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소전기차에는 탄소섬유 복합소재 용기인 타입4 저장용기가 들어간다. 고강도 플라스틱 라이너에 탄소섬유를 두껍게 감아 무게가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타입4 저장용기 제작사로는 일진하이솔루스가 있다. 이 외에도 덕산에테르씨티, 롯데케미칼, 동서디앤씨 같은 국내 기업이 타입4 용기 제작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외국계 기업도 있다. 포비아(Forvia) 그룹에 속한 자동차 부품회사인 포레시아(Faurecia), 전북 완주에 공장을 둔 OP모빌리티(옛 플라스틱옴니엄)가 여기에 든다. 두 곳 다 프랑스 기업이다.
“오주산업은 타입4 용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라이너를 생산하는 장비 제작사예요. 폴리아미드 계열의 플라스틱인 나일론을 사출성형한 다음 융착해서 만들죠. 이 설비에 특화된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라이너는 고압의 수소가스와 접촉해 1차 기밀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주산업 연구개발부의 박기영 팀장은 “플라스틱 기술력 하나로 먹고사는 회사”라고 했고, 이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사출성형한 나일론에 융착 공정 적용
오주산업은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형 공장에 연구소를 겸한 공장이 있다. 지난해 12월에 받은 수소전문기업 인증판이 입구에 붙어 있다.
안으로 발을 들이자 납품을 앞둔 ‘히트 웰딩 머신(Heat Welding Machine)’ 한 대가 눈에 든다. 열과 압력을 가해 플라스틱을 붙이는 ‘열융착기’에 해당한다.

“실린더를 잡아서 고정하는 장치인 클램프(clamp), 융착 공정을 위해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는 열판으로 구성돼 있죠. 타입4 용기에 들어가는 나일론 라이너를 가장 고전적인 열융착 방식으로 생산하는 장비라 할 수 있습니다. 50년 넘게 현장에 적용된 기술이라 안정성이 높고 설비 효율도 뛰어나죠.”
수소용기용 타입4 라이너는 양 끝단의 돔, 가운데 몸통에 해당하는 실린더를 사출성형으로 제작한 뒤 융착 공정으로 붙이게 된다. 클램프에 ‘실린더와 실린더’ 또는 ‘돔과 실린더’를 물려 열판으로 끝단을 녹인 다음 양쪽에서 힘을 가해 아귀가 딱 맞도록 붙인다. 이를 ‘열융착’이라 한다.

“플라스틱 성형에 몇 가지 방식이 있어요. 가장 흔한 게 ‘블로우몰딩’이라고 페트병이나 생수통처럼 속이 빈 플라스틱을 금형으로 찍어내는 방식이죠. 금형 안에 플라스틱을 녹여서 넣는 ‘회전성형식’도 자주 쓰는데 효율이 별로 안 좋아요. 금형 제작에 큰돈이 들고, 장비 자체가 커질 수밖에 없죠. 주물을 부어 천천히 돌리면서 모양을 잡기 때문에 제작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에 반해 사출성형 방식은 융착 공정으로 실린더를 붙여 길이를 쉽게 늘릴 수 있다. 버스, 트럭 같은 수소상용차에 들어가는 대형용기 제작에 최적화된 방식이다.
얇은 두께의 원형 라이너를 빈틈없이 완벽하게 접합할 수 있는 진원도와 직진도를 잡아주는 특수 클램프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클램프의 물림 정도를 조절해 외경 100mm부터 700mm까지 대응할 수 있어 자유도가 높다.
열융착기의 구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두 직원이 HDPE(고밀도 폴리에틸렌) 실린더와 돔을 장비에 체결한다. 수소저장용기는 나일론 소재로 제작하지만, 수소탱크를 제외한 고압용기는 HDPE를 사용하고 있다.

수소용기 제작에 가격이 훨씬 비싼 나일론 소재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일론은 HDPE 소재 대비 무게가 절반 정도로 가볍고, 수소가스의 누출을 막는 가스 차단성도 기존 금속 소재 대비 30% 이상, HDPE 소재 대비 50% 이상 높다. 또 잦은 충방전에 따른 급격한 온도 변화에도 내충격성이 뛰어나다.
“수소 원자가 1번으로 기체 중에 가장 작아요. 700바(bar) 이상의 고압에서 플라스틱을 뚫고 나올 정도로 크기가 작죠. 나일론은 가스 차단성이 좋고 소재가 가벼우면서 내구성이 좋아요.
HDPE보다 더 얇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비싸지만 이 소재를 쓰는 거죠.”
나일론은 HDPE보다 가공이 까다롭다. 냉각 속도가 빨라 빠른 작업이 필요하고, 무게 절감을 위해 두께를 줄이면서 단차 없는 정밀 융착 기술이 요구된다. 오주산업은 이 부분에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수소탱크 양산 업체에 열융착기 납품
오주산업을 이끌고 있는 박승호 대표의 방으로 향한다. 그동안 받은 특허증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작년 1월에 받은 두 건의 특허가 눈에 든다. 타입4 고압용기 제조장치의 융착 가압 시스템, 타입4 고압용기 제조장치의 정밀 조절 클램프 시스템. 이 두 가지 특허가 열융착기의 핵심 기술이다.

오주산업은 사출성형을 통한 열융착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목업(mockup)을 먼저 만들어 테스트를 진행했다. 나일론 실린더의 가장자리가 바짓단처럼 불거지도록 사출해 클램프에 딱 걸리도록 했다. 두 개의 실린더 사이에 열판을 넣어 끝단을 녹인 다음 양쪽에서 압력을 가하게 된다.
온도, 압력, 시간 등 융착의 3대 요소에 기반해 최적의 조건을 찾았다.
실린더 융착 부위에 튀어나온 면은 후공정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탄소섬유로 표면을 감을 때 틈이 안 생긴다.

