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모놀리스의 네브래스카 청록수소 생산시설.(사진=모놀리스)
미국 모놀리스의 네브래스카 청록수소 생산시설.(사진=모놀리스)

국내 청정수소 공급체계 전환(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은 천연가스 기반 블루수소와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천연가스 기반 수소에는 청록수소(열분해)도 있는데, 광분해(광전기화학, 광화학, 광생물학), 바이오 수소, 폐자원 가스화와 함께 미래형 수소생산기술로 분류된다. 정부는 ‘제5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확정한 ‘수소기술 미래전략’에 이들 미래형 수소를 반영해 원천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올해부터 수소도시의 수소공급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시스템 기술개발에 나선다는 점이 주목된다. 2050년 청정수소 자급률 60% 달성에 청록수소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록수소 부상

수소는 그레이, 블루, 그린 등 수소생산 방식에 따라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레이수소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수소로, 수소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블루수소는 그레이수소 생산과정에 CCUS(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을 결합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수소이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든 수소를 말한다. 통상 블루수소와 그린수소를 청정수소라고 부른다. 최근 청록수소도 청정수소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청록수소는 천연가스나 바이오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4)을 열분해하여 생산되는 수소로, 수소와 함께 고체탄소도 만들어진다. 수소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CO2)를 기체상태가 아닌 고체상태로 분리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셈이다.

고체탄소는 타이어의 주성분인 카본블랙(Carbon Black), 제철용 코크스 등으로 사용된다. 특히 카본블랙은 탄소 감축이 필요한 자동차 타이어 업계를 중심으로 최근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타이어 외에도 산업용 고무, 플라스틱, 페인트, 잉크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미국 모놀리스가 청록수소와 함께 생산한 고체탄소.(사진=모놀리스)
미국 모놀리스가 청록수소와 함께 생산한 고체탄소.(사진=모놀리스)

카본블랙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카본블랙 시장은 2022년 약 178억 달러에서 2027년 234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5.5%씩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전기전도성이 높은 특수 카본블랙 시장은 2020년 약 24억 달러에서 2025년 28억5,000만 달러로 연평균 4.5%씩 성장할 전망이다. 특수 카본블랙은 전도성 플라스틱 첨가제, 배터리전도체, 특수 잉크·코팅 등에 사용된다.  

국내 카본블랙 시장은 국내 최대 제조 기업 OCI를 비롯해 Birla Carbon, Orion Eng, Tokai carbon 등의 해외 유수 카본블랙 기업이 진출해 타이어·고무용 카본블랙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청록수소 기술 ‘걸음마’

청록수소 생산 방식은 열분해, 플라즈마, 촉매 열분해(TCD) 등 3가지 기술로 구분된다. 

열분해는 메탄을 1,000~1,500℃ 온도에서 수소와 탄소로 분리하는 기술이다. BASF와 TNO가 열분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나 2030년 이전까지 상업 규모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플라즈마는 메탄 열분해 중 가장 성숙한 기술로, 플라즈마 토치(plasma torch)를 사용해 1,000~2,000℃ 온도에서 메탄가스를 열분해한다. 미국 모놀리스(Monolith)가 현재까지 진행된 청록수소 생산기술 중 가장 높은 TRL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데, 100% 재생전력을 활용한 플라즈마(2,000℃) 기반의 수소와 카본블랙을 동시 생산한다. 2021년부터 연간 5,000톤의 수소와 연간 1만5,000톤의 카본블랙을 생산할 수 있는 데모 플랜트를 가동했다.

촉매 열분해는 1,000℃ 미만의 온도에서 니켈 또는 철 기반의 금속 촉매를 이용해 수소와 탄소로 분해하는 기술이다. 미국 씨제로(C-Zero)는 촉매 열분해를 통해 청록수소와 카본블랙을 생산 중으로, 용융금속(27% 니켈, 73% 비스무트) 상에 메탄 버블링(bubbling)을 통해 수소와 카본블랙을 동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이노베이션 E&S가 미국 모놀리스, SK가스가 미국 씨제로와 각각 청록수소 생산 투자를 발표했다. LG화학, 금호석유화학, 제이오 등은 메탄 열분해를 이용해 청록수소와 탄소 소재를 생산하기 위한 반응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제주대, 원자력과학기술연구소 등은 열 플라즈마 기술 기반 청록수소 제조 기술을 개발 중이다. 제로시스, RIST, 고등기술연구원은 용융염 기반 청록수소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프랜즈는 지난 6일 DME 2공장에서 청록수소 데모 플랜트 착공식을 열었다.(사진=바이오프랜즈)
바이오프랜즈는 지난 6일 DME 2공장에서 청록수소 데모 플랜트 착공식을 열었다.(사진=바이오프랜즈)

바이오프랜즈는 지난 6일 DME 2공장(충북 보은군)에 플라즈마 기술을 활용한 청록수소 데모 플랜트(300kg/day)를 착공했다. 

한국가스공사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한 ‘천연가스 열분해 기술개발 기획연구’를 수행하고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융용촉매 활용 천연가스 열분해 기술’을 우선 개발 과제로 선정했다.  

아이에스티이는 영국 LEVIDIAN사와 천연가스나 바이오가스에서 청록수소와 그래핀을 생산하는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다. 인투코어테크놀로지는 수도권매립지에 바이오가스로 청록수소와 카본블랙을 생산하는 파일럿 설비를 설치해 실증에 나선다.


대용량 청록수소 기술개발 추진

정부도 본격적으로 청록수소 기술개발 지원에 나서 향후 청록수소가 수소공급원의 한 축을 차지할지 주목된다.   

