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형 예혼합버너가 화염을 뿜고 있는 모습을 확대했다.(사진=이노엔)
원통형 예혼합버너가 화염을 뿜고 있는 모습을 확대했다.(사진=이노엔)

인천 남동산단에 있는 3층 건물 입구에 도착하니 입주기업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은 건물 3층에 ‘이노엔’이 있다고 안내한다. 

이노엔은 보일러, 가열기, 가스기기, 철강·메탈·화학공정 등에 들어가는 고효율 열에너지 기기인 버너, 열교환기, 반응기를 개발·생산하는 기업으로, 지난 2000년 5월에 설립됐다. 이곳은 이노엔의 본사이자 연구실이며 제품생산공장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다. 

본사 회의실에 앉아 둘러보니 여러 금속제품이 보인다. 이노엔이 제조한 버너와 열교환기다. 

정영식 대표는 “우리가 납품하는 제품들은 가정용 보일러뿐만 아니라 선박엔진, 호텔이나 급식소에서 사용하는 가스식 조리기구, 커피를 볶는 로스팅 기계 등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곳엔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원통형 금속제품을 가리킨다. 이 시제품은 송풍기에 의해 흡입되는 공기를 연료에 미리 혼합해 연소시키는 구조를 가진 예혼합버너로, 과잉 공기비가 낮아 열효율이 높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적다.

정 대표는 “이 제품은 우리가 국내 최초로 유럽의 기술을 국산화한 것으로,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30마이크론가량의 금속섬유 수십가닥을 엮은 후 풀어지지 않는 구조로 짠 매트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며 “표면에 아주 짧은 화염들이 균일하게 형성된다. 이로 인해 전체 연소실이 줄어들어 시스템을 컴팩트하게 만들 수 있고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적다”고 설명한다.

예혼합버너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그 옆에 있는 한 금속제품을 가리킨다. 제품 옆면에 ‘H2 Fuelcell Burner’라는 라벨이 붙어있다. 이노엔의 주력제품 중 하나인 건물용 연료전지 개질기 버너인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다.

이노엔은 2002년부터 수소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등에 들어가는 개질기에 포함되는 버너, 점화장치, 수소화염감지기, 버너주변기기도 납품하고 있다.

정 대표는 “창업 2년 뒤인 2002년에 아주 작은 연료전지 회사가 세워졌다. 그 회사가 에스퓨얼셀의 전신인 세티다. 그때부터 에스퓨얼셀에 건물용 연료전지 개질기 버너를 납품하고 있다. 이 버너는 촉매온도를 800℃까지 빠르게 올려주고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라며 “해당 버너는 다른 국내 연료전지업체에도 납품하고 있다. 그렇게 버너를 납품한 지 23년 정도 됐으며 누적 생산대수는 2,500대 이상”이라고 설명한다.

건물용 연료전지 개질기에 들어가는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
건물용 연료전지 개질기에 들어가는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

수소버너 원천기술 확보
이노엔을 알게 된 것은 신기술 인증(이하 NET) 때문이다. NET는 신기술의 상용화 촉진 및 신뢰성 제고로 초기시장 진출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신기술이나 기존 기술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경우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혁신성과 우수성을 인증하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11일 산업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모듈식 슬릿 수소 화염 버너 이용저탄소 저녹스 연소기술’에 NET를 부여했다. 수소연소기가 NET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기술은 △수소의 역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염공(불구멍)에서 연료와 공기를 고속으로 분사하는 연소기술 △수소화염의 고온화 및 녹스 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염냉각기술 △열용량 확장 시 별도의 설계 변경이 필요 없는 모듈식 확장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시간당 15만kcal의 열용량을 발휘했으며 질소산화물은 선진국 기술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해당 기술이 △40ppm 미만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으로 국내외 대기환경규제 대응 가능 △부생수소와 화석연료가 혼용되는 곳에 적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연소 기술력 확보 △무탄소 연료 100% 전환에도 선제 대응이 가능한 기술력 확보 △수요처의 연소실 형상에 맞춘 가변·모듈식 용량 증대 기술로 화석연료 연소기의 교체보급 가능 등 여러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보고 NET를 부여했다.

