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 석산 자락에 있는 대형 디저트 카페의 커다란 격자창으로 북항이 내려다보인다. ‘목포는 항구’란 말을 실감한다.
바로 이곳 북항선착장에서 북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해운조선, 한국메이드, 장보고조선, 남양조선소 같은 중소조선사들이 압해도를 배경으로 부두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목포는 HD현대삼호 같은 대형조선소 외에도 이들 중소조선소가 버티고 있는 ‘조선(造船)의 도시’이다.
“한국메이드에서 배를 건조했어요. 2020년도에 기획해서 2021년도에 시작된 사업입니다.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친환경 기술을 실증하고 제품화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죠. 저기 보이는 흰 배가 K-GTB입니다.”

K-GTB는 ‘Korea Green-ship Test Bed’의 약자로 친환경 선박의 핵심기술 개발과 시험평가, 실증과 운용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건조한 ‘2.2MW급 친환경 대체연료 해상실증선박’을 가리킨다. 총사업비로 486억 원이 들었다.
작년 10월 31일에 진수식이 열렸지만 후속 건조 절차를 거쳐 배가 첫 운항에 나선 건비교적 최근이다. 지역의 중소조선소에서 건조된 총톤수 2,600톤급 첨단 하이브리드 선박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된 연구개발 장비를 탑재했음에도 지난 2월 중순에 진행된 까다로운 시운전 검사와 시험 운항을 한번에 통과했다.
친환경 기술 평가를 위한 ‘테스트베드’ 선박
수리용 선박이 올라 있는 대형 플로팅도크에 흰 배가 바짝 붙어 있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강희진 친환경해양개발연구본부장을 따라 가파른 난간을 오른다.
길이 82.6m, 폭 18m로 가까이에서 보니 제법 크다. 주발전기로 1.68MW(메가와트) LNG 이중연료 엔진 두 기를 갖추고 있으며, 1.1MW 전기모터 두 기로 12.5노트 이상의 속력을 낸다.
“국내에서 개발된 친환경선박 기술이 실험실 단위에 머무르지 않고 해상실증을 거쳐 실용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선박이죠.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친환경선박 전주기 혁신기술 개발사업’의 연구성과물을 실증하는 목적으로도 활용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LNG 연료로 가지만 그린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와 같은 친환경 대체연료나 선박용 배터리, 연료전지로도 추진이 가능해요. 다양한 탈탄소 기술을 실증할 수 있죠.”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가 K-GTB 개발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KRISO는 1973년에 문을 연 조선·해운·기자재 분야의 정부출연연구소로 친환경·고효율 선박 기술개발을 통한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한국메이드 외에도 중소기업인 KTE, 산엔지니어링, 리영에스엔디, 극동선박설계가 이번 과제에 함께 참여하고 있어요. 메가와트급 용량의 혼소엔진, 이차전지, 수소연료전지 등 다양한 친환경 동력원으로 배의 성능과 안전성 등을 동시에 시험하는 세계 최초의 테스트베드 선박이라 할 수 있죠.”
갑판의 덮개를 들어 올리면 빈 격실이 나온다. 이곳에 수소연료전지나 배터리를 넣어 실증을 진행하게 된다. 또 원통 모양의 돛인 로터세일(Rotor Sail)이나 탄소포집장치를 선상에 설치하거나 메탄올, 암모니아 탱크를 추가해 새로운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강희진 본부장을 따라 선실로 향한다. 경사진 계단을 돌아 오르자 조타실이 나온다. 왼쪽 창으로 목포와 신안을 잇는 압해대교의 붉은 아치가 눈에 든다.
“제약사에서 신약을 개발할 때 동물시험, 임상시험을 하듯 배도 똑같습니다. 선박용 배터리나 연료전지, 혼소엔진 같은 신기술을 선박에 탑재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성능과 신뢰성,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해상실증 과정과 운용실적, 즉 트랙레코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죠. 테스트베드 선박 개발에 큰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개별 회사가 나서기는 어려워요. 중소, 중견, 스타트업이 새로운 친환경 대체연료, 탈탄소 기술을 개발하고도 해상실증과 운용실적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된 사업이죠.”
다양한 탈탄소 기술을 동시에 탑재하고, 선박 단위의 탄소배출 효과를 확인해서 신뢰성과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한다.
겉만 봐선 알 수가 없다. K-GTB는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LNG 이중연료 엔진을 주발전기로 쓰면서 실증용 메가와트급 배터리나 연료전지, 무탄소연료 혼소엔진과 추진동력을 분담하거나 전기-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의 국산화 부품, 소재, 장비를 탑재해서 실증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공간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완비하고 있다.

“추진시스템을 포함한 선박 전체를 레고블럭처럼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새로운 친환경 선박 기술과 소재, 부품, 장비를 탑재해 실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죠. 유럽이 우리보다 10년 이상 친환경 기술개발에 먼저 뛰어들었어요. 전기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 기술의 70% 이상을 유럽에서 확보하고 있죠. 쫓아가는 처지에서 그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더 나아가 신기술을 선도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어요.”