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연구기획사업(R&D)으로 2022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진행한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시스템 기술개발 기획’ 연구용역을 통해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 기술개발 기획의 적정성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위해 국토부의 사업기획 총괄 하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고등기술연구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한국가스기술공사, 울산대학교, 고려대학교, 바이오프랜즈, 제로시스 등 총 36명의 산학연 전문가들이 참여한 기술기획위원회(이하 청록수소 기술기획위원회)가 운영됐다.    

아이에스티이는 영국 LEVIDIAN사와 청록수소와 그래핀을 생산하는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다.(사진=아이에스티이)
아이에스티이는 영국 LEVIDIAN사와 청록수소와 그래핀을 생산하는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다.(사진=아이에스티이)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지난 1월 22일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시스템 기술개발 사업’ 시행을 공고했다. 지난 24일까지 신청서류를 접수했고, 4월 중에 사업자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국비 290억 원을 투입해 올해 4월부터 2029년 12월까지 4년 9개월간 진행된다.

국토부는 지난 2020년 수소 시범도시 3곳(울산, 전주·완주, 안산)을 시작으로, 2023년 6곳(평택, 남양주, 당진, 보령, 광양, 포항), 2024년 3곳(양주, 부안, 광주 동구) 등 현재 총 12개의 지자체에서 수소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도시는 수소를 도시의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도시로, 이를 위해 수소생산시설, 수소운송 배관, 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등 수소 인프라를 구축한다. 국토부는 수소도시 조성의 성공 관건을 대용량 수소를 공급·활용하는 인프라 구축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시스템 기술개발과 통합 실증을 통해 도시 단위에 적합한 청록수소 기술을 확보해 탄소중립 수소도시를 조기 실현한다는 목표로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청록수소 기술기획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블루·그린수소 공급에 한계가 있어 청록수소가 수소도시 조성의 최적 대안이다. 블루수소는 수소생산 시 포집한 이산화탄소 저장을 위한 국내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고, 높은 재생전력 단가와 전력 소모량의 문제로 경제성 확보의 어려움이 있다. 

반면 청록수소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성 외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천연가스 공급망을 활용하면 도시 구성 수준에 필요한 대용량 수소공급이 가능해 수소도시 인프라에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한국가스공사 천연가스 공급관리소.(사진=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공사 천연가스 공급관리소.(사진=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1월 1일 기준 주배관 5,206km, 공급관리소 433개소를 운영 중이다. 현재 34개 도시가스사를 통해 전국 216개 지자체, 2,040만6,000세대(보급률 84.7%)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5개 발전 자회사를 포함한 28개 발전사에도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또 청록수소는 경제성 확보가 가능해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기업부담 경감에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청록수소는 수소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아 블루수소와 달리 이산화탄소 포집·저장에 드는 비용 부담이 없다.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는 경우 1kg 수소생산 시 그린수소의 약 1/5 수준이다. 부산물인 고체탄소 판매에 따른 부가적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다만 해외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사용하므로 국제 에너지 가격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크다. 러시아의 공급 중단에 따른 수급 여건 불확실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한 바 있다.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 전력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원료 구입과 전력구매에 따른 운영비용(OPEX)이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청록수소 기술기획위원회는 “이러한 단점을 고효율 대량생산 공정기술 개발과 함께 수소와 동시에 생산되는 고체탄소의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경제성 확보로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촉매로 청록수소 생산을 위한 메탄 열분해 반응을 실험하고 있다.(사진=에너지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단 김우현 박사 연구진이 개발한 촉매로 청록수소 생산을 위한 메탄 열분해 반응을 실험하고 있다.(사진=에너지연)

아울러 국내 대용량 청정수소 생산기술 수준이 주요국보다 열위에 있고, 핵심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점도 청록수소 기술 자립화의 시급성을 말해주고 있다.    

청록수소 기술기획위원회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청록수소 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이 진행 중이나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방법은 재생에너지 전력 기반 플라즈마 반응시스템(미국 모놀리스)으로 알려져 있다”라며 “국내 청록수소 생산기술은 실험실 수준의 소규모 연구개발만 진행된 상태로, 상용화를 위한 대규모 수소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원천기술, 플랜트 설계·운영 기술, 표준화·사업화 모델 등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미국 모놀리스의 기술은 수소생산 효율, 플라즈마 전극의 내구성 등의 문제로 수소 생산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증형 연구개발을 통해 고효율 천연가스 분해반응 시스템 설계 핵심기술, 고순도 수소생산을 위한 수소 분리·정제 공정 설계기술, 수소와 함께 생산된 탄소의 고부가가치화, 플랜트 엔지니어링·운영 등의 핵심 원천기술 국산화와 상용화, 운영·기술 표준화 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업은 국내 수소도시와 연계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청록수소 기술기획위원회가 지자체를 대상으로 대용량 청록수소 공급시스템 실증 참여의향 조사를 한 결과 전남 광양시와 순천시, 경북 포항시 등 3개 지역이 참여의향을 표명했다.  

이들 3곳이 이번 사업을 신청한다면 포항시와 광양시의 2파전 구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포항과 광양은 2023년에 수소도시로 선정된 곳으로,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청정수소와 고체탄소의 최대 활용처인 포스코 제철소가 있다. 

장혜정 포항시 수소산업팀장은 “고려대학교(주관기관), 포스코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참여를 신청했다”라며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면 오는 9월 착공하는 포항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포항 블루밸리 국가산단 내)에 청록수소 실증 플랜트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청록수소 플랜트 건설시장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Value Market Research의 글로벌 청록수소 시장 연구 보고서(2023년)에 따르면 글로벌 청록수소 시장은 2023~2030년 동안 연평균 215.2%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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