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보인다.(사진=pexels)

동남아시아에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며 수소산업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경제 성장, 인구 증가, 생활 수준 향상 등으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 한정된 에너지원으로 이를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요는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전력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까지 글로벌 전력 수요 증가의 85%는 동남아, 중국, 인도 등의 국가에서 발생할 전망이다. 특히, 동남아는 강력한 경제 활동에 힘입어 2026년까지 전력 수요가 연평균 5%씩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전기 먹는 하마’라 불리는 데이터센터 유치가 가시화되면서 전력 수급에 대한 고민이 짙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엄청난 전력이 투입된다. 데이터센터 기반 AI 검색은 일반 검색대비 전력 소비량이 10배 이상 많다. 미국 에너지 연구기관 EPRI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량이 매년 최대 15%씩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소연료전지는 이처럼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다.

동남아의 경우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베트남에는 현재 20여 개 안팎의 데이터센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통신사 소유로 아직까지 해외기업이 구축·운영 중인 곳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AWS, 구글 등이 데이터센터 입지 요건을 만족하는 베트남 진출을 노리고 있다. 베트남은 테러가 없고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잘 발생하지 않으며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을 강행하고 있어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기가 적합하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많은 해외기업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했으나 지진, 테러 등의 문제로 다른 국가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추세다.

MS가 데이터 센터에서 수소연료전지를 백업 전력으로 사용 가능한지 테스트를 실시했다.(사진=MS)

싱가포르에는 MS(마이크로소프트) 동남아 데이터센터가 있다. MS는 이밖에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MS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는 향후 4년간 말레이시아 클라우드 및 AI 인프라 구축에 22억 달러(약 3조78억 원)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말레이시아에 대한 단일 투자로는 최대 규모다.

이렇듯 전력 소비가 실제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전력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현지에서는 에너지 믹스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환경 문제를 경시할 수 없는 것도 원인이다. 지난해 동남아에서 전력 발전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8억 톤이다. 반면 친환경 발전방식을 적극 도입한 유럽의 경우 배출량이 5억5,700만 톤, 한국과 일본은 7억 톤을 조금 넘었다.

이에 동남아 각국 정부와 기업은 에너지 안보와 지속 가능성을 위해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실제로 싱가포르 로런스 웡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2050년까지 싱가포르 전력의 절반을 수소로 공급하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국가 수소에너지 개발 전략을 공포하며 2030년까지 연간 10만∼50만 톤의 수소 생산을 목표로 제시했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으로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다. 수소를 앞세워 202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3%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대학과 연구소에서 관련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 기관 서버의 보조 전력 공급용으로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PEMFC)를 활용한 바 있으며 충전 한 번에 750km를 달릴 수 있는 연료전지 오토바이를 개발한 사례도 있다. 또 일본 도시바 ESS와 함께 10kW급 수소에너지 공급체계인 ‘H2One’도 개발했다.

수소에너지 공급시스템 H2One.(사진=도시바)

인도네시아 기업 HDF에너지는 주간에는 태양광, 야간에는 풍력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태양광으로 최대 8MW, 풍력으로는 최대 2M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또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 페르타미나(PT Pertamina)는 그린수소를 하루 100kg 생산할 수 있는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모장 지역에는 지열발전소와 통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공장이 문을 열었다.

산유국인 인도네시아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유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큰 과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수소차 도입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에 연료전지 체계를 개발해 2012년에 수소차 콘셉트카를 내놨다. 지난 5월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수소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이를 계기로 페르타미나는 현지 수소사업을 현대차와 합동으로 진행하게 됐다. 폐기물을 활용하는 수소생산사업 논의가 주를 이뤘지만 현대차의 주요 사업이 완성차 판매인 만큼 수소차 도입을 위한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다.

그간 수소충전소가 없었으나 지난 2월 국영전력청(PLN)이 자카르타에 수소충전소를 구축하며 도로에서 수소차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충전소에는 75톤의 그린수소가 공급된다. 수소가격은 km당 350루피아(약 30원)로 1,400루피아(약 118원)인 기름연료(BBM) 대비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는 게 PLN의 설명이다.

PLN이 인도네시아 최초로 차량용 수소충전소를 개소했다.(사진=PLN)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사라왁에서는 ‘H2biscus 청정수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연산 15만 톤 규모의 청정수소를 만드는 수소생산기지를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롯데케미칼, 삼성엔지니어링, 한국석유공사, 포스코홀딩스를 비롯한 국내기업과 말레이시아 SEDC(사라왁경제개발공사) 에너지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사라왁의 수력발전을 기반으로 청정수소와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게 사업의 골자다.

