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인근 고가도로에 올라타니 부산항이 한눈에 보인다. 이 고가도로를 건너 도착한 곳은 우암부두다.
우암부두는 1996년 준공 후 19년간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운영되다 2015년 4월 일반부두로 전환됐으며 현재는 유휴화 상태다. 이곳에서 현재 ‘부산항 해양산업클러스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부산항 해양산업클러스터 사업은 해양산업분야 기업을 유치해 유휴 항만시설인 우암부두를 새롭게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사업주관기관인 부산항만공사(BPA)는 지난 2022년 도로, 공원, 주차장 등 기반시설을 준공하고 부산시 등과 협업해 3건의 정부지원사업시설을 도입하기로 했다.
3건의 정부지원사업시설 중 하나가 지난해 6월에 개소한 6층 규모의 ‘부산지식산업센터 우암’이다. 그 옆에 또 하나의 정부지원사업시설이 들어섰다.
바로 부산대학교 수소선박기술센터가 구축한 ‘친환경 수소연료선박 R&D 플랫폼’이다.

국내 최초 수소선박 특화 R&D 플랫폼
지난 2015년 극저온소재연구소로 출범한 수소선박기술센터는 2019년부터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센터는 영하 163℃에서 다루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분야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소연료추진선, 액화수소운송선 등 수소선박과 관련된 핵심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인원은 센터장 및 전임교원 10명, 산학/연구교수 8명, 연구원 20명, 전문 행정전담인력 4명 등 총 42명이다.
현재 센터는 △해양 부유쓰레기 수거·처리용 친환경 선박 건조 △수소상용차 액화수소 연료탱크 개발 △선박용 액화수소 화물창 소재 개발 △액화수소운송선 실증선박 건조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친환경 수소연료선박 R&D 플랫폼 구축사업’을 수주했다.
친환경 수소연료선박 R&D 플랫폼은 선박용 수소연료전지 추진시스템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시험설비를 구축하고 시험기법을 개발하는 국내 최초의 수소선박 특화 연구개발 인프라다.
센터는 지난 2022년 1월에 착공해 작년 12월에 플랫폼을 완공했으며 시운전을 거쳐 지난 9월에 개소했다. 총사업비는 국비 260억 원, 시비 88억 원 등 총 405억 원이 투입됐다.
센터는 수소선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수소저장 기능 △저장된 수소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기능 △새로운 형태의 선내 에너지 관리 기능 등을 충족해야 한다고 보고 △수소연료저장 및 공급시스템 성능평가 설비 △MW급 수소연료전지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성능평가 설비 △MW급 전기추진 시스템 성능평가 설비를 갖춰 기능별로 특화했다. 공간적으론 선박 내에서 직・병렬 모듈 연결을 상정한 단일 공간 집적화를 실현했다.

무엇보다 미국 NASA와 견줄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액체수소 저장・운용 소재・부품 성능평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해당 인프라는 영하 253℃ 이하의 극저온 환경에서 액체수소 저장・운용 시스템에 적용되는 소재와 부품의 성능(강도, 내구성, 단열성 등)을 평가하는 곳으로, 강재 통합시험 설비, 단열・복합소재 통합시험 설비, 단열성능 시험설비 등이 구축됐다.
이제명 수소선박기술센터장은 “해당 플랫폼 구축으로 핵심 기자재 개발부터 선박 건조까지 수소선박에 대한 종합 연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라며 “무엇보다 수소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원가경쟁력이 우수해야 한다. 해당 플랫폼을 통해 성능평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수소선박시장을 선점하는 데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했다.
50종 성능평가장비 구축
성능평가장비들을 확인하기 위해 건물 1층에 있는 시험동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설비가 바로 ‘전기추진시스템 성능평가 설비’다. 이 설비는 ‘MW급 부하시험설비’와 ‘HILS(Hardware-in-the-Loop Simulation) 기반 통합 시뮬레이션 설비’로 구성돼 있다.
이 중 MW급 부하시험설비는 연료전지와 ESS에서 발생하는 전력을 선박 추진장치에 공급하기 위한 시험장치다.
이 설비는 △전동기 성능 및 온도 상승, 온도 분포 시험 △복합 환경에서의 추진전동기 부하시험 △네트워크 전원 장치, 배전 계통 전기설비 성능평가 테스트 △선박 운항 데이터 활용 실해역 모사 테스트를 지원한다.