해당 기술 개발을 주관한 곳이 바로 이노엔이다. 정영식 대표는 “수소버너에는 각별히 설계된 홀들이 있다. 홀을 지나면서 연료와 공기가 만나면 매우 작은 화염들이 여러 개 발생한다. 화염들은 균일한 모양으로 표면을 덮는다. 이것이 핵심 기술이다. 이 기술을 통해 효율이 높이고 역화 현상과 질소산화물 배출을 막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환경부의 저녹스 제품 인증 기준인 40ppm 이하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최첨단 생산기술을 활용해 화염 안정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수소의 화염 전파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그래서 화염이 불안정하다. 이로 인해 수소가 연소될 때 청각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소음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화염 안정화 기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노엔은 이렇게 확보한 수소버너 원천기술을 활용해 여러 과제를 참여하고 있다.

이노엔이 생산한 제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소화염 감지기, 점화 트랜스포머,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
이노엔이 생산한 제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소화염 감지기, 점화 트랜스포머,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

여러 국책과제 참여
먼저 환경부에서 지원하는 ‘평면상 화염 기반 모듈형 1.2Gcal/hr급 수소연소기 국산화 기술 개발 사업’은 수소혼소 또는 수소전소가 가능한 평면상 화염 기반 모듈형 수소연소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연소기엔 △하이브리드 냉각 지연반응형 연소 △습식 배기가스 재순환 △스팀분사 △보일러‧급수예열기 효율 향상 △연소기 헤드‧부품 국산화및 블록 모듈화가 적용된다.

특히 평면형 하이브리드 연소기술이 적용된다. 이 기술은 서로 다른 연소기법을 결합해 평면 형태의 여러 화염을 형성하고 수소 화염의 평균 온도를 낮게 유지한다. 또 열량 증가에 따라 연소기 용량을 쉽게 확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와 함께 질소산화물 저감 기술과 역화 현상 제어기술도 적용된다.

이를 통해 0.8ton/hr급 증기보일러와 1.5ton/hr급 증기보일러에 각각 적용할 수 있는 0.6Gcal/hr 수소연소기와 1.2Gcal/hr 수소연소기 시제품을 제작한다. 시제품은 실제 현장에 설치해 1,000시간 이상 운전해 국산화를 이룬다.

이 과제는 이노엔이 주관하며 대열보일러, 인하대학교, 센서나인, 고등기술연구원,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참여한다. 수행기간은 2023년 4월부터 2027년 12월까지다.

이들은 방사청과 산업부가 지원하는 ‘150만kcal/hr급 모듈형 수소 전소 난방용 온수보일러 시스템 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23년부터 민군기술개발사업으로 추진되는 이 과제는 병영생활관, 공공건물, 상업설비 등에 있는 기존 경유·가스 보일러를 대체할 수 있는 50만kcal/hr급 수소전소 온수보일러와 150만kcal/hr급 모듈형 수소전소 난방용 온수보일러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노엔은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40ppm 이하인 고효율 수소전소 연소기를 개발한다. 해당 연소기엔 고온 수소화염과 부하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역화방지를 위한 연료‧공기 공급 유동 및 연소반응 구조, 전체 시스템 운용과 연계한 수소연소 제어기술이 적용된다. 

이와 함께 이노엔은 ‘25kW급 건물용 연료전지(PEMFC) 시스템 개발 및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산업부가 주관하는 2020년 상반기 에너지기술개발사업 중 하나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건물용 연료전지 보급 목표(2040년 2.1GW) 달성을 위해 마련됐다. 에스퓨얼셀이 사업을 주관하며 이노엔은 개질기용 버너를 개발하고 있다.

인천 청라 창업벤처녹색융합클러스터에 있는 수소버너 및 수소보일러 시험시설.
인천 청라 창업벤처녹색융합클러스터에 있는 수소버너 및 수소보일러 시험시설.

