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희 하이스케이프 대표이사.
이훈희 하이스케이프 대표이사.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수소법 제정, 수소차 세계 최초 양산 및 보급 1위 등 수소경제 선도국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고질적인 인프라 부족, 높은 그린수소 생산 단가, 수소산업 생태계 전반의 가격경쟁력 확보라는 장벽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단순히 ‘속도’와 ‘규모’의 경쟁만으로는 이 같은 난관을 돌파하기가 어렵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그린수소의 흐름을 탐색하다(Navigating the currents of green hydrogen)’에서 대한민국의 수소 전략에 활용할 통찰을 얻을 수 있다. 

UNDP는 그린수소가 탈탄소화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정책 부재 시 과거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났던 ‘추출 산업 모델(Extractivist Dynamics)’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수소경제가 단순히 기술 개발이나 시장 확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함을 의미한다.

UNDP가 제시한 ‘3P(People, Planet, Prosperity) 프레임워크’를 통해 대한민국 수소경제가 더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성을 고민했으면 한다.

People: ‘수소경제 소외 계층’이 없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

수소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시민의 삶을 개선하고 에너지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수소 활용은 일부 대도시와 산업단지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의 보급 목표에도 불구하고 수소충전소는 여전히 접근성이 낮고, 지방에서는 충전의 불편함과 높은 수소 가격이 수소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그 혜택이 일부 계층이나 지역에 집중될 경우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People)’ 관점에서 수소 인프라 확충 시 지역 주민의 안전 인식 개선 노력을 병행하고, 대규모 생산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연계한 소규모 분산형 수소생산시설을 구축해 에너지 취약 지역의 자립도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는 수소경제의 혜택이 특정 지역이나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돌아가게 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전제 조건이다.

Planet: ‘진짜 그린’을 위한 글로벌 책임

대한민국은 재생에너지 생산 여건상 그린수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해외 수입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에서 ‘지구 행성(Planet)’의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UNDP 보고서는 그린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자원의 남용과 핵심 광물 채굴로 인한 생태계 파괴 위험을 경고하며, 수소 생산국의 환경 및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자국의 청정에너지 확보가 타국의 환경 파괴를 대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은 해외 그린수소 도입 시, 생산 과정에서 피해를 주지 않는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계약 조건에 물 사용 효율, 토지 이용의 투명성, 생태계 보호 등 강력한 ESG 기준을 명시하고 이행을 의무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은 글로벌 환경 책임을 선도하는 청정수소 소비국이 되어야 한다.

Prosperity: 기술 독립과 가격 안정성의 확보

UNDP 보고서에서 ‘번영(Prosperity)’은 단순한 경제 성장이 아닌, 혁신을 통한 지속가능한 번영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은 활용(수소차, 연료전지) 분야에는 강점이 있으나, 수소 생산의 핵심 기술인 수전해 장치와 장거리 운송·저장 기술은 여전히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주요 수소 정책에서도 강조하듯, 청정수소 생산 기술 및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민관의 집중적이고도 일관된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높은 초기 투자 위험과 불안정한 시장 가격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 중인 ‘탄소 차액계약 제도(CCfD; Carbon Contract for Difference)’와 같은 정책 수단을 조기에 도입해 민간 투자를 유인하고, 그린수소의 가격경쟁력 확보 시점을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K-수소경제의 지향점

UNDP 보고서는 수소경제가 ‘규모의 경제’라는 흐름에만 휩쓸릴 것이 아니라, 인간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수소 선도국이 되려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리는 포용성’, ‘글로벌 환경 책임을 다하는 윤리성’, ‘국내 산업의 자립 기반을 다지는 내실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가장 큰’ 수소경제가 아닌 ‘가장 좋은’ 수소경제를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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