이동하 전임연구원은 “해당 설비엔 2개의 모터가 설치됐다. 이는 실제 운항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며 “프로펠러가 물속에서 회전하면 추진력을 생성하기 위한 저항 하중이 추진시스템에 걸리게 된다. 이러한 저항 하중을 구현하기 위해 추가적인 모터를 구비하여 해상 환경과 동일한 환경에서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설비 맞은편엔 진동에 따른 수소저장용기의 단열성능을 평가하는 장비가 설치됐다.
이 장비는 진동 범위, 가속도 범위에 따라 수소저장용기 내부에 가스증발량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확인해 수소저장용기의 단열성능을 평가한다.
또한 용기 안에 액체질소 또는 액체헬륨을 넣고 용기 주위를 단열 시스템으로 감싸 용기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가스가 발생하는지 확인하는 장비를 비롯해, 헬륨을 냉동시켜 액화수소와 비슷한 온도를 구현한 후 용기 중간부에 단열재를 두고 상부는 따뜻하게, 하부는 차갑게 해서 통과하는 열유속을 계측해 단열성능을 평가하는 장비도 구축됐다.
센터는 헬륨이 비싼 만큼 관련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용된 헬륨을 포집해 액화・정제한 후 저장용기로 소분하는 순환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시험동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니 ‘연료전지 성능평가 시스템’이 보인다. 체임버 형식으로 제작된 이 시스템은 연료전지가 실제 바다 환경에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는지 평가한다.
이동하 전임연구원은 “바다를 항해할 때 연료전지로 유입되는 공기엔 염분기가 있다. 이 염분기는 연료전지 성능과 직결된다”며 “해당 설비는 염화나트륨 등 실제 바다 환경을 재현해 연료전지의 수명을 예측한다든지, 염분 농도 등에 따라 성능을 얼마나 발휘하는지 등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장비 옆엔 ‘6자유도 운동 시험기구’라는 장비가 설치됐다. 이는 파랑에 의한 6자유도 운동에 따른 연료전지의 성능을 평가하는 장비다. 6자유도 운동은 파랑에 의해 받게 되는 운동으로, 3개의 직선운동과 3개의 회전운동으로 구성돼 있다.

이동하 전임연구원은 “선박이 6자유도 운동을 하면 연료전지 안에 있는 부품들이 영향을 받아 출력이 저하될 수 있다”며 “실제 운항 환경에서 발생하는 6자유도 운동을 모사해 연료전지의 성능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시험동에서 사용하는 수소는 건물 뒤편에 있는 수소가스저장소와 연결된 배관을 통해 공급된다. 수소가스저장소엔 12개의 수소가스용기가 하나로 묶인 번들이 여러 개 있다. 번들 개수는 필요한 수소 양에 따라 조절한다.
시험동을 둘러본 후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 도착하니 ‘빅데이터 관제실’이 나온다. 1층에 있는 시험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유리가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제로 운항하는 수소선박의 정보(위치, 상태 등)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시험동에 설치된 설비들을 관찰하고 제어할 수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수소선박기술센터와 삼성중공업이 개발했다.
이동하 전임연구원은 “해당 장비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실시간으로 수소선박의 운항 정보를 확인할 계획”이라며 “또 센터에 있는 수많은 설비를 각각 운영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시스템처럼 운영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빅데이터 관제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선박 시장 선점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산업의 중장기 기술개발 청사진을 담은 ‘K-조선 초격차 비전 2040’을 발표했다.
국내 조선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역량을 갖추고 있으나 선박 엔진, 화물창 등 일부 핵심기술이 부족하고 기자재의 높은 해외의존도 등이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산업부는 조선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미래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6개월간 조선 3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산학연 전문가 100여 명과 협업을 통해 중장기 기술개발 로드맵인 ‘K-조선 초격차 비전 2040’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친환경 △디지털 △스마트 등 3대 분야에서 국내 조선산업이 확보해야 할 100대 코어 기술(351개 세부기술)을 선별했다.
친환경 분야의 경우 2040년까지 탄소배출제로 선박 기술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수소・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추진 기술 및 친환경 혁신 기자재와 원유・가스 등 전통 해양플랜트를 넘어 수소・암모니아 등 미래 연료 생산플랜트 기술 등을 개발한다.
LNG선 이후 먹거리를 책임질 △액화수소운반선 화물창 △대형 전기추진선박 등 원천기술 확보와 해상 실증 등 상용화에도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또 초격차 기술개발을 통해 2040년 국내 조선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10대 플래그십 프로젝트’에 △암모니아 추진선(2032년 완료) △액화수소 운반선(2030년 완료)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2029년 완료) △중대형 전기추진선(2029년 완료) △선박용 탄소포집시스템(2030년 완료) △자율운항 플랫폼(2034년 완료) △LNG・액화수소 화물창 국산화(2030년 완료) 등을 선정했다.
이는 친환경 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제명 수소선박기술센터장은 “암모니아, 메탄올 등 친환경 선박 기술은 단기적으로 확보하기 쉬운 기술이다. 즉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뜻”이라며 “관건은 친환경 선박이 상용화되고 세계시장에 풀리는 시점에 시장을 얼마나 점유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상용화에 진입하지 못했더라도 20년 정도 후에 열릴 친환경 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관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향후 수소선박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 추진선박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환경 수소연료선박 R&D 플랫폼’을 마련한 것이다.
이제명 센터장은 “분명히 앞으로 조선해양 쪽에서 수소시장이 열릴 것이다. 기업들이 조금 더 편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그런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 플랫폼의 역할”이라며 “플랫폼은 기업들의 수요에 맞춰 R&D 환경과 인력을 제공하고 공동 연구 결과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