​ 말레이시아 사라왁 H2biscus 청정수소 프로젝트 조감도.(이미지=삼성엔지니어링)
​ 말레이시아 사라왁 H2biscus 청정수소 프로젝트 조감도.(이미지=삼성엔지니어링)

아방 조하리 오펭 사라왁주 총리가 지난 6월 10일 사라왁주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그린수소 컨퍼런스(APGH)에서 사라왁주의 그린수소 허브 구축에 적극적인 투자를 약속함에 따라 프로젝트가 조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정부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11일 자세한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사라왁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편, APGH에서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 관료들은 전력단가 조정을 통한 그린암모니아 가격 경쟁력 확보, 청정수소 인증을 위한 관련 제도 도입, 청정수소 생산·운송을 위한 관련 인프라 준비 등 청정수소 발전 입찰 선정과 적시 공급에 관한 협력도 논의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분야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글로벌 CCS 사업으로 꼽히는 ‘셰퍼드 CCS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함이다.

말레이시아는 또 일본 기업과 발을 맞추고 있다. 에네오스, 스미토모 등의 일본 기업들은 청정수소 생산을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블루수소와 그린수소 동시 생산이 목표다.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나스는 일본 기업과 협력해 저탄소수소·암모니아 생산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베트남
베트남은 지난해 발표한 ‘제8차 전원개발계획’에 따라 2050년까지 수소를 발전량 기준 전체 에너지의 5.4%인 2만9,900MW까지 확대한다. 올해는 2050년까지 국가 전력 생산량의 10%를 수소가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베트남은 해상풍력을 통해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해상풍력을 통한 그린수소 생산은 에너지 전환 최적의 솔루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해상풍력 발전의 경우 초기 설비 비용이 높고 시설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 적극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기 어렵다. 베트남의 경우 이미 해상풍력 발전 시설이 구축돼 수소생산이 비교적 수월하다. 또 길고 풍부한 해안선이 있어 해상풍력 발전에 적합하다.

베트남은 해상풍력 발전이 유리한 입지를 갖췄다.

특히, 남중국해의 경우 강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와 해상풍력 발전에 이상적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덴마크와 함께 베트남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소를 개발 중이다. 또 영국 엔터프라이즈 에너지(Enterpirze Energy) 주도로 Ke Ga 해상풍력, Thang Long 해상풍력(3.4GW)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베트남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베트남(PVN)이 SK E&S와 청정수소 분야 공동 사업을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베트남 내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현지 수소사업 추진을 위한 정책 환경 조성에 협력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베트남은 롯데정밀화학으로부터 암모니아를 수입했다. 지난 4월 울산항에서 8,500톤의 초도 물량이 출하됐다.

태국
태국은 2040년까지 청정에너지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리고자 한다. 현재 태국 전력 소비량 중 청정에너지 비중은 28% 수준이다.

태국 국영 석유·가스 회사 PTT그룹이 가장 적극적으로 수소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신재생에너지 기업 ACWA파워와 친환경 수소생산 사업에 70억 달러(한화 약 9조6,152억 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시설이 준공되면 연간 22만5,000톤의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

PTT그룹이 구축한 태국 최초의 수소충전소.(사진=PTT)

또 PTT는 수소충전소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PTT 자회사인 PTT 오일앤리테일은 방콕산업가스와 함께 수소충전소를 설치했다. 유명 관광지로 향하는 연료전지 리무진을 충전하는 데 사용된다.

수소 강국 한국과의 협력도 이어오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CCUS, 수소, 암모니아 혼소, 재생에너지 등의 저탄소 발전기술 공급을 추진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태국전력청(EGAT)과 ‘CCUS 및 무탄소 발전기술 공동연구 협력 양해각서(MOU)’를 지난 1월 체결한 바 있다.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경우 전력의 90% 가량이 천연가스로부터 나온다. 이 때문에 가스 시장 변동에 따른 전력 요금 편차가 매우 크다. 정부도 이런 심각성을 인지하고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수소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2050년까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수소로 충당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소 연구 개발 계획에 자금을 지원하고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제 협정에 서명했다.

블룸에너지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사진=블룸에너지)

싱가포르 국영 에너지기업 셈코프인더스트리스는 청정경제 투자 포럼에서 블룸에너지와의 협력을 발표했다. 블룸에너지의 독보적인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기술과 탄소 포집 기술을 활용해 싱가포르 내에서 저탄소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행보다. 셈코프는 이밖에도 암모니아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연간 6만 톤의 수소를 주룽으로 들여오는 수소 수송 프로젝트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싱가포르 기업 케펠은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 IHI 계열사와 함께 수소 호환 발전소 건설을 선언한 바 있다. 600MW급 발전능력을 갖추는 게 사업 목표다. 2026년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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