국내 조선·해운·기자재 산업 발전과 친환경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전력 기반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 적용
국제항행 선박의 특성상 새로 개발된 친환경 대체연료와 탈탄소 기술을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국제협력과 표준화 과정이 중요하다. K-GTB는 국제협력과 해외 공동연구, 표준화 추진을 위한 기반이자 마중물이 되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한국 주도로 국제표준화기구(ISO)에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이라는 워킹그룹을 구성하는 계기가 됐고, 선박용 친환경 추진시스템의 해상실증, 운용실적 확보를 위한 해상테스트 기술과 방법에 대한 지식재산권 확보도 진행 중이다. 이미 한국과 일본, 미국에는 특허가 등록되어 있다.
또 지난 2023년에는 한국메이드, 선박용 전장품·제어시스템 전문업체인 KTE와 함께 ‘메가와트급 대체연료 적용을 위한 부하분담형 추진 및 전력체계 기술’로 해양수산신기술(NET) 인증도 받았다. 중소조선소로서는 최초의 인증이기도 하다.
“새로운 친환경, 탈탄소 기술을 실제 선박에 적용한 해상실증 데이터를 기술 실용화와 시장 진입에 요구되는 표준화 작업, 법제도 개선에 활용할 수 있어요. 이는 국내 조선·해운·기자재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반이 되죠.”
기계실을 나서 배전실로 향한다. 친환경연료추진연구센터 심형원 책임연구원이 모니터 앞에 앉아 선박 내부 에너지 공급시스템을 확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배는 전기모터로 운항한다. 기관실에 있는 두 기의 LNG 이중연료 엔진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성하면 배전반을 통해 추진전동기 역할을 하는 전기모터로 전력이 공급되는 방식이다.
배전실은 1,100V(볼트)급 가변 DC 그리드 배전시스템, 대체연료 시험용 전력변환장치로 가득 차 있다. 메가와트급 배터리나 연료전지, 무탄소연료 혼소엔진을 탑재해 실증 운항을 하면서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된 친환경 대체연료 온보드 시험장비라 할 수 있다.

“친환경 대체연료, 탈탄소 핵심기술의 해상실증 기법과 절차서 초안 개발이 이번 사업에 포함돼 있어요. 여기에 더해 친환경 대체연료의 특성을 고려한 사고대응시스템도 새로 만들었죠. 선박 충돌이나 화재 시 사고가 어떻게 전개될지, 단계별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그 대응 매뉴얼을 자동으로 시스템화했다고 보면 됩니다. 기존 60억 원이 넘는 외산 시스템 비용을 수억 원 수준으로 크게 낮추면서 더 나은 성능과 운용 편의성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죠.”
이 선박에는 부력보조시스템도 들어가 있다. 선박 충돌이나 좌초로 선박이 침수되는 위험 상황에서 부력보조시스템을 가동하면 이산화탄소를 주입한 튜브가 에어백처럼 부풀어 오른다. 위급 상황에서 침몰 시간을 지연하거나 회피하도록 돕는 안전시스템으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개발해 ISO 국제표준화에 성공한 기술이다.
갑판으로 나가 선미 쪽 기계실을 돌아본다. 1.1MW급 전기모터 두 기가 프로펠러 샤프트와 연결돼 있다. 내연기관이 아니다 보니 설비가 복잡하지 않다. 전기차처럼 내부 공간에 여유가 있다.

배터리, 연료전지 테스트를 위한 공간도 별도로 마련했다. 주갑판의 바닥이 여기선 ‘소프트패치’라 부르는 천장 덮개에 해당한다. 덮개를 열어 대용량의 시스템을 빠르게 설치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
강 본부장은 “올해 준비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는 국내에서 개발된 메가와트급 연료전지나 배터리를 탑재해서 본격적인 실증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대화를 마무리하고 석산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은 강희진 본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배터리나 연료전지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할지도 궁금하다.
LNG 이중연료 발전기를 주발전기로 하되 실증 과정에서 메가와트급 배터리나 연료전지 또는 메탄올이나 암모니아,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기를 탑재할 경우 추진동력을 주발전기와 분담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운영 상황을 반영한 실증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예인선처럼 고출력이 필요한 선박용 배터리의 경우 통상 1시간 동안 내는 출력을 30분 동안 모두 써서 출력의 안정성이나 발열, 배터리 셀의 증기 발생 등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식이다. 친환경 대체연료 실증 선박의 가장 큰 특징은 메가와트급 배터리나 연료전지, 무탄소연료 혼소 내연기관을 포함한 전기-하이브리드 추진시스템이나 재생에너지 추진보조 기술 등을 동시에 탑재해서 실증하고, 선주가 요구하는 성능과 신뢰성, 안전성이 검증된 운용실적을 명확한 데이터로 제시할 수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국내 기술로 개발한 1,100V급 가변 DC 그리드 배전시스템(2.2MW 이상의 용량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이 여기서 큰 역할을 한다. 주발전기를 멈추고 배터리 100%로 운항하는 것도 가능하고, 배터리와 연료전지가 주발전기의 출력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 번의 항해로 다양한 추진동력원의 성능과 신뢰성, 안전성, 에너지 효율 등을 검증할 수 있다.
