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증류소들이 위스키 생산 공정에 그린수소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주정 제조에 그린수소를 활용하는 2개의 대표적인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빔산토리의 블렌디드 버번 위스키인 짐빔 화이트 라벨.
빔산토리의 블렌디드 버번 위스키인 짐빔 화이트 라벨.

 요즘 MZ세대는 짐빔 화이트나 산토리 가쿠빈을 토닉워터에 섞어 마시는 하이볼에 친숙하다. 레몬즙을 넣으면 술맛도 덜하고 맥주처럼 도수가 낮아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하이볼은 ‘짐빔파 vs 산토리파’로 기호가 나뉘지만, 사실 짐빔과 산토리는 같은 회사다. 산토리 홀딩스가 지난 2013년에 빔을 약 16조 원에 인수하면서 빔산토리(Beam Suntory)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바로 이 빔산토리의 스코틀랜드 증류소가 ‘위스크하이(WhiskHy)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제조 지역 지도.(그림=Philodex). 그린수소 실증사업은 하이랜드(The Highlands) 지역 증류소에서 이뤄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제조 지역 지도.(그림=Philodex). 그린수소 실증사업은 하이랜드(The Highlands) 지역 증류소에서 이뤄지고 있다.

빔산토리의 ‘위스크하이’ 프로젝트

위스크하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곳은 영국에 본사를 둔 청정에너지 혁신 기업 슈퍼크리티컬 솔루션(SuperCritical Solutions)이다. 분리막과 압축기가 필요 없는 고압 전해조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으로, 액체와 기체의 특성이 혼재하는 400℃ 초임계 상태의 물을 전기분해해 그린수소를 생산한다.

슈퍼크리티컬은 스코티시파워(Scottish Power)와 함께 초임계 전해조로 생산한 압축수소(200bar)를 공급해 암모니아 생산비용을 21%까지 낮추는 실증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위스크하이 프로젝트의 경우 빔산토리가 소유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5개 증류소 중 2곳과 관련이 있다. 위스크하이 1단계는 하이랜드에 속한 애버딘셔주 헌틀리에 있는 빔산토리의 아드모어(Ardmore) 증류소 현장에서 폐수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타당성 조사를 진행했다. 이는 수소용 전해조가 필요로 하는 담수의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스카치위스키는 2회 증류한 주정을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보관하게 된다.
스카치위스키는 2회 증류한 주정을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보관하게 된다.

영국 기업통상부로부터 294만 파운드(약 49억 원)의 자금을 확보해서 벌인 2단계 사업에서 전해조 규모를 키워 빔산토리의 글렌 가리오치(Glen Garioch) 증류소에서 처음 계획한 산업용 수소 시험을 진행했다. ‘글렌 기어리’라고도 불리는 글렌 가리오치 증류소는 아드모어 증류소에서 동쪽으로 약 18마일 거리에 있다.

빔산토리의 환경·지속가능성 매니저인 앨리스테어 레켄비(Alistair Leckenby)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간접가열 방식의 경우 증기 온도가 130°C로 매우 낮아 전통 방식의 스피릿(주정)이 가진 풍미를 내기 어렵다”며 “증류 과정에 수소를 연료로 화염을 직접 분사해 온도를 최대 1,000°C까지 올리는 초임계 기술을 적용하면 숙성 후 위스키 품질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수소는 메탄(천연가스)을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빔산토리는 수소의 연소 온도가 더 높아 위스키에 풍미를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단계 실증은 올해 1분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최소 3년에서 10년의 숙성 시간이 필요한 만큼 결과물을 만나기까지 인내가 필요하다.

아르비키 증류소의 그린수소 프로젝트

두 번째로 살펴볼 그린수소 프로젝트는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 애버딘 남쪽에 있는 아르비키(Arbikie) 증류소에서 진행됐다. 아르비키는 지난 2014년에 스털링 형제가 세운 증류소로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스카치위스키, 진, 보드카를 생산하며 보리, 호밀, 완두, 귀리 등의 재료를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다.

아르비키는 대량의 질소비료를 쓰는 밀 대신 완두콩을 원료로 한 ‘나다르(Nàdar)’ 진을 출시한 바 있다. 나다르는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자연(Nature)’을 뜻한다. 부산물인 완두콩 껍질은 동물 사료로 쓰는 등 700밀리리터 한 병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1.54kg 감축했다.

아리비키 증류소의 구리 증류기.(사진=Arbikie 홈페이지)

아르비키 증류소는 스코틀랜드 회사인 로코젠(Locogen), 로건에너지(Logan Energy)가 주도하는 그린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린 증류소 대회(Green Distilleries Competition)’에서 우승해 300만 파운드(약 50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아 추진된 사업이다.

1MW급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여기서 나온 전력으로 전해조를 돌려 수소를 생산한다. 이 수소를 탱크에 저장해두고 증류기의 수소보일러를 작동시키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로써 아르비키는 양조 과정에 그린수소를 사용하는 세계 최초의 증류소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아르비키에서 생산되는 알코올 1리터당 4kg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그린수소 전환에 50억 원이라는 큰 자금이 들었지만, 스카치위스키협회(SWA)는 ‘204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장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사례를 다른 증류소나 산업에 적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있다.

아르비키는 18년산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위스키가 시장에 나오려면 저장고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아르비키는 지난 2022년 5월에 양조장 체험시설을 열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철학을 전하고 있다. 양조장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아르비키’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시장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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