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나시현 북부에 있는 산토리 하쿠슈 증류소의 구리증류기.(사진=산토리 홀딩스)
일본 야마나시현 북부에 있는 산토리 하쿠슈 증류소의 구리증류기.(사진=산토리 홀딩스)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브랜드인 산토리가 지난 6월 11일 그룹의 중장기 수소 활용 계획인 ‘그린수소 비전’을 발표했다. 

산토리 홀딩스는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생산한 그린수소 사업에 주목해왔다. 일본 야마나시현의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수자원에서 얻은 전기로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하쿠슈 증류소의 위스키 생산 공정에 열원으로 활용하고 지역사회에도 유통한다는 계획이다.

야마나시현의 미나미알프스 자락에 있는 산토리 하쿠슈 증류소.(사진=산토리 홀딩스)

위스키 주정 제조에 그린수소 활용

공교롭게도 이번 발표는 영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 거부되면서 스코틀랜드에서 추진 중이던 수소공장 건설 계획이 무산된 직후에 나왔다.

산토리는 일본의 무역회사인 마루베니와 함께 ‘HyClyde Auchentoshan’ 사업을 추진해왔다. 스코틀랜드 달뮤어에 있는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증류소 중 한 곳인 오켄토션 증류소에 수소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냈지만, 수소 할당 라운드2(HAR2)에서 탈락하면서 계획을 백지화했다. 

산토리는 스코틀랜드 증류소의 수소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과는 별개로 일본 내 그린수소 사업을 일정대로 추진한다.

‘산토리 그린수소 비전’ 발표는 올해 가동 예정인 16MW급 ‘야마나시 모델 P2G(Power to Gas) 시스템’ 출시에 앞서 이뤄졌으며, ‘물에서 태어나 물로 돌아간다’는 그린수소의 비전을 담고 있다.

올해 1단계 사업으로 하쿠슈 정수장의 가열 살균 공정에 수소보일러를 가동한다. 또 하쿠슈 증류소의 위스키 주정 제조에 그린수소를 연료로 한 직화 증류법을 적용한다. 연료를 메탄(천연가스)에서 수소로 전환해 탄소 배출 없이 최고의 ‘술맛’을 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수소보일러를 가동하게 될 산토리 하쿠슈 정수장.(사진=산토리 홀딩스)
수소보일러를 가동하게 될 산토리 하쿠슈 정수장.(사진=산토리 홀딩스)

산토리는 교토에 있는 야마자키 증류소에 파일럿 구리증류기를 설치하고 수소 전소 방식으로 직화 증류시험을 완료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테스트 성공 소식을 알렸으며, 기존 천연가스 연소 방식과 비교해 맛과 품질이 동일한 것으로 나왔다. 

산토리는 2027년부터 추진되는 2단계 사업으로 토모에상회와 손을 잡고 야마나시현과 도쿄도 일대에 그린수소를 유통한다. 수소의 생산, 활용, 공급 등 가치사슬 전반에 그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전략으로 일본의 탄소중립 정책과도 닿아 있다.

산토리 홀딩스의 후지와라 마사아키 CSO(최고지속가능책임자)는 “수소는 2050 탄소중립 달성에 필수 요소”라며 “자연과 물이 주는 선물로 지속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 수소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지타, 다카사고로 수소 사업 확대

산토리의 야마나시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건 4년 전이다. 2021년 8월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한 수전해 수소생산’ 프로젝트가 일본 신에너지·산업기술총합개발기구(NEDO)의 지원사업으로 처음 선정이 됐다. 

2022년 9월 야마나시현, 도레이공업 등과 협약을 맺으며 사업이 본격화됐으며, 현재 도레이공업, 도쿄전력, 카나데비아, 지멘스에너지, 미우라, 니치콘, 야마나시 수소 등 9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산토리의 일본 내 수소 사업은 야마나시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토리는 2023년 3월부터 주부수소활용연구회에 참여하면서 ‘중부 일본 수소·암모니아 협회(이하 협회)’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협회에는 에너지, 자동차, 철강, 금융 분야를 대표하는 민간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주부(중부 일본) 지역의 청정암모니아·수소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협회는 일본 최대 화력발전사인 제라(JERA)의 헤키난발전소 인근에 대규모 청정암모니아 저장·공급 허브를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치현과 미에현에 수소·암모니아 공급 거점을 구축하려 한다. 

산토리는 지타 증류소에 청정수소 열원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그림=산토리 홀딩스)
산토리는 지타 증류소에 청정수소 열원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그림=산토리 홀딩스)

특히 산토리 지타 증류소가 있는 아이치현 지타시는 폐플라스틱으로 생산한 수소 생산·공급 거점이자 암모니아 저장·탈수소화·공급 허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산토리는 협회와 손을 잡고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통해 지타 증류소에 수소 열원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효고현에 있는 산토리 다카사고 공장도 수소 사용을 검토해 2030년대 초까지 수소를 도입할 계획이다.

환경, 브랜드 가치 제고

산토리는 1899년 일본 오사카에서 가족 경영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4만 명이 훌쩍 넘는 직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위스키인 야마자키, 히비키를 비롯해 미국의 짐빔, 메이커스 마크 같은 버번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블렌디드 위스키인 히비키만 해도 세 곳의 증류소, 즉 야마자키, 하쿠슈, 지타 증류소에서 생산한 주정을 혼합해서 만든다. 주정 숙성에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린수소로 만든 위스키를 맛보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블렌디드 위스키인 산토리 히비키.(사진=산토리 홀딩스)
일본을 대표하는 블렌디드 위스키인 산토리 히비키.(사진=산토리 홀딩스)

비록 정부 지원사업으로 첫발을 내디뎠지만, 위스키 제조사가 ‘그린수소 비전’을 발표하고 수소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은 고무적이다. 증류 과정에 직화 방식을 적용하면 수소 화염으로 온도가 1,000°C까지 오르면서 숙성 후 위스키의 품질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린수소 전환은 환경뿐 아니라 위스키 브랜드의 가치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기반으로 한 수전해 인프라 확보에 큰 비용과 시간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명주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도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