선박용 연료전지 테스트 시점을 언제로 보고 있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주관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 사업에서 빈센이라는 회사를 중심으로 1.5MW급 배터리-연료전지 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 수소전기차와 유사한 PEMFC(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 시스템으로 내년 이후 실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두산퓨얼셀이나 HD현대중공업은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선박은 항해 중 6자유도 운동을 하며 수직, 수평 가속도를 받는다. 육상에서 주로 발전용으로 활용되던 SOFC를 선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충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30년 이상의 선박 생애주기를 고려할 때 연료전지의 교체주기나 내구성에 대한 고려, 경제성 확보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선박용 연료전지는 고염분·고습도의 해상 환경에서 지속적인 진동과 충격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긴 수명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기준이 높다. 연료전지 스택의 내구성 향상, 운영 최적화 기술,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 국제 표준화, 검·인증 체계 마련 등 많은 부문에서 연구개발과 함께 제도 정비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 기술의 완성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 선박 탑재, 운용을 위한 경제성 확보 시점이 언제가 될지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큰 기술이다.
메탄올, 암모니아 같은 대체연료 실증에서는 어떤 점을 평가하게 되나?
친환경 대체연료 적용은 기존 엔진에 연료를 바꿔 넣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연료별 특성(부식성, 독성, 냄새, 극저온 조건, 에너지밀도)에 맞춰 엔진의 재질과 부품, 장비는 물론 운용절차와 선원 교육까지 바뀌어야 한다. 연료탱크부터 연료공급 파이프라인, 밸브, 연소제어, 후처리 장치, 센서 기술까지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며 선박의 설계 전반에 대한 변경이 요구된다.
새로운 기술을 선박에 적용하기 위한 형식승인 기준과 법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장이 원하는 성능을 갖추면서도 안전성과 신뢰성이 검증된, 환경규제에 대응 가능한 새로운 친환경 선박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기술 확보와 동시에 대체연료의 안전한 활용을 위한 제도개선, 인력양성이 병행되어야 국내 조선·해운·기자재 산업이 미래 탄소중립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인체에 대한 독성이 있는 메탄올, 암모니아와 같은 대체연료의 활용은 선박뿐 아니라 항만의 연료주입(벙커링), 적하역 과정에서 요구되는 안전성 확보, 불완전 연소에 따른 연료 슬립 문제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이는 항만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신뢰성, 안전성 검증에도 활용될 수 있다.
메탄올에 이어 암모니아가 주목받고 있다. 선박 연료로 암모니아를 어떻게 보고 있나?
암모니아는 비교적 안정적인 액체상태(-33℃)로 운송할 수 있고, 이를 다시 개질해 수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암모니아를 통한 수소 활용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향후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운송하면서 연료로도 사용하는 선박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 암모니아는 탄소가 포함되지 않은 무탄소연료지만 독성과 부식성, 안정적인 연소기술 확보, 질소산화물(NOx)이나 아산화질소(N₂O) 처리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 암모니아 특유의 강한 냄새와 독성으로 인해 항만에서 연료 주입이나 적하역 중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나 연소되지 않은 연료가 새는 슬립 현상에 대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주민 수용성을 위한 조치가 진행되어야 한다. 다만, 비료 등의 원료로 지금도 많은 암모니아가 선박으로 운송되어 활용되는 만큼 기술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선박 연료로 수소를 어떻게 평가하나?
수소의 경우 바로 선박으로 운송하거나 주 추진 연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액화수소는 영하 253℃라는 극저온에서 저장되고, 이는 액화천연가스(-162℃)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이다. 극저온을 유지하기 위한 단열기술은 물론 운송 중 증발되는 수소의 처리나 초저온 밸브, 펌프 등의 개발도 필요하고 액화수소의 탱크 내 움직임을 제어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도 요구된다.
운송 과정에서 증발되는 수소를 연료로 활용하는 연료전지나 내연기관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어 관련 기술의 개발과 경제성 확보도 필요하다. 별도의 수소 연료탱크를 구성한다면 기존 화석연료 대비 8배 가까이 커질 수 있어 잠식되는 화물 공간에 대한 선박 설계 관점의 고민도 필요하다.
압축수소의 경우 극저온 액화가 필요 없고 관련 기술이 육상에서 실용화되어 선박 적용을 위한 기술적인 부담은 적지만 350바(bar), 700바가 넘는 고압의 대용량 탱크를 선박에 배치하고 선박이 운용되는 30년 가까이 안전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