“레이저나 원적외선(IR)을 활용한 융착 방식도 있지만, 라이너 크기별로 설비를 다시 맞춰야 해서 번거롭고 별도의 비용이 들죠. 열융착이 고전적인 방식이지만 그만큼 안정적이고 효율도 좋습니다. 융착기 두 대를 나란히 놓으면 양쪽에서 동시에 붙이는 작업도 가능해요. 직경 700mm의 대형 라이너를 동시에 융착하는 기술을 적용한 장비를 만든 곳은 오주산업이 유일할 겁니다.”
나일론 소재를 사출해서 열로 융착하는 기술을 보유한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박승호 대표는 “오주산업의 열융착기와 동일한 사양, 성능을 가진 장비를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했다는 말을 한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들었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플라스틱은 비파괴검사란 게 없어요. 그래서 온도, 시간, 압력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정확히 측정해서 융착 공정이 제대로 진행됐다는 걸 확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장비는 이 데이터가 정확한지 확인해서 저장하는 기능이 있어요. 라이너는 고압의 수소와 직접 닿기 때문에 열융착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죠. 기본적으로 융착 부위가 더 두껍고 튼튼합니다. 열융착기 외에도 돔 조립기, 비드제거기, 제원측정기, 리크 테스트 장비 등 부대설비를 함께 제공하고 있죠.”
오주산업은 라이너에 탄소섬유를 감아내는 필라멘트 와인딩 장비를 옥천공장에 설치해 시운전을 앞두고 있다. 이 기술을 확보할 경우 타입4 탱크 제조라인 자동화 기술을 모두 확보하게 된다.

“나일론도 HDPE처럼 압출 공정으로 쭉쭉 뽑아낼 수 있으면 가장 좋죠. 지금은 압출 기술 적용이 어려워서 붕어빵을 찍어내듯 사출 공정을 적용하고 있지만, 생산효율을 더 높이기 위해 압출 기술에 대한 연구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CNG(압축천연가스)용 타입4 탱크는 HDPE 소재의 라이너를 쓴다. 오주산업은 옥천공장에 HDPE 소재를 압출하는 실린더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플라스틱 가공·제작 기술에 특화
오주산업은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에 설립됐다. 독일 등 유럽에서 수입해 판매하던 플라스틱 가공설비의 국산화를 목표로 창업했다.
타입4 탱크 제작 기술개발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999년 전북대 벤처기업으로 설립된 한국복합재료연구소(KCR)와 관련이 있다.
“2000년대 초부터 KCR의 고압가스용 타입4 용기 내부 라이너 융착기 개발에 참여했어요. 처음에는 수소가 아니라 CNG용 타입4 용기 개발을 목표로 했죠. 유럽에서 장비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기간을 합쳐 30년 넘게 플라스틱 설비를 다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분야 기술력만큼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죠.”

KCR은 과학기술부 프론티어사업의 지원을 받아 2005년에 350바 타입4 수소저장용기 개발에 성공했다. KCR은 2011년 일진그룹에 인수되어 일진복합소재로 거듭났고, 2021년 4월에 일진하이솔루스로 사명이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주산업은 플라스틱 가공, 제작 기술에 특화된 회사다. PE, PP, PVDF 같은 플라스틱 배관 자재뿐 아니라 경관용 플라스틱의 제조, 설치, 시공 분야에 많은 경험이 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에 들어가는 FEP(Flexible Electric Pipe) 지중전선관, 즉 원형파형관을 자체 개발해 납품하고 있다. 기존 나선형 파형관을 링(Ring) 타입으로 변환해 두께를 얇게 하면서 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또 지역난방공사에서 쓰는 이중보온관용 외피를 생산해 벤더사에 납품하고 있다.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주제관에 설치된 키네틱 파사드(Kinetic Facade), 즉 상어 아가미 모양을 형상화한 움직이는 플라스틱 전면벽을 제작하기도 했다.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GFRP)으로 98개의 라멜라를 제작해 현대건설에 납품했다.
여름철에는 파사드를 닫아 차양막 역할을 하고, 겨울철에는 파사드를 열어 일사량을 늘리는 친환경 건축물로 오스트리아의 건축그룹인 소마(SOMA)가 설계에 참여했다.
오주산업은 지난 2022년 충북도 예비수소전문기업에 처음 지정됐다. 지원사업, 컨설팅을 통해 연구비를 늘려 특허 확보에 힘쓰면서 매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3년 만에 수소전문기업(저장·운송)에 지정되는 큰 성과를 냈다.
“타입4 탱크는 수소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운송용 450바 용기로도 쓰임이 있어요. 또 드론, 선박, 트램, UAM(도심항공교통) 등 가벼운 용기를 원하는 수소모빌리티 부문에 꼭 필요하죠. 시장은 분명히 살아 있고, 수요가 폭발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소모빌리티 시장이 살아나야 수소저장용기 제조사의 설비 수요도 덩달아 늘어난다. 박승호 대표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오주산업은 타입4 고압가스용기 제조설비의 라인 자동화, 열융착기 외 각종 부대설비의 기술 고도화를 올해 목표로 삼고 있다.
그동안 수소전기차 시장이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현대차만 해도 3세대 수소연료전지 차량의 양산을 훗날로 미뤘고, 올해 드디어 2.5세대 연료전지를 장착한 넥쏘 후속 모델이 근 7년 만에 시장에 출시된다.
좋은 제품이 나오면 시장의 분위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 믿음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