테스트베드 
이노엔이 보유한 기술과 수행 중인 과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정영식 대표와 차를 타고 인천 청라로 이동한다. 4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창업벤처녹색융합클러스터다.

창업벤처녹색융합클러스터는 친환경차, 신재생에너지, 탄소 포집·활용·저장 등 환경오염을 줄이고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을 높여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산업인 녹색산업분야 스타트업을 양성하기 위해 지난 2016년에 문을 열었다.

규모는 축구장 25개 면적과 비슷하며 연구사무실, 실험실, 파일럿 테스트동, 시제품 제작실 등을 갖추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고 있다.

이노엔과 대열보일러는 이곳에 수소버너 및 수소보일러 시험시설을 구축했다. 

이 시설은 ‘평면상 화염 기반 모듈형 1.2Gcal/hr급 수소연소기 국산화 기술개발’의 일환으로 지어졌으며 지난해 7월에 완공됐다. 총면적은 531.38㎡(약 160평)이다.

정영식 대표가 먼저 소개한 곳은 가스저장소다. 이곳엔 시험할 때 사용할 수소와 메탄을 담은 용기들이 있다. 수소와 메탄은 시험실과 연결된 각각의 전용 배관을 통해 공급되며 상황에 따라 수소와 메탄을 섞을 수 있다.

향후 암모니아를 사용할 것을 대비해 암모니아 전용 배관도 설치했다. 이 때문에 가스저장소와 시험실을 연결하는 배관은 총 3개다. 가스저장소 옆엔 50톤급 물탱크 1기와 30톤급 물탱크 1기가 설치됐다. 

한 탱크는 시험할 때 사용할 물을 저장·공급하는 역할을, 다른 탱크는 사용된 물을 환수·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물탱크 맞은편에 있는 시험실 안으로 들어간다. 시험실은 2층 규모로 조성됐다. 1층은 시험장비를 가동하는 시험실이며 2층은 사무실이다.

시험실은 2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첫 번째 공간에선 ‘150만kcal/hr급 모듈형 수소전소 난방용 온수보일러 시스템 개발’을 통해 제작한 시제품을 테스트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 장비는 설치되지 않았다. 정영식 대표는 “보고서 작성이 끝나는 대로 장비를 설치해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시험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두 번째 공간이 나온다.

이 공간에선 ‘평면상 화염 기반 모듈형 1.2Gcal/hr급 수소연소기 국산화 기술개발’을 통해 제작한 수소버너 시제품을 테스트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수소버너 시제품, 공기압축기 등 테스트에 필요한 장비가 설치됐다. 현재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동계측장치 설치 작업과 장비 재배치 작업이 완료되는 2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정영식 이노엔 대표가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를 설명하고 있다.
정영식 이노엔 대표가 ‘수소추출기용 NG/수소 하이브리드 버너’를 설명하고 있다.

작지만 뜨겁다
산업부는 올해 산업기술혁신사업을 통해 △석유화학 무탄소연료 기반 NCC공정 기술개발 사업 △제조공정 미활용 수소혼합가스 기반 청정연소 기술개발 사업 △철강분야 탄소중립을 위한 무탄소연료 전환 및 에너지효율 향상 기술개발 사업 등 총 3개의 무탄소연료 활용 기술개발 사업에 130억 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2050년 국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철강, 화학, 시멘트 등 탄소집약적 산업의 탈탄소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화석연료를 수소, 암모니아 등 무탄소연료로 대체하고자 관련 기술개발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탄소집약적 산업뿐만 아니라 열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에서도 화석연료 대신 무탄소연료를 사용하려 한다. 그래서 수소버너 원천기술을 확보한 이노엔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노엔은 과제를 통해 확보한 기술로 수소버너를 빠르게 상용화해 철강, 발전 등 무탄소연료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분야와 암모니아 크래킹 공정용 반응기 등 수소버너를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공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노엔 버너로 볶은 원두로 내린 커피가 일상에 활력을 주듯 이노엔이라는 작은 회사가 곧 도래할 수소연소시대의 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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