 생산단가의 획기적인 저감과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 그린수소로 전환하고 인증받을 수 있는 기술 인프라, 제도 마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수전해 수소의 가격 저감보다 먼저 짚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수전해 수소 생산의 근본 목적이다. ‘수소경제의 새벽’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수소는 BESS 등 타 에너지 저장 수단과 비교하여 에너지 장기 저장이 가능해 재생에너지의 태생적 한계인 간헐성과 변동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분산전원, 데이터센터 등과 같이 독립된 전력 공급원을 요구하는 수요처에서 직접 발전연료로 사용되거나 승용차 외 상용차, 연안 선박, 내륙 항공기에 기체수소로 주입하여 연료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나, 이는 재생에너지의 직접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배터리 등의 대체제와 비교하여 수전해 수소가 ‘가격/성능 동등성(Price/Performance Parity)’을 어느 정도 갖췄을 때로 한정된다.

수전해 수소의 경쟁력을 논하기 이전에, 높은 생산원가와 원료가 되는 재생에너지 손실을 감수해서라도 재생에너지를 수소로 변환하여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답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수전해 수소의 대규모 생산과 유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민간에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전해 수소의 높은 생산원가는 관련 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수전해 수소의 높은 생산원가는 관련 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수소 시장 형성을 위한 안정적인 수요처

온실가스 감축이란 명분만으로 수전해 수소의 수요를 창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책 지원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수전해 수소 생산시설과 이를 수요처에 공급하기 위한 배관망, 운송선등 인프라 수명을 20~30년으로 감안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각국의 청정수소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의 수혜 기간이 재정 부담 등으로 인하여 10년 내외의 기간으로 유지되는 점을 고려할 때, 지원금에 의존하는 수전해 수소 공급은 사업 지속성에 한계가 분명하고,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결국은 민간에서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확실한 시장이 필요하며,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전해 수소를 사용해야만 하는 장기 수요처를 갖춰야 한다. 탄소세와 규제를 내세워 탄소중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국제 해운·항공 분야가 현재로서 가장 근접한 예시가 될 수 있다.

탄화수소가 열어가는 수소경제의 태동

해답은 탄화수소이다. 엄밀히 말해 재생가능한 연료(Renewable Fuel)이며, 현재는 바이오매스 기반의 바이오연료가 주류이나, 해운·항공 분야에서 점차 강화될 배출 기준 및 청정연료 의무 사용 비율의 확대는, 2030년을 전후로 수전해 그린수소와 이산화탄소를 합성한 이퓨얼(e-fuel)이 시장에서 점차 지위를 확보하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해운·항공 분야가 탄화수소 형태의 연료에 의존하는 이유는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선종과 용도에 따라 청정메탄올(수소화합물인 암모니아 포함)이나 바이오디젤 등 선택지가 있는 선박에 비해, 대륙 간 장거리 운항을 하는 항공기의 경우 그 연료가 요구하는 에너지밀도와 안전 조건이 훨씬 제한적이므로, 고가의 생산원가에도 불구하고 등유(kerosene)와 동일한 화학조성을 지닌 SAF(지속가능항공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2030년을 전후로 대체재가 없는 운송부문에 이퓨얼(e-fuel)의 수요가 생겨날 수 있다.
2030년을 전후로 대체재가 없는 운송부문에 이퓨얼(e-fuel)의 수요가 생겨날 수 있다.

다만, 해운업계의 경우 지난 10월 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임시회의에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기존 화석연료 기반의 선박 연료와 관련된 산업계의 반대로 MEPC 83차(’25.04)에서 승인되었던 IMO Net-Zero Framework(신조선 대체연료 사용 의무, 온실가스가격제 운영 등)의 채택이 1년간 유예되긴 했으나, 큰 틀에서 선박 연료의 배출량 기준과 탄소세 강화는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항공업계 또한 해운업계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통해 SAF 사용을 장려하고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지속가능항공유협회(Asia Sustainable Aviation Fuel Association)에서 청정연료에 대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해운량의 5%를 청정연료로 대체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400만~500만 톤 수준의 그린수소 생산이 필요하며, 이는 설비용량 기준으로 50GW 이상의 수전해 용량에 해당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수소 리뷰(Global Hydrogen Review) 2025’에서 2030년 전 세계 저탄소 수소 생산량을 3,700만 톤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전 세계 배출량에서 5% 를 차지하는 해운·항공 분야에서 청정수소 수요의 10% 이상을 견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030년, 수소경제 확산의 분수령이 될까?

청정연료 사용 확대를 위한 규제강화는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 비용 상승을 의미한다. 결국 전 지구적인 동의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필자가 이전에 쓴 칼럼 ‘시장 진입한 SAF 다음 목표는 탄소중립’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2030년은 해운·항공 분야 탄소중립 이행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시장참여자는 개인이 속한 시장과 정책 환경에서 각자의 이해에 기반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며, 이에 따른 청정연료 사용 확대로 수전해 그린수소를 원료로 하는 이퓨얼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5년 뒤를 섣불리 예측하기보다는, 격동의 19세기 시칠리아섬을 배경으로 하는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소설 ‘표범’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로 대신하려 한다. 이는 해운·항공 분야, 나아가 탄소중립을 위한 수소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모두 다 바꾸어야 해요.”

※ 외부 필진의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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