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하면 프랑스 샹파뉴 지역을 떠올리듯 스카치위스키, 하면 스코틀랜드를 떠올린다. 스코틀랜드는 오현규, 양현준 선수가 뛰고 있는 셀틱 FC,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의 나라이기도 하다. 바로 이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들이 위스키 생산 공정에 그린수소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편집자주>

위스키는 보리 싹을 틔워 말린 맥아(Malt)나 다른 곡식들을 이용해 발효시켜 증류한 뒤 셰리나 버번을 만든 오크통에 넣고 숙성한 술이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의 요건은 나폴리 정통 피자보다 더 엄격하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디스틸러리(Distillery, 증류소)에서 만들어야 하고, 증류를 마친 무색의 주정(Spirit)은 94.8% 미만의 알코올 함량을 요한다. 또 700리터 미만의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해야 하고, 물과 캐러멜 외에는 첨가할 수 없다. 이렇게 만든 술의 최종 도수는 40% 이상이어야 한다.
스카치위스키 업계의 ‘2040 탄소중립’ 도전
위스키 산업은 스코틀랜드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2022년 스카치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식음료 수출의 77%를 차지했고, 매출로 보면 62억 파운드(약 10조 원)에 이른다. 이는 스코틀랜드 경제 규모의 약 4.9%에 해당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를 아우르는 영국(The United Kingdom, UK) 전체 식음료 수출의 25%가 넘는 큰 규모다.
스카치위스키 증류소는 수백 년을 넘는 곳이 수두룩하다. 증류 과정에 열원이 필요하고, 이때 화석연료를 쓰게 된다. 스코틀랜드 서남쪽 아일레이(Islay) 섬에 있는 증류소들은 맥아 훈연 과정에 이탄(Peat)을 써서 특유의 스모크 향을 더하게 되는데, 이탄을 태울 때도 당연히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스코틀랜드의 증류소들이 액체석유가스(LPG)나 압축천연가스(CNG) 같은 비교적 탄소배출이 덜한 연료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장기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디젤선박을 LNG선으로 대체하더라도 탄소배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과 같다. 종국에는 무탄소 연료인 암모니아나 수소를 쓸 수밖에 없다.
영국은 미국, 한국,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21년 8월 세계에서 12번째로 ‘국가 수소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5GW 용량의 저탄소 수소를 생산하기로 했고, 이는 연간 약 300만 가구에 공급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영국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에너지 안보·자립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2022년 4월 ‘에너지 안보 전략’을 서둘러 발표하면서 저탄소 수소 생산 목표를 최대 10GW로 두 배나 올렸다.
영국 정부는 저탄소 수소생산시설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에 2억4,000만 파운드(약 3,970억 원) 규모의 넷제로 수소기금(Net Zero Hydrogen Fund)을 투입했고,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그린수소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90억 파운드(약 14조 원)를 들여 2025년까지 1GW 규모의 수전해 설비를 보급할 방침이다.
스카치위스키 업계의 녹색 전략
영국 내에서 그린수소 사업에 가장 관심이 큰 곳은 역시 스코틀랜드다. 수십 년간 북해의 험난한 해양 환경에서 석유·가스 산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여기에 공학 분야의 독창성, 새로운 연구를 위한 수준 높은 대학, 신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라는 탄탄한 배경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학연관 네트워크’를 잘 갖춘 곳이다.
스코틀랜드는 ‘2045 탄소중립’을 목표로 수소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2030년까지 영국이 목표로 하는 저탄소 수소 생산용량의 절반인 5GW 설치를 목표로 하며, 2030년 연간 저탄소 수소생산 목표치를 45만 톤으로 잡고 있다.

스코틀랜드 수소 야망의 중심은 북쪽의 셰틀랜드(Shetland)에서 남쪽의 보더스(Borders)까지 나라 전체에 걸쳐 추진 중인 12개 이상의 지역 허브에 있다. 이들 프로젝트는 해상·육상 풍력, 수전해, CCS(탄소·포집·영구격리), 배관망 활용 등 그린수소와 블루수소 사업을 두루 아우른다. 이들 사업이 일정대로 추진된다면 스코틀랜드는 수소생산 기술, 인프라 면에서 세계적인 강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스카치위스키 업계가 누구보다 빨리 탈탄소 전략을 추진해왔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140개 증류소 소유주들은 영국 전체보다 10년 빠른 ‘204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위스키 생산부문은 2009년 이래 탄소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재생가능 에너지 소비를 크게 늘린 점이 주효했다.
스카치위스키 업계의 녹색 전략은 마케팅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오크통에서 수십 년간 숙성된 한정판 위스키의 가격을 떠올리면 된다. ‘맥켈란 아다미 1926’은 소더비 경매에서 218만 파운드(약 37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써도 수익이 보장되고, 두둑한 재정을 기반으로 탈탄소화에 도전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
황금빛 구리 증류기에 열원을 공급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쓰기보다는 스코틀랜드의 강한 바람(풍력)에서 나온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쓰는 편이 더 낭만적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데 적어도 10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마케팅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국내에도 이강주, 안동소주, 진도홍주 같은 전통 소주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수소와 연관된 사업은 찾아볼 수 없다. 박재범이 출시한 22도짜리 원소주(WONSOJU)도 여기에 든다. 지난 2022년 2월 더현대서울에 설치된 원소주 팝업스토어는 일주일 만에 초도물량 2만 병을 완판하기도 했다.

원소주가 그린수소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명은 ‘원하이(WonHy) 프로젝트’로 가면 된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하려면 고민할 거리가 한둘이 아니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다.
수소와 소주. 글자 수도 같고 어감도 닮았다. ‘그린수소로 만든 대한민국 대표 소주’라는 슬로건을 홍보에 활용할 수도 있다. 위스키가 됐든 소주가 됐든, 진정 미래의 안녕을 원한다면 탄소중립을 고민해야 한다.
[다음 기사②] 짐빔‧산토리 회사도 뛰어든 그린수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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